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인으로서의 가치관ethos
영국에서 도예가로 살아남기
이 준 도예가
영국으로 떠나기까지의 준비
처음 대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나는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무엇을 배우게 될지 아무것도 몰랐다. 모두가 대학을 가서 나 또한 대학에 갔고, 내가 선택한 학부였지만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해 어떤 의문도 관심도 없었다. 모든 스무 살이 으레 그렇듯 ‘내가 뭘 해야 하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에 가득 했다. 그때 『공예의 길-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책을 만나면서 내 꿈은 처음 시작됐다. 그는 책 끝자락에 하나의 메시지를 남겨 뒀다.
‘공예는 본질을 잃었고 본질을 잃은 공예는 몰락했다. 디자인과 예술 사이에서 방황하는 공예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공예는 본질을 되찾을 것이며, 다시 부활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날 나는 공예운동가가 되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당시 나의 새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진 상태였고, 어머니가 직장을 그만두시면서 우리 가족은 거의 모든 걸 다 잃은 상태였다. 내 꿈은 불안과 절망 그 자체였고, 현실적인 문제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을 믿기로 했다. 공예운동가가 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나는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대학에서는 자격증을 따야 하며, 공모전에 입상해야 하며,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예운동에 대해 고민하는 나는 현실을 모른 채 꿈만 꾸는 어리석은 몽상가에 불과했다. 고민 끝에 나는 내 두 손으로 전 세계를 여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곳에 사는 도예 작가들을 만나 배우고 성장하며, 스스로 경비를 해결하고, 동시에 수공예의 아름다움,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는 작가가 되자고 다짐했다.
꿈을 향한 첫 번째 도전은 전국 각지에 있는 대한민국 최고 도예가들을 직접 만나 가르침을 얻는 것이었다. 해외로 나갈 꿈을 준비하며 나는 천한봉, 김정옥, 서광수, 이세용, 문병식 작가님 등 수 많은 훌륭한 도예가들을 만났다. 그 만남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었다. 특히 이세용 선생님으로부터 도예가의 기반이 되는 틀을 배우며 꿈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외국으로 가려면 영어공부는 필수적이었지만, 어학연수를 떠나거나 학원을 다닐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외국에 가지 않아도 다양한 Native english speaker가 말하는 영어를 들을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을 선택했다. 유튜브에는 수준 높은 영어 강연과 대화가 널려 있었고, 내가 원하는 속도로 구간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었다. 무슨 뜻인지 몰라도 입으로 흉내 내서 따라할 수 있을 때까지 듣기를 무한 반복했고, 알파벳을 유추해서 검색하며 뜻을 외우고 다시 듣는 과정을 2년 동안 매일 2시간씩 반복했다.
영국에서 도예가로 살아남기
모든 준비를 마치고 처음으로 향한 곳은 아일랜드였다. 스스로를 믿고 준비해서 떠난 길이었지만, 막상 낯선 곳에 다다르니 두려움이 컸다. 그러나 유럽을 무대로 나의 가능성을 실험해 보고 싶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구글 등 SNS를 활용해서 유럽 각지의 도예가를 찾는 것이었다. 작가들의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작업 성향이 비슷한 작가들과 마음에 드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간추리고, 명단을 만들었다.
이하 생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18년 6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