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III
우리의 전시는 어떻게 기록되고 기억될 것인가?
한국 공예 전시의 인쇄 도록 제작 문화의 사라짐. 그 이후
글. 홍지수 미술학 박사, 미술비평
한국 공예 전시문화는 달라지고 있다.
요즘 미술계의 전시 기간은 개인전의 경우,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남짓이다. 평균적으로 작품 운송과 연출에 두어일, 이후 반출에 하루 정도를 소요한다고 가정할 때, 실질적인 전시 기간은 작가들 이 전시를 준비하기까지 들인 공력에 비해 다소 짧다는 생각이다. 전시를 여는데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오랜 미술계의 불황과 가파른 물가 상승은 한국 미술 전시문화를 갈수록 간소화시키고 있다. 작품을 압도할 만큼 거한 상차림이나 화환이 전시장을 채우던 오프닝 풍경이 많이 사라졌다. 대관 위주였던 전시가 대부분 초대전 형식으로 바뀐 것도 최근 한국 미술품 전시 문화의 주요 특징이다. 2000년 대 이후 갤러리 수가 증가했고 이들이 수 익을 창출하기 위해 갤러리 전시 외에 각종 국내외 미술페어, 오픈마켓 등을 비즈니스 창구로 활용하면서 갤러리가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과 전시, 판매방식 에 변화가 왔다.
그러나 학위 청구전 등을 위한 장소가 필요한 아마추어 작가들 그 리고 활동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작가들에 게 대관전은 여전히 유효한 방식이다. 이러한 작가들이 기관의 지원을 받거나 작가가 스스로 수요를 견인하지 않는 이상 작품 판매 금액만으로 제작비를 포함한 전시 제반 비용을 충당하기란 녹록치 않 다. 이렇다 보니, 작가들 스스로 오프닝 행사나 도록 제작 같은 부분들을 간소화하거나 생략하는 일들이 대세다. 갤러리 사 정 역시 마찬가지다. 유명한 작가를 초대 할 때는 도록 제작을 초대 옵션으로 제시 하지만, 작가의 네임 벨류에 따라 혹은 갤 러리 사정에 따라 간단한 엽서나 포스터로 도록제작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만큼 갖춰야 할 구성과 분량을 갖춘 ‘잘 만든’ 전시 도록을 보기 쉽지 않아졌다. 우리는 왜 도록을 만드는가? 아니 왜 도록 을 만들어왔는가? 도록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전시의 과정이자 의무인가? 도록은 전시의 또 다른 방식이다. 잘 만든 도록은 좋은 종이를 쓰고 인쇄를 잘한 도록이 아 니다. 작품이 있어야 할 장소 내 제 자리 에 놓이고 그 속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와 힘, 서사를 만들 때 좋은 전시인 것처럼, 좋은 도록은 주제와 표현에 관계 된 이미지나 문구를 비롯해 제작 과정, 작 가의 글, 평론가의 비평 등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야 하고, 그것이 모여 탄탄한 기 승전결의 구조를 이루어야 한다. 단순히 전시작품의 나열이 아니라 전시로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인쇄물의 언어와 기술을 빌려 만든 창작물이 전시 도록이다.
전시 도록의 제작 이유와 역할
전시는 순간이지만, 적어도 도록의 생명력 은 그보다 길다. 도록은 작가들이 작품을 복기하고 외부에 알리는 포트폴리오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종이 도록 대신 태블릿 PC나 노트북에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포트폴리오로 만들고 휴대하거나 메일에 첨부하여 사용하는 작가들이 많아졌다. 전시나 작업 과정을 찍은 영상물을 포트폴리오에 넣어 인쇄 도록이 할 수 없는 현장성과 역동성을 더하기도 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작가들은 도록 제작 계획이 있어야 전문 사진가에 의뢰해 도판을 촬영한다. 도록을 만들지 않는 작가들은 이를 생략하거나 본인이 직접 전시장 혹은 작업실에서 조명을 제대로 맞추지 않고 핸드폰이나 개인 카메라로 작품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다.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작품마저 판매하면, 후 일의 작가가 그리고 타인이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나아가 실용기를 만드는 작 가들은 조형 작가들보다 작품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덜한 편이다. 그래서 조형 전시보다 실용공예 전시가 홍보용 엽서나 접이식 카탈로그 제작으로 도록을 대신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최근 공예계에서 급격히 도록 제작이 사 라지는 현상은 한국 공예 전시가 조형보다는 실용공예 위주로 열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언택트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공예 전시와 데이터의 유형, 그 대응은?
아무리 종이 인쇄 도록의 효용성이 있다 해도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디지털의 세계로 이동하고 새로운 형태로 생산되는 4차 산 업혁명의 시대, 앞으로도 종이 도록 제작 의 필요성을 계속해서 주장할 수 있을까? 2020년 코로나 팬더믹이 전 세계를 덮친 올해, 미술계뿐 아니라 전 세계 예술계는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에서 전시와 공연을 펼치며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코로나19가 사라진다 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미 포스트 코로나 이후 모든 예술 문화매체가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 분 명한 상황에서, 예술의 창작, 기획, 향유, 소비문화를 비롯해 예술가들이 대중과 소통 하는 형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미 공예계에서도 거리두기로 인한 언택트 유통과 소비가 부상하고 있다. 정작 유독 아날로그적 사고와 방식에 가치를 두는 공예 인들은 이미 도래한 언택트의 시대에 예술계 안에서 무엇이 떠오르고 무엇이 사라지는지 알아채지 못하는 듯하다. 이 때문에 갈수록 공예전시문화에서 인쇄 도록 제작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기존 공예 전시의 문법을 지속할 것인가 버릴 것 인가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여전히 전시 도록을 제작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고 이제껏 그것을 생산해온 아날로그 방식은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유형의 공예 데이터들을 생산, 수집, 활용할 새로운 대응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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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0년 7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