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II
라이카, 디지털 시대에 공예를 만나다
글_박중원 큐레이터
역사는 특정 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다. 특히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누군가의 인생에서의 역경과 고난, 역전과 성장을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브랜 드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생기기도 한다. 독일의 명품 카메라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바우하우스의 원칙처럼 필수적이고 꼭 필요한 부분, 본질에 집중하는 라이카는 이러한 브랜드의 역사 를 보여주고 있다.
광학 제조사였던 에른스트 라이츠 Ernst Leitz Optische Wreke 의 카메라 브랜드인 라이카는 본래 ‘ Leitz Camera ’에서 각각 앞 글자를 따와 만든 이름이다. 라이카가 카메라로서 최초 등장은 에른스트 라이츠의 현미경 연구를 담당했던 오스카 바르낙 Oskar Barnack 이 자신이 직접 사용하게 위해 1914 년에 최초의 35mm 소형 카메라를 만들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가 만든 카메라는 최초의 라이카라는 뜻으로 우어 라이카 Ur Leica 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라이카 브랜드의 전설적인 명성은 오랜 전통의 렌즈와 다양한 광학 기기의 탁월함에 그 기반으로 두고 있다. 라이카는 항상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혁신적인 도구를 개발해왔다. 그들이 창출 해낸 실험적인 카메라들은 전세계 카메라 시장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혁신적인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라이카만의 특별함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더욱 뛰어난 완벽함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라이카는 카메라 역사에 다른 카메라 브랜드들이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라이카만의 큰 족적을 남겼다. 2006 년 취임해 ‘라이카 제 2 의 부흥기’를 이끌고 있는 안드레아스 카우프만 Andreas Kaufmann 은 휴대폰 기술 발전이 디지털 카메라를 위협하냐는 물음에 “라이카만의 특별함은 따라올 수 없다”며 명품으로서의 라이카를 설명했다.
최근 해외 유명브랜드는 자신들만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특별한 장인정신, 예술가들이 뿜어내는 창의성과 혁신성에 의한 새로운 에너지의 만남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활성화하고자 하였다. 세계 최대 럭셔리 브랜드인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 LVMH : Louis Vuitton Moët Hennessy 를 비롯해 에르메 스 Hermès , 버버리 Burberry 등 세계 유명 브랜드는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과 협업하고 후원하고 있다. 라이카 카메라 또한 예외가 아니다. 라이카는 단지 명품브랜드로써 고급 카메라의 창출에만 몰두하지 않 고 있다. 그들의 또 다른 이상은 카메라로서 그 정신과 기술을 문화와 접목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제작과정의 많은 부분에서 장인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라이카의 렌즈들은 모두 극도로 정확한 수공업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고급 승용차처럼 모든 부분을 사람의 손으로 섬세하게 마무리 하는 라이카의 렌즈의 제조공정은 흡사 장인의 손길로 탄생한 공예품과도 같은 느낌을 전달해준다. 라이카는 수 년 전부터 공예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특히, 렌즈를 이루고 있는 유리라는 재료와 공예의 조우를 통해 그들만의 새로운 시도들을 선보이려 하고 있다.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이 돌을 부수고 갈고 섞어 만든 최초의 인공물인 유리는 카메라의 렌즈를 넘어 이제 우리의 일상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다.
현대를 상징하는 물질 중 하나인 유리는 우리의 일상 생활을 바꿨고, 삶에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누구나 좋아하는 자연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창문, 투명한 물성 자체의 매력으로 최소한의 경계를 이루며 내부와 외부를 연결해주는 것은 유리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아름다움 이다. 이러한 매력을 지니면서 자연에서 태어나 불로 승화되어 장인의 손에 의해 공예와도 같이 새롭게 창출된 라이카 카메라의 렌즈는 기술, 예술을 넘어 세상을 변화시켜왔다. 그들이 공예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아마도 세계 유명 브랜드들의 변화에서도 알 수 있다. 업계가 변하고, 소비자들도 변하고 있는 현실에서 명품으로서의 브랜드 가치를 보존 및 계승하기 위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그들에게 공예는 신선한 공기와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