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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월호 | 작가 리뷰 ]

스티브 해리슨 박사를 만나다
  • 편집부
  • 등록 2020-03-30 15:49:51
  • 수정 2020-08-19 03: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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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스티브 해리슨 박사를 만나다

호주 시드니 산불 피해 현장에서

글.조은미 이화여대 도예전공 겸임교수

 

최근 6개월 이상 호주에는 전례 없는 산불이 이어지고 있 다. 지난해 9월부터 6개월간 호주 대륙을 집어삼킨 사상 최 악의 산불 사태는 현재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다. 최근 폭우로 100곳이 넘는 산불은 진압 되었지만 아직도 40여 곳 이상은 불에 타고 있다. 1만1264곳에서 일 어났던 산불로 1800만 헥타르(한반도 면적을 훌쩍 뛰어넘 는 면적)가 불탔고, 3000채 이상의 집이 소실됐으며, 33명 이 목숨을 잃었고, 동물 10억 마리가 멸종 위기 등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많은 도예가들의 작업실이 도심에서 벗어나 산과 밀접한 외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산불로 피해가 크다. 그 중 스티브 해리슨Steve Harrison박사와 그의 파트너 재닌 킹Janine King 스튜디오도 예외는 아니었다. ABC 뉴스와 BBC 뉴스, 한국 연합 뉴스 등을 통해서도 그 당시 스티브 해리슨 박사의 상황을 보도한 바 있다. 그 때의 상황은 잠 시 뒤로 하고 먼저 스티브 해리슨 박사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한다. 해리슨 박사는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 주 New South Wales 서던 하일랜드 지역Southern Highland 발모랄 Balmoral Village에서 도예 작업을 하고 있다. 1893년에 설립된 작은 폐교를 개조해서 그들의 농장과 작업장을, 그 리고 생계를 위해 핫앤스티키Hot&Sticky.Pty. Ltd라는 가마 제조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1968년부터 도예가, 강 사, 가마제작자 및 저자로 흙작업을 했으며. 단일의 원료로 백자를 제작할 수 있는 도석native single-stone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 객관적인 그의 이력보다도 인상 깊은 생활 방식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도자계의 로컬푸드주의자Local food 혹은 로커보어Locavore이다. 내 스스로를 50km 2 공간 크기의 팔레트 원료에 국한시키기로 결정했고, 장작 가마에 쓸 나무도 직접 키운다. 지역에서 나오는 백색 보크나이트 내화점토 로 다량의 가마용 내화 벽돌을 직접 만든다. 유약은 도석이 나 그 밖의 지역 화성암, 셰일 이판암, 자갈, 재 등으로 제조 한다. 작업장에서 소량으로 나눠 비효율적이지만 내 손으 로 모두 분쇄하고 가공해서 만든 유약들이다. 작업장도 나 와 내 파트너 재닌 킹이 직접 지은 것으로, 작업장 근처의 점토로 진흙 벽돌을 만들어 사용했다. 넓은 텃밭과 과수원 에서 우리가 먹을 채소와 과일도 직접 재배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환경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2년 전, 그의 농장에 처음 방문한 본 저자는 큰 감명을 받았다. 빗물을 정화하여 식수를 포함한 모든 생활용수를 사 용하고 있었는데 가뭄에는 물을 더 아껴 써야 한다고 했 다. 가정용 전기와 초벌용 전기가마 모두 태양열을 이용하고 있었다. 장작가마도 번조 때 배출되는 매연도 최소한으로 배출되게 고안해 직접 제작하였다. 벽돌과 내열벽돌도 직접 제작하고 연료 사용을 위한 나무도 직접 재배하고 있 었다. 주방에 있는 가구 대부분도 그들이 기른 나무로 만든 것이었고 치즈와 고기를 제외한 대부분 식재료는 자급자족 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작업에 쓰이는 점토 역시 환경을 파 손하지 않기 위해 광산에서 채취한 점토를 사용하지 않고, 거주 지역 가까이 발견할 수 있는 흙을 정제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의 모든 전체 삶의 방식이 예술이었다. 이런 그의작품은 환경과 관련된 윤리적인 문제도 생각해 보게 한다. “도예가로서 초기 시절부터, 바로 사용할 수 있거나 혹은 도자작업에 활용할 수 있는 원료 측면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어떤 광물이 있는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노천 채 광처럼 지표를 방대하게 깎아 들어가는 대규모 광산에서 원료를 구매하는 것 보다, 노변 절개지나 농부의 작은 방목 장에서 돌이나 자갈을 줍는 것이 자연환경을 훨씬 덜 훼손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쓸 흙과 암석을 윤리적이 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방법으로 구하고 파괴의 흔적을 최 소한으로 유지하는 것이 내겐 중요하다.” 이런 삶의 방식을 추구하던 그였기에 이번 산불은 더 없이 안타깝고 충격적이었다. 지구 기후 변화를 주원인으로 보고 있는 이번 산불은 2019년 9월에 시작되었고, 4개월째 접어들던 12월 스티브와 재닌 역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산불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전한다.

