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식 도예전 2002. 4. 10 ~ 4. 16 갤러리 블루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은밀하게
글 / 김동성 미술세계 기자
사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작가 홍진식의 작품들은 방문자에게 그렇게 쉽게 속살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작품을 떠받치는 핵심적인 조형언어로 고대 신라 토우(土偶)의 많은 부분이 유입되었는데, 이는 유물이 갖는 역사적 경륜과 이력을 모두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표정의 얼굴들도 무리 지어 같은 공간을 점하고 있는데, 그 속사정을 일일이 들어보지 않아도 많은 이야기가 배어있어 보인다.
특히 한 작가에게서 배태된 두 가지 이야기가 만나는 꼭지점을 찾을라치면 상황은 보다 복잡해진다. 다행히 그는 평소 작업간 적어놓은 자신의 ‘작업일지’를 훔쳐보는 행위를 너그럽게 허락해 주었는데, 여기에는 이 같은 그의 작업을 훑어가는 결정적 단서들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그는 신라시대 토우로 보여지는 말(馬)을 형상화하면서 다음과 같은 여러 줄의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뜀박질을 못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말이라는 동물을 좋아했고, 항상 말처럼 달리는 꿈을 꾸곤 했다. 나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말의 형상들은 너무나도 정적(靜的)이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말의 형상을 통해 지금 나의 이상과 현실을 표현해본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작품에 자신의 이상과 염원을 투사(投射)시키고자 했다는 것과, 신라시대 인물형 토기의 그것에서 자신의 메아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즉, 그는 사자(死者)의 부장품과 함께 보여지는 인물형 토기―예를 들면,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 인물형 토기―가 갖는 ‘주술적 성격’에 주목하고, 이를 자신의 현실적 욕구로 재해석하여 작품화 한것으로 이해된다. 이렇게 볼 때, 전시장에 들어찬 여러 필의 말들은 그의 ‘말처럼 달리고 싶다’는 ‘강한 의욕’의 표출로 이해하거나, 비만에 가까울 만큼 덩치가 좋고 여유 있어 뵈는 인물상은 다소 마른 체격의 작가가 ‘살도 찌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싶다’는 솔직한 염원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듯 하다. 한편, 그는 다수의 얼굴 테라코타를 제작하며, 다음과 같은 고백을 들려주었는데 의미심장해 보인다.
“어릴 적부터 나는 장날을 좋아했다. 장이 서면 무수한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진다. 그 시공간 속에서 나는 쌓여 가는 빛 바랜 나의 사진들을 바라본다. 무엇인가 동경하고 갈구하던 나, 사람들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나, 함께 있으면서도 늘 혼자 있는 나, 작지만 깊은 슬픔에 잠긴 나 나는 그러한 사진들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작업일기〉에서 이 같은 고백은 그가 끊임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복잡다단한 모습을 통해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실재하는 ‘내면의 표정’에 주목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는 그가 자신의 현실적 욕구의 투사와 표출이라는 이전의 직설적인 발언과는 구별되는 ‘내밀한 속삭임’으로, 그의 작품군(作品群)에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결국, 홍진식은 주술적, 직설적, 역사적 성격을 동반하는 신라시대 토우와의 의식적 교감을 ‘날줄’로 드리우고, 자신의 내면에 비친 동시대 이웃들이 갖는 다양한 표정과 그 모습을 ‘씨줄’로 삼아 ‘자신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탐사해 가는 작가로 이해된다. 실제로‘내 모습 찾기’라는 문장은 그의 작업일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