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자문화유산(4)
전통의 맥을 잇다, 남북의 도자기
황해도의 도자문화
글_박정민 명지대 미술사학과 조교수
「청자‘순화4년’명항아리」국보 제326호│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최근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청자‘순화4년’명항아리」舊 보물 제237호가 국보 제326호로 변경 지정되었다. 도자기의 역사를 공부하는 필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 항아리는 고려청자의 탄생 시기와 배경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담은 그릇이다.
「청자‘순화4년’명항아리」는 굽 안쪽에 ‘淳化四年癸巳太廟第一室享器匠崔吉會造’라는 명문이 표시되어 있다. 순화 4년 계사년인 고려 성종(成宗)(1) 2년(993)에 태묘(太廟) 제1실 제기로써 장인 최길회가 항아리를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국보 제326호와 같은 형식의 명문이 새겨진 청자가 1989년 북한 황해도 배천군 원산리 청자가마터에서 출토되었다.
원산리 청자가마터에서 발굴한 「청자‘순화3년’명두편」(992년, 成宗 11)의 굽에는 ‘淳化三年壬辰太廟第四室享器匠王公托造’라고 새겨져있다. 명문의 내용은 「청자‘순화4년’명항아리」처럼 그릇을 만든 시기, 그릇의 쓰임, 제작자에 대한 정보다.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는 배천 원산리 청자가마터 말고도 봉천군 봉암리 청자가마터와 장풍군 고읍리 청자가마터 등 총 3기의 고려시대 벽돌가마를 황해도에서 발굴했다. 북한 당국이 황해도에서 발굴한 벽돌가마와 청자는 우리나라 초기청자(初期靑瓷) 제작시점과 특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제공해 주었다.
(1) 조선 초 황해도에 등재된 자기소와 실제 발굴조사된 황해도 분청자 가마터에 대한 자세한 접근은 필자의 졸고를 참고할 수 있다. 박정민, 「조선 15세기 황해도(黃海道) 자기소(磁器所)의 등재(登載) 기준과 특징」, 강좌미술사 49, 2017, pp. 209-228
황해도는 고려 수도 개경(開京)의 주변으로 당대 정치, 경제, 문화의 핵심지였다. 개경 주변에서 초기청자를 제작했던 가마터가 거듭 확인된 것은 고려에서 처음 제작된 청자가 주로 수도와 그 주변에서 사용되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원산리 청자가마터가 자리하는 황해도 배천군은 개경에서 인근의 거점 항구인 해주(海州)와 옹진(甕津)으로 가는 어귀다. 실제로 원산리 청자가마터에서 ‘순화4년’명 청자가 제작된 993년(成宗 12)에 고려로 온 송나라 사신단은 옹진나루에 상륙하여 배천을 지나 개경에 당도했다. 황해도는 개경의 배후지이자 육로와 수로가 모두 발달한 교통의 중심지로 많은 사람과 재화가 모여든 곳이다. 그러한 토대 위에 고려시대 청자문화의 첫 단계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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