 

 

현재 호주는 5개월 이상의 기록적인 산불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많은 예술가가 산불로 인해 피해를 입었고, 스티브의 농장도 가마실과 작업실이 완전히 불타버리는 등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산불 당시가 크리스마스 시즌이었고, 현장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그 때의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불이 난다는 것을 알았지만 불이 언제 다가올지 몰랐다. 그래서 화재가 있기 전 일주일 동안 잔디를 깎고 죽은 나뭇잎들을 긁어모으는 등 화재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당을 청소하였고, 집 앞부분을 알루미늄 호일로 감싸 열로부터 집을 보호했다. 재닌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고 나는 집과 작업장을 지키기 위해 머물렀다. 12월 21일 오후 1시경 산불이 이곳을 통과했다. 우리는 화재에 대한 준비 가 잘 되어 있었다. 나는 각 건물에 하나씩 4대의 독립형 휘 발유 동력 고압 소방용 펌프들을 구입하여 설치했다. 그리 고 내가 집, 작업실, 가마공장과 헛간에 건물들을 지을 때, 벽과 지붕을 따라 간격을 두고 여러 개의 스프링클러를 설 치했었다. 이렇게 화재에 대비하고, 불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불을 기다리는 동안, 화재 전날 나는 뒷마당에 작은 가마를 하나 지었는데, 사람이 기어 들어갈 정도의 크기 였다. 계획 B가 필요하면 그 가마를 이용할 계획이었다.

 

순식간에 화마가 농장을 덮쳐 작업실 밖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어떻게 살아남으셨습니까? 매우 위험하고 아찔한 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내 계획은 불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모든 펌프를 가동시켜 건물들이 빗방울의 고운 안개 같은 수분으로 뒤덮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트럭으로 마을에 있는 대피소로 ‘안전히’ 가려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불이 너무 빨리 다가왔 고 너무 맹렬하고 뜨거웠다. 도로, 마당, 진입로, 정원, 기차 레일 모두가 동시에 불길에 휩싸였다. 대참사였다! 불길은 울부짖고 있었고, 불꽃과 화염이 수평으로 허공을 날고 있었다. 나는 차를 몰고 가기 위해 트럭으로 달려갔지만, 불이 나를 덮쳤고 트럭에 다가가는 것조차 불가능했기 때문에 전날 만들어 놓은 대피용 가마로 달려가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미친 듯이 뜨거웠다. 나는 더위와 불길에 휩싸여 내가 경험했던 공포감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가마 바깥의 온도 는 수백 도였을 것이다. 하늘은 연기로 검게 그을렸지만 공 기는 붉고 노랗게 빛났으며, 불꽃으로 윤기가 흐를 정도였 다. 가마에는 소방 담요와 소화기, 물 한 양동이와 식수 한 병을 준비해 두었었다. 내가 마신 한 병의 물은 목마름보다 는 충격과 고통스러움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산불 피해도 상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 규모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불이 지나간 뒤에 모든 것이 불에 타 버렸다. 정원수와 관목도,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까맣게 타있었다. 숨어 있던 대피용 가마 틈 사이로 작업장에 불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작업실을 잃어버렸다. 15분에서 20분 정도 지난 후, 불길이 조금 잦아들었을 때, 나는 나의 집이 그대로 있는지, 화재에 전소되어 없어졌는지 살펴보았다. 아직도 붉고 강렬한 불길들이 날아다니고 있어서 말할 수 없이 뜨거웠다. 나는 집으로 달려와 스프링클러로 물을 몸에 뿌려 몸이 조금 식을 수 있게 했다. 화염과 불타는 나무들로 인해 공기는 여전히 매우 뜨거웠다. 일단 몸 상태가 조금 나아진 후, 창고 지붕의 작은 불을 끄기 위해 호스의 물을 뿌리기 시작했고, 여전히 불타고 있는 헛간 구석의 불을 끄려고 했다. 혼자서는 그 불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닫 고 소방대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용 가능한 소방차가 없었다. 그들은 소방 헬리콥터를 보내줬고, 공중에서 헛간에 물을 투하했다. 이것은 헛간을 화재로부터 구하는 데 도움이 됐다. 내가 가장 살펴야 할 부분은 집 뒤에 있는 큰 소나무의 죽은 가지 몇 개가 불에 탔다는 사실이었다. 그 나뭇가지들의 불꽃과 불씨는 집 지붕을 태우며 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지붕을 적시기 위해 스프링클러를 꾸준히 작동시켰다. 하지만 밤새도록 펌프를 작동시킬 충분 한 물이나 휘발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밤에 펌프를 멈추고 화재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집을 구하기 위해 쇠사슬로 나무에 올라가 불타는 나뭇가지를 잘라내기로 결심했다. 될 수 있는 대로 가까이 올라가 머리 위의 나뭇가지를 잘라냈다. 귓가에서 나무를 오를 때 쓰던 사다리에서 휘파람 같은 울림이 지나쳤다. 나뭇가지가 땅에 떨어지며 사다리 근처의 잔디에 불이 난 것이었다. 나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불길을 뚫고 소방펌프로 달려 가 그 불을 꺼야 했다. 집을 두 번이나 구했지만, 스트레스와 노력과 두려움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나는 넘어져서 몸을 떨기 시작했다. 멈출 수가 없었고, 침대로 기어 들어갔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벌벌 떨며 누워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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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0년 3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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