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길 ‘꽃과 접시전´ 2002. 9. 30∼10. 6 광주현대갤러리
전통적인 도자작업과 새로운 회화적 표현의 가능성
글/박정기 조선대학교 교수, 미술평론가
‘꽃과 접시´를 주제로 한 김광길의 이번 전시에는 39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작품들은 모두 같은 크기로 된 커다란 둥근 접시의 안쪽 표면을 여러 가지 꽃의 형태로 장식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 대형 접시들은 모두가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벽에 걸려 있다. 그러나 이 접시들은 화사한 색채로 된 장식물로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는 효과를 갖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이 접시의 색채들은 전체적으로 단일하지 않고 다양하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암청색과 회청색, 아니면 붉은 빛이 감도는 갈색, 또는 엷거나 검은 녹색 등 대부분이 -마치 그것들이 우리 내면의 깊은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듯- 어둡고 유연한 정서를 환기하는 이차색, 삼차색들로 되어 있으며, 밝고 유쾌한 느낌을 주는 원색계통의 색은 찾아볼 수 없다.
접시의 안쪽 바탕면에 붙어있는 장미 꽃송이들과 화필로 그려져 있는 여러 가지 꽃무늬들에서도 우리는 역시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다. 그것들은 한결같이 매끈하게 다듬어지기 이전의 투박한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역시 바탕면과 비슷한 색들도 칠해져 있어 전체적으로 어둡고 투박하며 단조로운 바탕면에 그리 강하지 않은 액센트나 포인트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꽃 모티브 외에도 바탕면 전체를 마치 거친 땅의 모습처럼 우둘투둘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그것을 빗살 모양으로 세심하게 긁어내 우리가 옛 토기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무늬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또 직선이나 구불구불한 모양의 좁은 청색 띠의 문양을 첨가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크고 작은 사각형이나 삼각형의 면에 의해 바탕면을 분할하거나 장식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시도에 의해 이번에 전시된 대형 접시작품들은 모두가 한편으로 마치 오래된 옛 토착 도자기를 대하는 느낌을 주는가 하면, 또 어두운 색채의 현대 모노크롬 회화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한 이렇게 볼 때 이 작가는 이번 접시작품들을 통해, 우리 토착 도자기가 불러일으키는 어둡고 유현한 내면적 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여기에 현대회화의 수법을 도입함으로써 새롭게 우리의 토착 도자기의 회화적인 표현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김광길은 고려청자의 본향인 전남 강진 출생으로 일찍부터 우리 전통도자기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변용시키는 도예가의 꿈을 키워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개인전의 작품들은 우연한 또는 순간적인 착상을 계기로 해서 제작된 것들이 아니며 궁극적으로 자신이 일찍부터 설정한 도예가로서의 꿈을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이루어진 작업의 성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길을 계속 추구해나가는 한, 그는 자신의 꿈의 실현에 계속 다가가면서 독자적인 자기세계를 확립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