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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월호 | 특집 ]

[특집II] 홍성일 × 이혜진
  • 편집부
  • 등록 2020-09-29 11:20:33
  • 수정 2024-07-23 17: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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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II 홍성일 × 이혜진
글_이연주
기자 사진_ 편집부

불과 7~8년 사이 노산도방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현재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2009 년. 2층짜리 단독주택은 두 자녀를 둔 4인 가족의 집이자 작업실이다. 초기에는 1층을 작업실로만 사용했다. 당시 홍성일 작가는 차도구 작업에 주력 중이었고, 이혜진 작가는 작업에 매진할 수 없었을 뿐 아이들이 자는 시간이나 틈 날 때마다 작업을 해왔다. 처음에는 작업실을 공유하는 수준이었는데, 해가 지나며 두 사람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손님맞을 공간이 필요했다. 1층 전체가 작업공간이었던 곳에 찻집 도도헌을 만들었다. 가마와 기자재를 작업실 밖으로 꺼내고, 효과적인 작업 동선과 자투리 공간 없는 구성으로 노산도방과 도도헌은 어울릴 수 있었다.
차 茶 를 아는 도예가의 차도구
찻집 도도헌은 누구든 방문할 수 있다. 차 茶 를 팔고 있지만 수익을 위한 건 아니다.(그랬다면 테이블을 더 많이 들였을 것이라며 부부는 거침없이 답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차를 내어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 뿐만 아니라 차도구를 만드는 작업실에 찻집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간결한 마음도 있었다. “도도헌이 생길 즈음 인스타그램이 생겼는데, 사용하는 도구와 만든 차도구들, 도도헌에서 있었 던 일들을 올렸어요.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에 도도헌과 노산도방이 인식되기 시작” 됐다고 이혜진 작가가 전했다. 차를 마신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홍성일 이혜진 작가 는 ‘차를 마시는 도예가’라고 불린다. 평소 차를 마시기 때문에 이들이 만든 차도구를 쓰면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성일 작가는 차 茶 를 잘 아는 사람만이 차도구에 다가서기 쉬울 것이라 생각하고, 차 茶 선생님에게서 차를 배우기 시작했다. “차도구를 만들고 고객들을 대하는데, 차茶 와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세요. 그 내용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개인의 의견인지 스스로 알아듣고 싶었어요. 그걸 몰라서 배우고 싶었고, 그 지식을 기반으로 다음 단계를 이어갈 계획이었죠.” 오랜 인연이었던 박은정 차 茶 선생님이 계신 분당과 전남 보성을 일주일에 한 번씩 오갔다. 2년차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찾았다. “차수업을 배우는 1년 동안은 체력적으로 힘들었어요. 당시 아내 혼자 육아와 가사를 돌보는 상황이라 당일로 다녀왔어요. 얼굴색이 어두워질 정도로 피로가 쌓이다 보니 사람들이 병 걸렸냐고 그러더라구요.좋은 차 마시러 다니면서 왜 아파보이냐고요.” 분청, 백자, 무유 등 다구에 따른 차맛을 비교하는 배움은 흥미로웠다. 점차 차도구를 사용하는 방법, 차를 우리는 방식과 경 험이 쌓이며 옥석을 가릴 수 있게 됐다. 전문가처럼 차 茶 맛을 전문적으로 분석할 재량은 아니지만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사람들이 모이면 울타리가 생기고,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 도도헌과 노산도 방은 비록 수도권과 지리적으로는 멀더라도, 웹과 인터넷으로 사람들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남 보성에 작업실을 얻게 된 이유를 묻자 홍성일 작가는 로망과 현실 때문이라고 답했다. “옹기를 배우겠 다고 서울에서 보성에 내려왔다가 아내를 만났어요. 당시 옹기 공장에서 함께 일했는데, 궂은 일에도 앞장서 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요.” 연애에서 결혼으로 이어진 두 사람은 자연스레 보성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오랜 한옥을 빌려 지냈고, 시골생활에서 기반을 잡는데 모자람없었다. “형편에 맞게 시작한 거죠. 도시에 나갔 다면 생활이나 작업 모두 감당하기 어려웠을 꺼예요.” 이혜진 작가는 말했다. 처음부터 보성에 오래 머물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시골이라 저렴한 생활비와 옹기작업 이점 또한 보성의 장점이었다. 실제로 보성엔 징광옹 기, 미력옹기, 칠량옹기 등 옹기공방이 가까이에 포진 해 있을 정도로 명성있는 옹기생산지역이었다.

홍성일 이혜진 작가는 새로운 타지에서 만난 운명처럼 보성에 머무르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두 사람은 옹기공장의 경력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옹기작업을 이어갔다. 과거의 옹기에서 모티브를 얻는 것이 아닌 자신의 고유성을 찾기 위한 시간이 이어졌 다. “옹기가 소중한 것은 알지만 특정 범주로만 머무르 는 게 늘 아쉽고 힘들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보성이 차밭으로 잘 알려진 지역성과 실용성에 초점을 맞 춰 차도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차도구를 만들 때 옹기기법을 응용해서 만들어요. 전라도 옹기제작기법인 체바퀴타렴, 판장기법 등 우리만 아는 부분인데,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해도 괜찮아요. 옹기에 대한 애정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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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19년 12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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