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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월호 | 뉴스단신 ]

공예는 메시지다
  • 편집부
  • 등록 2020-09-02 12:30:32
  • 수정 2020-09-02 12: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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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는 메시지다
발언의 도구로서의 공예
글. 서민경
공예·디자인 칼럼니스트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2015년 청주 국제 공예 비엔날레의 특별전 기획을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맡았다는 사실은 분명 화제였다. 그가 내놓은 책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과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특별전 주제는 ‘아름다움과 행복’이었다. 기획글에서 알랭 드 보통은 공예 작품을 ‘실용적인 동시에 심리적인 도구’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실용적’이라는 특성은 공예를 예술과 분리시킬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요소이다. 공예는 심미적인 기능을 충족시키는 관상용 조각이나 오브제와 구분된다. 즉, 음식을 담기 위한 그릇이라든지, 차 도구 혹은 가구나 문구류 등 특정한 용도가 있다. 이때 공예는 공예가의 손을 떠나 사용자의 손을 거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심리적이라는 특질은 무엇일까?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희망, 친절함, 용서, 고요함과 같은 감정들은 공예를 통해 발현될 수 있다. 즉, ‘사용자를 인도하고 계도하며 위로하여 보다 나은 자아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유의 매개’로 공예의 또 다른 기능을 부여한 것이다. 다시 말해, 공예는 사람들에게 특정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알랭 드 보통은 여러 심리적 메커니즘 중 ‘행복’이라는 감정을 고양시킬 공예품을 특별전 출품작으로 골라냈다. 흔히 전시나 공 모전에서 공예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기준인 심미성이나 기능성이라는 가치 보다는 어찌 보면 굉장히 주관적일 수 있는 행복의 가치를 우선 순위에 놓은 것이다.
공예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특별한 이해 방식은 근대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된 질문에 대한 탈출구를 제시한다. 바로 공예를 산업으로 볼 것이냐, 예술로 볼 것이냐에 관한 오래된 질문이다. 공예는 양자택일을 해야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지점에 위치한다. 공예에 가격을 매겨 시장에서 판매하는 사물로 이해하거나 전시장에 걸린 작품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공예의 활동 영역을 한정 짓는다. 기존의 방식대로 공예를 바라봤을 때, 주로 논의되는 부분은 외양의 ‘차별화’이다. 즉 어떤 용도인지, 어떤 소재를 사용하는지,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제작 과정을 거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대학원 과정을 거쳐 전업 작가의 길을 걸으면서 대부분의 공예가는 자신만의 색깔을 구축하고 발전시킨다. 그러나 공예를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물리적 실체로 바라보는 알랭 드 보 통의 방식은 지금까지 잘 논의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공예의 사회적 가치 중에서 꾸준히 제기된 소재 중 하나는 윤리성에 관한 것이다. 디자인계에서 환경 파괴를 줄 이기 위해 플라스틱보다 친환경적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 고 주장할 때, 자연으로부터 온 소재를 가공하는 작업인 공예는 태생부터 자유로웠다. 따라서 공예 작업을 하는 것과 공예품을 소비하는 것은 친환경적 실천으로 불리기 도 한다. 공예 비평가 홍지수는 <공예의 자연 소재와 환경에 관한 숨은 진실>(2016)이라는 글에서 공예품 제작의 출발이 ´인간의 의지를 관철하기 보다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있다고 밝힌다. 그는 산업 사회 대량생산품에 비해 공예품은 재료, 도구, 생산방식 모두 친 환경적이라고 설명하며, 공예가의 태도 역시 ‘자연에 대한 지극한 이해와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갖춰야 한 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공예는 탄생 그 자체로 윤리적인 특질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공예가는 친환경 운동을 몸소 수행하고 있는 실천가들인 것이다.

한편, 공예를 통해서 공예가는 사회적인 목소리를 낼 수 도 있다. 미국의 비평가 벳시 그리어Betsy Greer는 크래프트Craft와 액티비즘Activism을 합한 용어인 ‘크래 프티비즘Craftivism’이라는 용어를 창안했다. 2014년 출간된 그녀의 저서 『크래프티즘: 공예 예술과 액티비즘 Craftivism: the art of craft and activism』은 전방위에 걸친 사회적 메시지를 내는 공예 활동에 주목한다. 책에서 사례로 든 공예가들은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생산자임과 동시에 사회운동가인 것이다. 벳시 그리어를 포함하여 13명의 활동가들은 ‘크래프티비즘 매니페스토’ 를 발표했다. 그 중 ‘당신의 공예는 당신의 목소리다Your Craft is your voice’라는 문장은 이들이 주장하는 크래프티비즘의 목적과 성격을 분명히 드러낸다.

