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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월호 | 작가 리뷰 ]

서희수 <사라지는>
  • 편집부
  • 등록 2020-09-01 14:46:24
  • 수정 2020-10-02 21: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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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OF THE MONTH

서희수 <사라지는>
흡족한, 흥미로운, 자연스러운 형태를 찾는 발견과 포착의 유희
글. 홍지수
미술평론, 미술학박사 사진. 김정한

어린아이가 흙이나 리본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흙 띠를 수없이 이리저리 잇고 더하고 자르고 서로 포개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눈에 들어온 흥미로운 순간을 포착한 ‘우연과 직관의 형태’다.

전시장에는 마른 흙 띠들이 벽과 봉을 타고 휘돌고 걸려 있다. 반대편 물이 담긴 수조 안에 들어간 말린 흙 띠 더미는 수평선을 기점으로 서서히 녹으면서 주저앉고 있다. 그리고 사각 뷰파인더는 공기의 이동 따라 유유자적 흔들거리는 직물의 움직임을 느린 속도로 상영한다. 이 모든 서희수의 개인전 <사라지는>전의 면면은 매체와 형상이 다 르지만, 오랫동안 작가가 재료의 물성을 존중하고 중요시하고 그 속에서 정신의 자유로움과 자신만의 형태를 추구해온 오랜 작가의 지향과 깊게 맞물려 있다.
서희수는 1990년대 상처와 치유의 상징으로 붕대를 선택해 형태를 변주하는 설치작업을 시도했다. 2000년대부터는 섬유 질감의 흙 띠를 이리저리 잇고 말아 만든 흙놀이 Clay-Fabric Play 드로잉 연작을, 최근에는 빛을 더한 조명작업과 미디어 작업을 추가해 매체와 표현의 영역을 확장중이다. 그러나 흙을 주재료로 하되 섬유의 유연한 물성 을 결합해 유연하고 볼륨감 넘치는 자연스러운 형태를 추구하는 것은 작가의 일관된 형태 지향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재료를 꼼꼼하게 다듬어 자신의 머릿속에 그린 형태를 재현하기보다 이리저리 소재의 질감, 배치와 색을 바꾸며 과정의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온 형태를 채집하고 나열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때문에 서희수의 형태는 구체적인 서사나 현실에서 어떤 형상을 끄집어낸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흙이나 리본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흙 띠를 수없이 이리저리 잇고 더하고 자르고 서로 포개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눈에 들어온 흥미로운 순간을 포착한 ‘우연과 직관의 형태’다.

작가가 두꺼운 흙가래를 늘려 섬유의 물성과 움직임을 흉내를 내려 해도 재료의 속성은 ‘흙’이다. 수분을 머금은 상태의 흙은 별 도구 없이 손으로 늘이고 자르고 더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흙 속의 수분량이 줄어 탄성의 경계 를 넘으면 곧 경직되고 바스러진다. 작가가 애써 찾아낸 유연한 곡선과 부피감, 곡률의 합이 만들어낸 리듬과 운 동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단 무르고 약한 형태를 고 정하는 일이 급선무지만, 작가가 순간의 형태와 상태를 고정하려 할수록 물질과 형태의 변형은 가속화하는 아이러니에 봉착한다.
성형단계에서 작가가 애써 이리저리 돌려보고 붙여보며 찾아낸 흙의 형태는 공기 중에서 그리고 초벌과 재벌을 거치며 수축하고 비틀린다. 단 1mm라도 자신이 원하는 위치나 높이에 흙 띠를 옮기고 일으키고 눕히려 했던 작가의 의지는 공기와 바람, 중력 그리고 화력 앞에서 무력화된다. 이러한 변화가 작가의 의도나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할 때도 있지만, 결과에 무관하게 본인의 의지나 계획대로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한 작가들에게는 자신이 애써 찾은 형태와 질감, 색을 변형시키고 무너뜨리는 외부의 힘은 장애요, 해결해야 할 숙제, 제어해야 할 변수다.
그렇다고 작업 이력을 볼 때, 작가가 공기와 바람, 중력 그리고 불에 의해 변형되는 흙의 속성과 형태를 터부시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미감으로 포착한 혹은 완결지은 형태에 꼭 마지막 한 수를 두어 자유로움을 침범하고 방해하던 흙과 불의 위력을 때론 제약 혹은 간섭으로 느껴온 것도 사실이다. 이번 전시에서 비소성 작업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러한 도자예술의 속성과 프로세스에 대한 작가의 작은 반항이자 투덜거림일 수도 있겠다. 소성하지 않은 날것의 흙을 전시장에 내걸고, 물속에 담가 허물어지게 하는 작가의 행위를 지난날 예술의 물신에 저항하고자 했던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디스트들의 실험과 1990년대 한국 현대도예의 현대성에 대한 실험들과의 연계하거나, 나아가 갈수록 예술제도 안에서 상업화, 물신화되는 공예표현에 대한 저항적 행위로 해석할 개연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전시의 주는 흙과 불의 속성을 수긍한 형태들이고 작가가 어떤 미술사조의 개념이나 승계보다 창작의 자유로움을 그에 부합하는 형태와 매체로 시각화하는 데 중점 해왔음을 고려한다면, 이번 전시의 비소성 시도를 과도한 아방가르드 의미와 가치로 읽고 평가하려는 비평 시도는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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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0년 8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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