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전
익숙한 그러나 생경한 청화
9.2~9.15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
| 홍지수 미술학 박사, 홍익대학교 학술연구교수
김정범의 청화는 한국 현대도예가 이제껏 전통의 새로운 계승이나 재해석의 일환으로 해석해온 이미지들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비싼 재료를 아끼기 위해 과감한 생략과 효과적인 상징을 고안하고 백색의 여백에서 단순함과 간결함을 도출하고자 했던 옛 도자의 조형정신을 복구하는 대신, 그는 옛 재료와 방식으로 그리되 오늘날 도자가 담아내야 할 사회일반의 요구와 담론을 가장 익숙한 그러나 가장 생경한 푸른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전시장에는 도판, 그리고 절규하는 손과 장화, 잠수 마스크, 기계 형상이 혼재된 모뉴먼트가 자리한다. 자유분방한 청색 붓질은 평면과 입체를 가릴 것 없이 백토 또는 화장토로 분장된 하얀 화면을 종횡으로 휘지揮之한다. 붓은 예술사 마디마다 푸른색으로 그려진 유명한 명화들, 수많은 공예품의 피부를 덮었을 반복적 패턴들을 재현한다. 그 중에는 그간 작가가 인간, 생과 죽음, 희생과 희망에 관해 지속적으로 사유하고 탐구해왔던 아이의 두상이나 해골, 반핵, 심장 등 익숙한 기호들도 등장한다.
사각의 프레임 속에 거주하는 작품 단편들의 조합은 거대하고 단일한 형상을 만드는 대신 개별 단위들의 집적을 통해 통합적 구조를 완성해온 그의 오랜 조형방법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각의 유니트들은 문뜩문뜩 떠오르고 유류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기억에서 태생하고 선택된 것임을 스스로 증명하려는 듯 순서와 맥락도 없이 나열된다. 단편들은 개개의 요소들을 서사와 이미지의 연속성 속에서 균형있는 조화를 도출하려는 총체적 구성에 종속되지 않는다. 나아가 작가는 심미적 기능적 필요에 의해 옛 도자의 어깨, 기저부, 전 등 기器의 주변부에 자리했던 공예 의장적 무늬들을 화면의 중앙으로 옮기고 확대하고 해체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체는 가장 아날로그적이고 가장 정성스런 붓질로 실천된다. 작가는 세필이 만든 겹침과 머묾, 번짐을 확대해 추상과 물질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작가는 다시 매끈한 초벌 백토의 표면 위에서 물 머금은 붓을 타고 번지고 퍼지고 흐르고 메우는 코발트의 다채로운 색채와 효과, 깊이, 변화를 끊임없이 증식시키고 채집한다. 이 선후와 맥락 없는 푸른 평면의 알레고리들은 절규하는 손, 기계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잠수부 마스크, 장화로 결합된 모뉴먼트 구성의 표피에도 동일하게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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