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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월호 | 전시리뷰 ]

조선도자, 히젠 肥前 의 색을 입다
  • 편집부
  • 등록 2020-09-29 1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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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도자, 히젠 肥前 의 색을 입다>
2019.10.1~12.8 국립진주박물관
글_김기혜 기자 사진_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임진왜란을 두고 ‘도자기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도공들이 일본으로 피랍되어 일 본 도자기의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일본에서는 조선자기를 본뜬 도기를 생산했고, 히젠 肥前 으로 끌려간 조선 장인의 도움으로 1610년대 일본 최초의 자기를 만들었다. 히젠은 현 재 후쿠오카가 위치한 규슈 북부의 사가현 佐賀縣 과 나가 사키현 長崎縣 일대에 해당하는 옛 지명으로, 일본자기의 발생지이자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 후 일본의 도자문화는 크게 발전하여 17세기 중반에는 유럽 각지 로 수출됐으며, 이후 일본 내에서도 다양한 일본 자기를 만들어 쓰는 배경이 되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 전후 일본과 조선의 도자 문화 교류를 주제로 한 전시 <조선도자, 히젠 肥前 의 색 을 입다>를 10월 1일부터 12월 8일까지 개최한다. 전시에는 일본 등록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일본 사가현립 규슈도자문화관 소장 「백자 청화 국화·넝쿨무늬 접시」 를 비롯하여 일본 규슈소재 8개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71점의 히젠자기가 전시됐다. 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의소세손 의령원 출토품」 등 국내외 19개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 자기 관련국내 생산·소비 유적 출토품과 전세품 200여점을 선보였다. 유물을 통 해 임진왜란 이전 일본 다도문화 속 조선 도자기와 조선 장인들에 의해 탄생한 일본의 자기 및 발전 양상, 그 리고 17~19세기 일본과 조선의 도자 교류 양상을 살펴 볼 수 있다.

일본 다도문화와 조선 도자기
전시실에 들어서면 흰 백자접시 위로 다양한 일본 백자의 문양이 펼쳐지는 프로젝션 맵핑 영상을 만나게 된다. 3D 프린트로 구현된 순백의 도자기는 일본에 영향을 준 도선의 도자기 기술을, 흰 바탕에 펼쳐지는 다양한 채색 자기의 문양은 일본 자기의 성장과 발전을 보여준다. 전시는 먼저 임진왜란 이전, 차 문화를 바탕으로 일본으로 유입된 조선의 자기 문화를 이야기한다. 1부 <일본 다도문화와 조선 도자기>에서는 12세기 시작된 일 본 다도의 흐름과 15세기 말부터 유행하게 된 와비차 侘 び茶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일종의 투박하고 조용한 상태를 지칭하는 와비는 소박하고 간소한 다완에 대한 애호로 이어진다. 조선시대 경남, 전남 등지에서 생산 된 ‘고려다완’은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으며, 국보로까지 지정된 이도다완 井戶茶碗 은 창원 웅천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창원에 위치한 제포 왜관에 서 인근 바다에서 출토된 15세기 초 제작 도자기는 조 선과 일본의 무역이 번성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또한 히젠에서 백자가 생산되기 이전, 가라쓰 지방에서는 1580년대 말부터 도기를 생산했는데 옹기를 만들던 조선 장인의 기술이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과 일본 자기문화의 탄생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의 이야기를 다룬다. 전시에서는 히젠 지역 중 아리타 有田 에서 활동한 이삼평, 다케오 武雄 에서 활동한 백파선을 비롯해 일본에 피랍된 여러 조선 장인의 계보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삼평은 ‘도조 陶祖 ’라 불리며 일본 자기의 시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삼평 을 비롯한 조선 장인들이 1616년 아리타로 이주한 뒤 백토를 발견하면서 소위 최초의 일본산 자기인 ‘초기 이마리’가 만들어졌다. 이때 만들어진 백자의 형태와 문양은 당시 수요가 높았던 중국 청화백자를 모방했으나, 기술적으로는 그릇을 구울때 씌우는 ‘갑발’이나 포개구이를 위한 ‘모래비짐 받침’ 등이 확인되어 번조 기법에서 조선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다케오에서 활동한 백파선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장인 심해종전 深海宗傳 의 부인이다. 그가 세운 우치 노야마 內野山 가마터에서는 경남 지역 연질백자와 유사한 도자기편이 발굴되어, 다도에서 선호하는 분청사기를 닮은 도기가 제작되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포로로 끌려간 많은 조선 장인들은 규슈와 서 일본 등지의 아리타 有田 , 다카토리 高取 , 아가노 上野燒 , 야 쓰시로 八代 등에 정착해 도예 명문 요업지를 일구고 일본 도자문화의 큰 흐름을 형성했다.

일본의 히젠 자기는 1640년대에 이르면 크게 발전하여, 중국의 기술을 받아들이고 독자적인 기술 개량을 거쳐 뛰어난 채색자기를 만들게 된다. 일본 내에서는 나베시마 번주에게 진상되던 나베시마 鍋島 자기, 붉은 색이 특징인 가키에몬 柿 右衛門 가문의 자기, 고쿠타니 古九 谷 나  긴란데 金 襴 手 와 같은 새로운 양식의 자기와 등장한 다. 중국이 명청 교체기의 혼란 속에 해금 정책으로 자기 수출이 금지되면서, 이를 계기로 히젠 자기는 대량 수출되며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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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19년 12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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