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필 도예전 2002. 9. 28∼10. 26 마가미술관
Winter Landscape 글/ 송기쁨 미술사가
이용필은 자신의 조형세계에서 끊임없이 자연의 이미지들을 탐색해 왔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정연한 생명의 질서에 순응하는 겸허함 또는 침묵과 고요함에 깃든 안식과 치유의 힘이 그러하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내적 치유의 관계는 우리가 항상 자연을 동경하고 갈망하게 하는 이유인지 모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슬립캐스팅으로 제작한 화병, 접시, 컵, 오브제(흰 돌) 등을 선보였다. 겨울을 테마로 한 최근의 작업들에서 그래왔듯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작품 하나하나가 가지는 개체의 의미보다는 이들을 배열시키고 집합시킴으로써 이루어내는 전체의 시각적 조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
산의 능선을 상기시키는 화병, 나무의 미세한 굴곡을 형상화한 화병, 모양새가 일정치 않은 돌의 윤곽선에서 형태를 취한 접시 등 그의 용기들은 모두 자연의 그것을 닮고 있어 어떤 의미에서 각각의 용기는 겨울풍경을 이루어내는 정물이 된다. 그러나 작가에게 있어 겨울은 가시적인 세계로 머물지는 않는다. 겨울은 모진 추위도 바람도 견디어내고 참아내는 인내의 시기이다. 자신의 유익과 편리에 의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해 내는 인간의 영악함과 달리 시련과 고난에도 묵묵히 침묵한다.
어떤 점에서 그는 겨울을 응시하면서 그 계절의 이면에서 인간의 그것과 대조되는 겸허와 초연함을 말하고자 함일지 모른다. 작가는 이번에 수많은 형태의 흰 돌(White stone)을 오브제로 제작해 설치했다. 겨울의 이미지를 조형화하면서 작가는 일체의 색감을 배제하고 모든 작업을 백색 모노크롬으로 표현해 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흰 돌은 성서에서 거룩함과 구별됨, 선택, 약속의 징표 등을 의미하는 상징물로서 설치되어 백색의 시각적 효과를 고조시킨다. 그런점에서 지금까지의 백색이 눈 덮인 겨울풍경이나 겨울의 고요하고 고결한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한 색채였다면 이번 전시의 백색은 흰돌의 의미와 더불어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등불 또는 우리의 양심을 가늠하는 잣대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지만 도자기는 유난히 오랜 기다림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유난히 비도 많고 지루했던 지난여름 작가는 많은 땀방울을 흘렸을 것이다. 이제 우리 앞에 겸허히 놓여있는 그의 작품들을 바라보며 이번 가을에는 누구의 소리도 아닌 우리자신의 소리에 귀기울여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