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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7월호 | 특집 ]

[특집] 옻칠 도자의 현대적 변용
  • 편집부
  • 등록 2018-08-06 16:52:57
  • 수정 2024-07-23 17: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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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 도자의 현대적 변용

 

박종훈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신라연 한국도자칠예원 대표


옻칠은 청동기 시대 말기 유적에서 발견되었을 만큼 그 역사적 유서가 깊다. 발견된 유적이 청동기 말기원전 3세기 경이라 함은 역으로 이보다 몇 천 년 앞서 이미 옻칠을 활용했을 거란 추측도 가능케 한다. 고대에는 ‘칠하다’라는 뜻의 말을 ‘옻칠하다’라는 말로 사용했다. 이는 당시에 칠할 수 있는 재료가 ‘옻’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민족의 삶 전반에 걸쳐 ‘옻’은 함께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옻나무는 동아시아에서만 재배되는 특산물이기에 옻칠 문화는 동양의 특수한 문화이다. 그중 한반도는 전역에서 옻나무의 성장이 가능한 기후와 풍토를 가지고 있어 옻 문화 발달에 좋은 조건을 지닌다. 특히 한국은 옻나무를 식용으로도 활용하며 의, 식, 주와 연관하여 사용해왔을 만큼 사용 범위가 넓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옻칠 문화는 미술사적 관점과 문화사적으로도 연구 가치가 있다. 선조의 옻칠 활용 방식에 대한 우수성과 지혜를 엿볼 수 있어 연구, 계승할 가치가 충분하다.
역사적 흐름을 간략히 요약해보면 보면 선사시대에 옻칠공예문화가 도입됐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옻칠공예 제작법이 전해지고, 또 우리만의 독자적인 방식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고려 시대에 이르면 나전칠기 전성기라 할 만큼 옻칠이 발전한다. 『동국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보면 문종이 요나라 왕실에 나전칠기를 선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화려한 공예기술은 쇠퇴할 수밖에 없었지만, 귀족중심적인 취향에서 대중적인 취향으로 방향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조선시대까지 칠공예가 관官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개화기 이후부터 자유롭게 일반인들이 생산할 수 있는 체제가 되었다고 한다. 개화기가 돼서야 관의 통제가 끝났다고 하니 국가에서부터 철저하게 관리하며 이어 내려온 전통공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옻칠공예는 그 바탕 재료에 따라 종류가 다시 세분화된다. 그중에서도 도자기의 표면에 옻칠을 한 것을 ‘도태칠기’라 한다. 도태칠기는 선사시대 토기, 철기시대 유물에서도 발견되었을 만큼 오래전에 시작됐다. 이 시기 토기들은 다공질로 흡수율이 높고 내구성과 내수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선조들은 옻칠을 활용한 것이다. 덕분에 견고성, 방수 효과, 내열성, 사용성, 보존성 등을 높이는 것이 가능했다. 부수적으로는 옻칠 이후 광채가 나고 표면이 매끄러워 장식용으로도 효과적이었다. 오늘날 발견된 유물에서도 옻칠을 한 도기에서는 색도 보존되어 있고, 광택이 나는 등 영구적인 보존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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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18년 7월호를 참조바랍니다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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