Making
도자 위의 바느질이 주는 위로
김선
글_김은선 기자 사진_ 편집부
어린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김선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 <꿰다, 엮다Ⅲ>가 지난 11월 11일부터 17일까지 7 일간 성수동 스페이스 오매에서 열렸다. 작가는 전시장 바닥에 깔린 무려 이천 개가 넘는 원통형 오브제들과 천장에 메달린 조형작업을 하나의 설치작품으로 선보였다. 전시장을 가득 메우는 잔잔한 파도소리는 「Memory through threading, weaving」이란 작품명에 담긴 의미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낮은 시야에서 작품을 바라보도록 전시장 바닥에 방석을 준비한 이유도 있을 터. 그를 만나 작업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어린 시절의 바다와 할머니
김선 작가는 ‘도자’와 ‘실’을 이용해 작업한다. 이질적인 두 재료를 ‘바느질’을 통해 결합하는데, 신선한 조합 때 문인지 사람들에게 ‘바느질하는 도예가’로 통한다. 서울여자대학교 학부와 동대학원 조형학과를 졸업한 작 가는 도자와 섬유를 접할 수 있는 학습환경이 기반이 되어 두 가지 재료 혼합에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는 ‘도자의 차가움과 실의 따뜻한 성질을 결합한 작업을 시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도자기에 실을 단단히 엮어내는 것보다 더 견고한 결합이 있을까. 그는 대학원 시절부터 줄곧 ‘할머니’, ‘바다’, ‘바느질’을 작업의 영감 으로 삼았다. 규방공예를 즐기는 동기의 모습에서 바 느질하는 할머니의 모습과 또래없는 해안마을 시골집 에서 바느질을 친구 삼던 어린시절을 떠올린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상반된 재료의 어울림은 외롭 고 차가웠던 시골생활 속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바느 질을 일삼던 지난 시절의 위로이자 추억인 셈이다.
흙으로 빚고 실로 잇는 손짓
작가는 대학시절 도자기공예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할 만큼 물레작업을 좋아했다. 그 이유는 물레의 움직임에 따라 변형하는 흙의 성질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다. 어린시절 경험이 낳은 그의 철학은 흙을 통해 표현 되는데 모두 물레를 이용해 성형한다. 작업은 세 개의 시리즈로 나눌 수 있다. 초기 작업은 원형그릇의 곡선 을 따라 실을 꿴 형태로, 도자 위의 바느질을 일차원적 으로 표현했다. 더 나아가 실땀마저 색소지로 재현해 내는 등 다양한 시도도 서슴지 않았다. “바느질 형태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판형 板形 을 쓸 수 있었음에 도 불구하고 기형 器形 을 고집한 이유는 담는 형태가 엄마 품 같은 포근함, 안정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관계 의 결핍에서 비롯된 형태적 특징은 그의 작업에서 공 통적으로 엿보인다.
두 번째 시리즈는 이중기와 합이다. ‘이중기’는 실과 바 늘구멍에서 오는 기능의 한계를 보완해 화병의 모습으 로 만들었다. 실의 오염과 손상, 구멍으로 인한 물 빠 짐 등의 기능적 약점을 이중구조를 통해 극복한 것이다. 내부에 기의 역할을 부여함은 물론 외부의 장식요소까지 충족시켰다. 이중기 시리즈는 기능을 배제한 조형작업으로 이어졌다. 기물 내벽과 외벽 사이를 빈 틈없이 메운 실들은 수평적으로 또는 높낮이를 달리하 는 역동적인 모습으로 그릇에 담긴 바다를 형상화했고 동시에 사람간의 관계를 표현했다. ‘합’ 작업은 보관, 보존의 기능을 정확히 드러냈다. 유골함과 탯줄 보관 함을 모티브로 한 그의 합은 복 복 福 , 기쁠 희 喜 , 남녀 한 쌍, 강강술래하는 인물형상 등 문구와 패턴을 바느질 해 ‘삶과 죽음’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세 번째 시리즈는 바다를 표현한 설치작업으로 이번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인 「Memory through threading, weaving」이다. 도자에 중점을 둔 이번 작업은 지름 3cm, 높이 7cm가량의 작은 원기둥 수천 개를 바닥 가 득 채웠다. “작은 조형들이 모여 거대한 바다를 이루는 오브제는 ‘실땀’을 입체화한 것입니다. 휘감는 듯한 색 상과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감에서 언뜻 실타래의 모습도 보이네요.” 작업실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실 타래의 형상들이 무의식 속에서 피어난 것은 아닐까. 작가는 “형태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작품에 대 한 생각은 관람자의 몫.”이라고 전했다.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쳐 온 그의 작업들은 일관된 주제 안에서 자유 롭게 변형되고 있었다.
정성과 정교함이 필요한 과정
그의 작품은 기물에 구멍을 뚫고 실을 엮는 단순한 과정처럼 보이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많은 계획을 필요로 한다. 먼저 타공시 파손율이 적은 기물의 안정적인 두께를 찾고 번조시 틀어지는 구멍의 변형을 최소화하는 형태잡기로 시작한다. 기물에 들어갈 바느질 패턴은 크기, 모양, 간격 등 고려해 격자무늬 노트에 디자인한다. 완성된 바느질 디자인 스케치는 타공 위치를 잡는 지침서 guideline 로 활용되는데, 패턴이 들어갈 위치에 종이를 올려 점을 찍어 자국을 남기는 방식이다. 이어 실의 두께와 교차 횟수를 꼼꼼히 계산해 구멍
의 크기를 조절하여 뚫는다. 작가는 광이 없는 매트유 를 주로 사용하는데, 두 재료의 조화를 위해 시각적 대 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그는 실을 풀고 엮는 과정을 반 복하며 작업에 공들인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터득 한 노하우는 그만의 정교한 기술과 독보적인 작업세계로 이어진다.
작가는 다양한 국내외 레지던시 입주, 워크숍, 학술회, 전시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2015년 핀란드 도자 레 지던시 아크틱 세라믹 센터 Arctic Ceramic Centre 와 2016년 김 해클레이아크미술관 이하 클레이아크 에서의 입주활동은 작 가의 도전의식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물레성형에 적합하지 않았던 핀란드 태토 덕분에 핸드빌딩 기법을 시도할 수 있었어요. 또한 이전부터 바다에 유유히 떠있는 ‘어떤 형상’을 연출하고 싶었어요. 클레이아크의 전문적인 작업환경이 생각에만 머물고 있던 설치 작업을 공중설치 방법을 통해 근사하게 구현할 수 있었죠.”
작가는 명상하듯 작업한다. 작업에 몰입하며 머릿속에 쌓인 고민과 생각들을 비워낸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는 집 앞 한강을 찾는다. 그의 바느질 작업은 주로 마음껏 실타래를 펼쳐놓고 색을 매치할 수 있는 집에서 이뤄진다. 작가는 ‘편히 마루에 앉거나, 다리를 의자에 올려놓고 휴식을 취하듯 작업한다’고 한다. 그에게 작업이란 안정, 위로, 치유의 행위임을 의미한다. 또한 ‘작가는 지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말을 증명해보이듯 쉴 새 없이 도자 위에 바느질하는 모습은 그가 내딛는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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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19년 12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