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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11월호 | 전시리뷰 ]

쓰임새를 위한 마음쓰임새
  • 편집부
  • 등록 2003-07-15 13:23:28
  • 수정 2018-02-20 17: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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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신·김선미 그릇전 2002. 10. 2∼10. 8 인사아트센터

쓰임새를 위한 마음쓰임새 글/우관호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장

 지난 10월 2일부터 8일까지 인사아트센터 5층에서 열린 이윤신, 김선미 도예전의 제목은 ‘二器’였다. 뜻대로 한다면 두 개의 그릇 또는 두 가지의 그릇 또는 두 작가의 그릇이 되겠으나 그들의 그릇들을 보고 또 각자의 생각들을 알고 나니 ‘利器’라는 표현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만큼 그들의 그릇들은 손으로 만들어진 그릇이라는 단순한 인식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다소 연배의 차이는 있지만 두 사람은 전문적인 예술가의 길을 지향했고 그러기 위해서 유학까지한 경력이 있다.

귀국 후의 활동에서도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며 특히 이윤신의 경우에는 전문적인 큐레이터 과정도 이수하였고 실제로 몇 회의 국제전을 기획한 경력도 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적어도 5년 이상 10년의 세월에 걸쳐 그릇을 만들어 왔다. 소위 잘나가는 작가의 길과 교직자의 길을 뿌리치고 그릇을 만들어 온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사실 필자는 그릇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따라서 작가들의 주장들을 정리하여 알리는 편이 두 사람의 그릇관을 알리는데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더도 덜도 아닌 ‘쓰임새’였다. 우리는 이도(井戶)다완을 잘 알고 있다. 왜 이도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이도란 말을 쉽게 회자시킨다. 지금은 찻그릇으로 딱 못이 박혀버렸지만 그 옛날의 이도는 어쩌면 상상밖의 쓰임새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그릇들은 쓰임새를 기반으로 한 헌신과 봉사의 소산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그릇을 만들어 거저 나누어 주는 것은 아니다. 적정한 가격에 의해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본인들 나름대로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서 그들의 그릇들은 우리나라 도예계의 영역을 확장하는데 많은 봉사를 하였다. 푸드 스타일리스트들의 갈증을 해소해주었고 좋은 그릇의 전형을 알렸으며 후배 도예가들에게는 살아가는 방식을 일깨웠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역할의 이면에는 그들이 기울인 각고의 노력과 애태움이 진하게 깔려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사실 결과로 나타난 것들을 보는 사람들은 “아 이쁘다" 또는 “잘 만들었다"이겠지만 그것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두 작가는 얼마나 많은 속을 끓였을까? 5mm의 내외의 크기 차이와 측면선의 미세한 기울임에도 그릇들은 핥아 놓은 죽사발이 되거나 음전한 공기가 되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또한 수납장의 크기와 식탁의 형태에 따라 그릇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은 물레 앞에 앉아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나아가 사용자의 신체적 노동력을 덜기 위해 그러면서도 그릇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적정한 두께로 무게를 유지하는 것 또한 어지간한 성심이 아니면 해결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회에 나올 것들을 위해 버려진 것들은 얼마나 될까?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어 진 후 버려진 것, 굽정리를 한 후 건조과정에서 변심(?)하여 버려진 것, 유약을 바르고 가마내기를 한 후에 꼴과 빛깔이 맞지 않아 폐기된 것 등등 합하면 출품된 그릇들의 양을 몇 배는 될 것이라고 짐작된다. 利器, 말 그대로 세상을 인간을 이롭게 하는 그릇이다. 멋과 흥에 취해 손가는대로 만들어 작품이라고 내놓는 그릇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흙이, 유약이, 불이 등등의 이유로 독창적이며 유일무이하다는 주장을 폄하할 뜻은 더더욱 없다. 그릇을 사서 쓰는 사람들의 ‘쓰임새’를 고민하고 배려한 ‘마음쓰임새’를 많은 도예가들이 보배웠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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