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일 <wriggle-tangle>전
8.29~9.27 리앤박 갤러리
2013년 오랜 작가 생활 중에 찾아 온 슬럼프는 현재 작업의 근간이 됐다. 지난 모든 작업의 흔적을 뒤로 한 채 처음 미술을 하던 때로 돌아간 윤주일 작가는 400여장의 전지를 구입해 드로잉을 시작했다. 그동안 익혀 왔던 선이 아닌 무정형의 선들을 무작위로 그려 나가기를 1년, 150장의 전지에는 연필선들이 교차하며 만들어 낸 패턴이 빼곡했고 이것을 다시 입체로 전환하려는 시도에서 「wiggle-tangle」의 시리즈가 제작됐다. 이번 전시작들은 지난해 가을부터 작가가 쉬지 않고 만들어 낸 작업들이 처음으로 소개된 전시다.
우연에서 시작된 작업 ‘wiggle-tangle’
바닥에 떨어뜨린 담배꽁초를 집으려다가 탁자 밑에서 자코메티의 가장 아름다운 조각 작품 하나를 발견했다. 그가 감춰 두었던 그 조각은 온통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부주의한 방문객의 발 밑에서 하마터면 부서질 뻔 했던… “그게 정말로 뛰어난 것이라면 설사 내가 감추어 놓았다 하더라도 스스로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거요.”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장주네
이 한권의 책 속에서 발견한 질문은 작가로 하여금 작업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는 의미를 발견하는 주체와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 사이에서 ‘의미’와 ‘형태’는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가의 답을 찾기 위해 어깨가 마비될 만큼의 시간을 드로잉 작업에 매달렸다. 여백을 메워가는 무형의 선들이 반복되며 일정하게 만들어가는 패턴은 형태의 생성과정을 유추하게 도왔고, 이후 본격적인 작업의 자리로 돌아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작업을 시작하게 했다. 2차원으로 드로잉했던 선에서 발췌한 형태를 3차원의 조형으로 만들기 위해 굽을 깎은 후 버려지는 굽밥, 손이 가는 대로 만든 유닛들이 ‘선’의 역할을 대신했다. 단단하지만 물컹거리는 시각적 질감을 갖는 에폭시 속에 무수한 도자 유닛이 정렬해 있는 작업들은 여러 재료의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다.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기 위해 형태의 틀은 우드락으로 만든 후 그 안에 에폭시를 부어 유닛을 배열하고 1차 경화를 진행한 것이다. 다시 에폭시를 붓고 유닛을 배열하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전체 작품의 두께를 만들고 색을 배색시켜 가면서 여러 색이 중첩되는 효과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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