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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월호 | 작가 리뷰 ]

희뫼 김형규- 더 깊고 넓은, 도자의 언어
  • 편집부
  • 등록 2020-05-16 23:51:54
  • 수정 2020-08-19 03: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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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뫼 김형규
더 깊고 넓은, 도자의 언어
글.박진영 객원에디터 사진.이은숙 포토그래퍼

작년 봄, 서울 효자동 갤러리 우물 전시에서 희뫼 김형규의 그릇을 처음 보았다. ‘맑고 힘 있는’ ‘결, 빛, 선’을 지닌 그의 백자 그릇은 그간 봐오던 백자와 사뭇 달랐다. 먼저 빛깔이 눈에 들어왔다. 흙과 불이 그려낸 흰빛, 회색빛, 푸른빛, 혹은 노란빛이 그릇 안에 오묘히 감돌면서 자꾸 시선을 붙들었다. 각기 다른 모양과 패턴처럼 드러난 물레의 선에서는 도예가의 맵찬 손길이 느껴졌다. 도예가는 전남 장성의 시골 마을에서 전통 방식대로, 장작가마에 도자기를 굽는다고 했다. 서울 도심의 갤러리에서는 아득하게 여겨지는 시공간. 그로부터 딱 일 년이 지난 올 봄에 그를 만나러 전남 장성에 자리한 희뫼요를 찾아갔다.
산길을 오르고 저수지를 지나고 좁은 길을 돌아 도착한 넓은 터에 여러 채의 한옥이 자리한다. 바람이 가장 잘 드나드는 자리에 일곱 칸 가마를 먼저 앉히고 양 옆에 작업실과 살림집, 그리고 좀더 위쪽에 전시관까지 차례로 지어 ‘희뫼요’를 일구는 데 6년이 걸렸다. 장성에서 나고 자란 김형규 작가는 도자기를 만드는 재료도 “하루에 도보로 갔다가 돌 아올 수있는 거리” 내에서만 구한다. 흙(백토)은 5대가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넉넉한 양을 이미 구비해 놓았고 어떤 그릇器을 만드느냐에 따라 적당한 흙을 섞어 수비해서 사용한다. 흙은 희뫼 도자의 시작이자 본질이다. “바위에서 자갈, 자갈에서 모래, 다시 작은 알갱이가 되어 켜켜이 쌓여 층을 이루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리죠. 그 시간 동안 상상할 수 없는 아픔과 고됨을 겪게 되고요. 이렇게 만들어진 흙을 다루는 일은 굉장히 숭고하고 신성할 수 있습니다. 그 많은 세월과 과정을 거친 흙을 어느 순간 딱딱한 그 릇으로 환원시키는 건 흙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 있어요. 내 욕심을 최대한 빼고 딱 필요한 만큼의 변화만 주어야 해요.”

희뫼 김형규는 여기에 자리잡기 전에 사람들이 살지 않아 길조차 나지 않은 산골로 작정하고 들어간 적이 있다. 주변의 흙과 버려진 나무로 ‘가로 열여덟 뼘, 세로 열두 뼘’의 작은 집을 직접 짓고, 세 칸짜리 가마도 직접 지어 그릇을 구웠다. “도자기 공부가 절실해서 다른 사람들 영향을 받지 않는 곳으로 도망간 거에요. 밥도 지어 먹으면서 그릇 도 만들어야 하니 힘들었어요. 전기가 안 들어오니까 밤에 는 발물레를 돌려 감각으로 그릇을 빚고, 돋보기로 한 자 한 자 책을 읽었어요. 다독은 못 해도 정독은 할 수 있었는데 그릇도 책 읽는 것처럼 정성껏 만들었어요.”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스승과 함께 흙이 있는 곳을 찾아가 가마를 짓고 그릇을 구워냈다. “요맘 때 같은 이른 봄에 김치냉장고보다 조금 클까, 아주 작은 단가마를 만들고 그 옆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가을까지 작업했어요. 불을 서너 번 땠어요. 최대한 양질의 흙을 퍼다가 밟아서 아끼고 아껴 그릇을 만들고, 고르고 골라 가마에 넣고 나머지 흙은 원래대로 두고. 몹시 힘든 일이었는데 거기서 맛 보는 행복이 굉장히 컸어요. 힘들게 한 만큼 자존감을 크게 느꼈고 가마에서 구워낸 그릇 중에 안 좋은 그릇이 하나도 없었어요.” 이 시절에 비하면 흙이며 공간이며 모든 여건이 좋아졌는데 희뫼는 언젠가 다시 오래 전처럼 흙의 본 질에 더 가까운 작업, 다시 말해 생흙의 성질을 임의로 거스르지 않고 그릇으로 만드는 일을 꼭 다시 해보고 싶다.

욕심을 거둔, 흙의 본질에 더 가까운 작업
희뫼 김형규는 주로 다기와 달항아리를 만든다. 그 중에서 다기는 도자기 공부를 처음 할 때부터 만들어왔는데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청년 시절에 출가한 희뫼는 절에서 운영하는 가마에서 그릇 굽는 광경을 우연히 보고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차를 많이 마시는 절집에서는 다기를 많이 만들었고 그도 자연스레 그 길로 들어섰다. “지금 돌이켜보면 굉장히 잘 한 일이에요. 다기 중에서도 다관은 조형성과 실용성을 겸비해야 해서 만들기가 가장 어려워요. 그 시절에 많은 공부를 했고 그 후에 다관에 맞는 흙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녔어요.” 희뫼에게 다관에 맞는 흙이란 무엇인지 묻자 ‘차를 맛있게 내어줄 수 있는 흙’이라 답한다. 그런 흙이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그걸 구분하려면 차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끊임없이 찾아서 실험하고 마셔봐야 한다. 녹차, 황차, 보이차 등 각각의 차에 맞는 흙을 분류해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공부가 끝이 없다. 다관 만드는 일은 30년 경력의 도예가를 지금도 몹시 긴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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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0년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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