가장 잘 알려진 크래프티비즘 활동은 ‘얀 바밍Yarn Boming’이라고 불리는 스트리트 아트이다. ‘실 폭격’이 라는 의미를 가진 이 활동은 2005년 미국 텍사스주에 거 주하는 37세 여성 마그다 사예그Magda Sayeg의 아이디 어로 시작되었다. 거리 벽면에 락카나 스프레이를 뿌려 반항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래피티가 대표적인 스트리트 아트로 인식되는데 반해 얀 바밍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피티는 미국의 힙합 음악 붐을 타고 기존 권위 에 대한 저항 문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에 비해 거리 볼라드나 가로수 위로 컬러풀한 니트 옷을 입히는 얀 바밍은 상대적으로 평화적이다. 비록 허가 없이 게릴라성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라는 측면은 그래피티와 동일하지만, 니트 실이라는 소재의 특성 상 가위나 칼로 쉽게 제거될 수 있다. 따라서 얀 바밍은 어떠한 시설물도 훼손하 거나 파괴하지 않은 채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단순히 가로수나 공공시설물을 아름답게 꾸미는 행위에서 끝 난다면 얀 바밍은 크래프티비즘이 아니라 환경 미화 작 업일 것이다. 얀 바밍 행동가들은 뜨개질이라는 행위를 통해 도시 속 소외된 이들과 커뮤니티를 연결하고, 군사 시설을 알록달록한 니트로 감싸 반전 운동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얀 바밍을 하는 활동가의 대부분은 여성들이다. 따라서 남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그래피티와 대척점에서 도시를 일시적으로 점유하기 때문에 일종의 페미니즘 운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에서도 얀 바밍에 영감을 얻어 이를 페미니즘 운동을 실천하는데 활용하는 이들이 있는데 바로 2018년 활동을 시작한 ‘위치 니트 크루Witch Knit Crew이하 WKC’다. 이들은 ‘전복적인 공예를 실천하는 페미니스트 손뜨개질 연대체’를 자처하며 비정기적으로모여서 공동 공예 작품을 만들어낸다.

 

WKC가 제작한 대 형 니트는 서울 곳곳에 게릴라 형식으로 설치된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 올라온 ‘마녀들은 여러분을 돕기 위해 이곳에 있다The Witches Are Here To Help’ 프로젝트는 무척 흥미롭다. 55명의 텀블벅 후원자들에게 WKC는 뜨개질 도안 키트를 발송했다. 2주라는 시간 동안 후원자들은 도안에 따라 뜨개질을 하여 완성된 조각을 다시 WKC 측으로 보냈다. 이렇게 모은 조각을 장장 8 시간 동안 57명의 공동 창작자가 연결한 대형 니트 작품은 한 대학 건물 외벽에 두 달 동안 걸렸다. 지난 4월 총선 을 앞두고 이들은 다시 뭉쳐 ‘Vote for Women’라는 문구가 담긴 니트를 제작했다. 이 니트는 선거 전날 국회의사당, 광화문 광장 등의 장소에서 펼쳐졌다. WKC의 게릴라 뜨개질 퍼포먼스였던 셈이다.
해외의 페미니즘 공예 활동과 관련 가장 잘 알려진 최근 사례는 ‘푸시 햇Pussy Hat’ 프로젝트다. 푸시 햇이 처음 주목 받은 때는 2017년 1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이튿날 개최된 여성 행진Women’s March에서다. 당시 행진 참가자들은 푸시 햇이라는 이름의 핑크색 니트 모자를 머리에 쓰고 등장했다. 푸시 햇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들은 미국에 사는 평범한 두 여성이다. 제이나 즈웨 이만Jayna Zweiman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장애를가지게 되었다. 거동이 불편하게 된 그녀는 집 근처 뜨개 질 매장인 ‘리틀 니터리Little Knittery’에서 코바늘 뜨개질을 배우게 된다. 집에서 홀로 시간을 때우기에 뜨개질이 적합했던 것이다. 그녀는 수업에서 우연히 만난 크리스타 서Krista Suh에게 여성 행진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행진에 참가하고 싶었던 재이나 즈웨이만은 신체적 핸디캡으로 인해 고민하던 중 크리스타 서와 함께 푸시 햇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즉 자신 처럼 장애로 인해, 혹은 질병이나 다른 이유로 행진에 참 가하기 어려운 이들이 뜨개질로 푸시 햇을 제작하여 기부하는 캠페인 방식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이는 간접적으로 여성 행진에 참여하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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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0년 8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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