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Topic
안정윤 〈숨, 소리, 바람 오브제〉
자연과 자신을 사유한 흙의 드로잉들
글_홍지수 공예평론가
2019.9.19~9.30 갤러리 우물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76-4
T. 02.739.6014
안정윤은 자연물을 소재 삼아 식물의 유기적 형태와 구조를 오브제 혹은 용기 用器 의 형태로 재현하는 작업 을 오랫동안 해왔다. 동식물이 시간의 궤적에 따라 성 장하고 변화하듯이, 작가 역시 근 7 , 8년 사이 크고 작 은 삶의 변화들을 겪었다.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고 가족을 이루면서 10 여년간 썼던 작업실도 정리했다. 남 길 것과 버릴 것을 추리며 이제껏 자신이 해왔던 작업을 반추하고 고민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나 결혼과 육아로 인해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적응해야 하는 데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고, 새 작업실을 마련하는데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몇 년간 마음껏 흙 작업을 늘리거나 그에만 매진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의 시간이 주어졌다. 작가는 그 시간을 작업을 하지 못해 조급해하기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도시의 삶 속에서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사로잡혀있던 마음의 강박이나 조급함을 내려놓는 자기 독대와 살핌의 시간으로 보냈노라고 했다. 도심에서 벗어나 풀숲이 우거지고 맑은 개울물이 흐르는 자연을 소요하며 자연스럽게 계절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과 탄생을 거듭하 는 생명의 경이와 변화를 발견하고 깨닫는 일은 흙과 불을 매체로 작업하는 도예가에게는 중요한 경험이다. 흙이 곧 자연이고, 흙 안에는 자연의 무수한 변화와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는 존재들이 뒤엉켜 있다. 그래서 도예가가 흙을 만지는 시간은 흙이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시간 그리고 사라진 생의 존재들을 헤아 리는 일이고 그에 빚져 자신의 재기를 더해 또 다른 무엇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도심 속 작업실에 틀어 앉아 자칫 무엇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만 골몰하다보면, 어느새 자신의 의지와 상상을 창작이라는 미명하에 흙에 관철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미 대학원시절부터 줄곧 씨앗, 식물의 잎 등을 소재삼아 흙을 만져온 작가이기에 여행이 아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식물의 성장, 바람과 공기의 이동을 자신의 신체로 감촉했던 시간들은 작가 안에 자리 잡은 감수성과 감각을 더욱 민감하게 깨우고 반 응하도록 만드는 단련의 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번 갤러리 우물에서의 〈숨, 소리, 바람 오브제〉전은 안정윤이 십여 년의 서울생활을 접고 새롭게 거처를 옮겨 작업장을 새롭게 마련한 후 작업한 결과물들의 모음이다. 전시장에는 작가가 매일 주변을 거닐며 쉬이 보고 만지고 소유했을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그것들을 유심히 보면, 밤, 도토리, 벌집, 호박, 연밥, 나무 와 잎사귀들 등의 식물들부터 새로 마련한 집이나 작업실의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마치 일상생활 가운데 작가의 시선에 우연히 들어와 박힌 소소한 존재들이다. 화가가 스케치북에 빠르게 드로잉 하듯, 그녀 역시 자신이 가장 잘 다루고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흙을 선택해 드로잉하듯, 일기를 쓰듯 형상을 빚었다. 물질, 매체를 다루는 테크닉의 감각이 엿보이기보다 오직 수공의 노고에 의지하여 묵묵히 흙벽을 세우고 연결하고 다져나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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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19년 10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