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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요 윤신의
기억과 감정을 담은 분청
글. 박진영 객원 에디터 사진. 이은 스튜디오
얼마 전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도예가 윤신의의 개인전이 열렸다. 이 전시를 통해 전라남도 무안에서 분청 작업을 하는 작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는 ‘도자를 빚는 행위를 통해서 소중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싶다’고 말한다. 무안에 있는 작업장 ‘거시기요’에서 그 기억에 대해, 기억들을 담는 작업에 대해 들어보았다.
작업장 이름이 독특하다. ‘거시기요’. 먼저 그 의미가 궁 금해진다. “‘거시기’는 전라도 방언인데 말과 말을 연결하는 단어로 쓰이지요.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말이 실은 티벳에서 도를 터득한 고승들이 사용하는 말이라고 해요. 순간 이동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나는 전라도 말 그대로, 이 지역의 분청사기를 알리려고 지은 이름이에요. ‘거시기’는 이 지역에서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거시기’하면 너와 내가 같이 아는 것을 말해요. 다시 말해, 서로 통한다는 의미죠. 이번에 전시 보러 광주 분이 오셨는데 단번에 ‘전라도 문화를 알리려고 이런 이름을 지으셨네요’하고 알아보시더라고요.” 장작가마 위에 달린 간판에는 ‘巨示器窯’라고 한자로도 적혀 있는데 이는 작가의 아버지가 후에 덧붙인 이름이다. ‘그릇을 크게 보는 도자기 작업장’이라는 의미가 참으로 절묘하다.
전라도 억양이 입에 밴 작가는 실은 이 지역 출신이 아니고, 20대 후반에 아무 연고도 없는 무안에 왔다가 그로부 터 10년이 지나고 30대 후반에 무안의 분청사기에 빠져 그대로 입문했다. 2년 정도 선배 도예가들에게 배우며 전통적인 그릇을 만들었지만 정작 그가 하고 싶던 작업은 그게 아니었다. “도자기 자체가 아니라 분청사기의 하얀 분이 나를 끄집어낸 거에요. 도자기로 수묵화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기존의 작업 방식을 다 버리고 가마도 바꿔야 했어요. 전부 독학해서 데이터를 쌓으면 서 원하는 작업을 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습니다.” 한국화를 그렸던 그는 누구나 그리는 그림 말고, 이 세상에 없는 걸 분청사기로 만들고 싶었다. 하얀 분을 바른 도자기에 검은 연기를 입히는 그의 작업 방식은 그가 말한대로 ‘도자기로 그리는 수묵화’인 셈이다. “원하는 분청사기를 굽기까지 실패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가마에 넣고 불을 때면 분청이 안 나오고 다 검게 나왔어요. 책을 찾아봐도 방법이 없고 오직 계속 해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하다 보니 연이 가장 잘 피는 온도와 연을 원하는 방향으로 입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 이 역시 가마마다, 그 날의 기온, 기압, 습도에 따라 다 다르니 여전히 경험만이 답이지요. 최근에도 가마를 때면서 딸 덕분에 새로운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역시 도자 작업을 하는 딸 윤귀연 작가가 있 다. 매일 함께 일하며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자신보다 더 까다롭게 작업하고 가마에 불 떼는 일을 좋아하는 딸이 있어 그는 참으로 든든하다. 그가 원하는 도자기를 완성 하려면 장작가마에 불을 뗄 때 창불 넣는 사람, 굴뚝 열고 닫는 사람, 가마 입구에서 장작 넣고 구멍 막는 사람 등 세 사람의 타이밍이 딱 맞아야 한다. 인터뷰하는 날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작업의 또 다른 조력자인 김정모 작가는 그의 기물에 입힌 ‘암은색 연기’를 ‘삶의 과정에서 얻어진 그을린 기억들’이라고 적었다.
기물의 표면에 연기를 묶어두는 것은 물리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넘어 자신의 기억을 기물에 담는 사유의 행위가 된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이 투영된 기물에 연기라는 표상을 입힘으로써 기억을 수집하고 완성해간다.
_김정모(윤신의 개인전 도록에서)
첫 기억들의 강렬한 잔상
윤신의 작가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것은 ‘기억’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첫 기억’. “광주 무등산의 입석대 앞에 처음 올랐을 때 거기에 산소가 있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기 싫다고 하는데 나는 그 산소가 있어서 참 좋더라구요. 그때의 놀라운 기억을 작은 탑으로 만들어 산을 표현한 기물의 구멍 안에 넣었습니다. 탑은 종교를 넘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니까요.” 작가가 설명해준 여러 작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 는 것은 아내와의 첫 만남에 대한 기억을 담은 작품이다. “아내가 과거로 돌아가면 언제로 가고 싶은지 물은적이 있어요. 그래서 자네 만났던 그 날로 가고 싶다고 했어요.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의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담아서 날개처럼 만든 겁니다.” 16년 간 곁에 계시며 작가의 작업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아버지에 대한 고맙고도 그리운 기억을 담은 작품도 찡하게 기억에 남는다. 수많은 굴곡과 무늬를 낸 사각의 작품은 큰 산을 표현한 것이다. “예전에는 아무리 큰 산도 올라서면 온 세상이 내 발 밑에 있었는데 지금은 올라갈 수가 없어요. 이제는 다 큰 아들의 그늘에서 산보를 합니다. 내가 작품을 안 팔고 다 갖고 있고 싶어 하니까 아들이 자기가 다 책임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든든한 느낌을 담은 작품입니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작품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거칠다. 일정한 형태로 조각을 한 것이 아 니라 표면을 찍고 긁어서 낸 흔적들이다. “도자기는 보통 매끈한데 그 보다는 감촉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듭니다. 분 청을 표현하기에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옛날 분청사기에는 같은 도장을 반복적으로 찍어 인화 무늬를 만들었는데 그에 대한 반항이라고 할까, 내가 담고자 하는 마음을 좀더 잘 표현하기 위해 변화를 준 거지요. 이런 거 친 흔적도 처음과 많이 달라진 거에요. 흔적은 많아졌는데 촉감은 더 부드러워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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