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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9월호 | 뉴스단신 ]

옹기로드①
  • 편집부
  • 등록 2018-02-10 03: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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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12호 박재환

 

 

 

“옹기가 정확히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몰라. 그저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그리고 나에게까지 구전된 전설을 통해 추측하기로는 옹기는 어머니들의 그럭(그릇)이라는겨. 옛날에 논에서 열심히 일하던 우리 여성들이 장마 때 물이 고여 폭 패인 논에서 뽀얀 흙이 있더랴. 손으로 만져보니 끈적끈적한게 밀가루 같더랴. 그놈을 떼어다가 손으로 조물조물 바가지 같은 걸 만들었지. 그 것을 소죽 쑤는 아궁이 안에 구워봤는데 그게 용이하게도 깨지지 않고 잘 나왔더랴. 그래서 조금더 구워서 맨들기 시작한겨. 그게 옹기의 첫 시작으로알고 있어.”

 

Q 옹기는 어떻게 만들어 지나요?
옹기는 흙으로 맨들어. 먼저 일 년 중 가장 추운 날 흙을 채취해야혀. 그래야 흙의 점력이 끈적끈적해서 좋아. 우리 옹기점甕器店, 옹기를 만드는 곳 남쪽으로는 점력이 좋은 점토가, 북쪽으로는 불심이 좋은 메진흙이 매장돼 있어. 이 두 흙을 잘 섞어야 가마에서 금이 안가는 겨.우리집 옹기가 좋은 이유는 옹기 맨드는 여(여기) 흙이 좋아서 그려.옹기 제작할 때 쓰는 흙들은 모래가 섞인 사질점토가 있고 고운 흙으로만 형성된 토양점토가 있어. 여 묻힌 흙은 다 토양점토라서 한참을 걸러도 좁쌀만 한 모래가 한 톨도 안 나와. 그리고 옹기를 제작할 때는 먼저 흙가래를 만드는 겨. 이걸 질가래, 떡가래라고도 부르지. 또 흙을 메주정도 크기로 띠어다가 방망이로 둥그렇게 두드려맨들어. 그게 옹기의 바닥이 될 부분이여. 이제 그 위에 손으로 떡가래를 비벼 붙여. 웬만큼 쌓았으면 물레를 돌려가며 한 쪽 손엔 도개, 다른 손엔 타래를 들고 두드리며 형태를 만들어 가는겨. 옹기는가마에서 한 번밖에 안 굽기 때문에 일주일 쯤 건조되면 유약을 발라. 이 유약도 흙으로 만드는디 우리 땅에 표토表土 속에는 부엽토腐葉土라고 해서 썩을 부腐, 잎 엽葉자를 쓰는 흙이 있어. 이건 수천 년 동안 낙엽 썩은 것들이 풍화된거여. 이 부엽토하고 초목을 불에 땐 재하고 반반 섞어서 물에 풀어. 그런 다음 고운 채로 걸러내면 흙탕물이 돼. 이게 옹기 유약이여. 인제(이제) 1250도 고온에서 유약이 용해돼서 맨질맨질 해지는겨.

+ 옹기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지금은 플라스틱이니 스뎅이니 하는 것들이 흔해졌지만 옛날 조선시대 말엽만 해도 놋그럭(놋그릇)은 부잣집이나 썼거든. 서민들은 세숫대야부터 술독, 술병. 심지어 요강도 옹기를 썼어. 그런데 옹기요강은 사흘을 안 씻어도 지린내가 안 나지만 놋요강은 하루만 안 닦아도 거기서 냄새가 진동했어. 왜냐면 소변 속에 있는 염분이 놋쇠랑만나면 산화작용을 해서 붉게 녹슬고 냄새가 나지만 옹기는 염분을그대로 품어. 그래서 염분이 40도인 간장을 수십 년 담아놔도 변질되지 않고 항아리 자체도 썩거나 상하지 않지.비슷한 예가 또 있어.이스라엘 쿰란지방1)에는 메마른 사막에 아무도 올라가본 적이 없는절벽들이 있댜(대). 어느 날 지나가던 두 명의 목동이 절벽에 있는 동굴에 자갈을 던지다가 딸그락 하는 소리가 난겨. 그 소문을 듣고 미국 하버드대학의 교수가 탐사를 해보니 굴 안에 10세대 이상 살 수있는 공간이 있고 뚜껑이 있는 큰 독 몇 개가 있었던겨. 그 독안에곰팽이 쓸지도 않고 좀 먹지도 않은 이천년 전에 제작된 성서필사본원본이 들어있었던겨. 그 교수가 말하길 항아리가 숨을 쉬기 때문에잘 보존돼 있었던 거랴. 그 독들이 딱 이거(옹기)랑 똑같이 맨들어져놨어.

+ 옹기가 숨을 쉰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동안 말로만 전해졌던 옹기의 통기성通氣性은 2009년에 진행된 실험2)에 의해 과학적으로 밝혀졌죠.
김치, 간장, 고추장, 된장… 우리 발효문화가 어떻게 발전혔겄어. 옹기와 함께 발전한거여. 예전사람들은 옹기가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소금으로 확인했었어. 숨을 쉬는 옹기는 장을 담가보면 며칠 뒤에소금쩍이 밖으로 스며나왔지. 육안으로도 보여. 나는 그걸 기름을사다가 실험해봤었어. 기름은 물보다 입자가 작아서 가끔씩 시중에는 물은 안 새도 기름을 부었을 때 새는 독들이 있었지. 그래서 기름10통을 사다가 우리 집에서 맨든 크고 작은 항아리에 다 부어봤는데하나도 안 샜지.3)

 

Q 충청도 봉산리옹기점은 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곳은 천주교신도들의 애환이 담긴 곳이여. 이백년 전 이곳 옹기점에 도공이 대략 100세대쯤 됐어. 한 집에 둘, 셋씩 옹기장이가 있다고 해도 300명 정도가 입주해 살았었지. 전국에서도 알아줄만한 대형옹기점이었어. 그 중 70%가 천주교신자였지. 그런데 그들의 집안역사를 보면 대게 양반들이었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서 옹기점으로 숨어 들어왔지. 왜냐하면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상놈이라고 여기는 8대 직업이 있는디 그중 1호가 흙백정이었던겨. 흙백정이 1호, 칼백정이 2호, 광대가 3호, 무당이 4호… 이게 다 쌍사람직업이었어. 천주교를 받아들인 양반들이 재산 다 몰수당하고 옹기점에 와서 쌍사람들하고 같이 생활하니께 포졸들이 옹기점은 수색을 안했어. 산신령, 북두칠성님, 천황님밖에 모르는 상놈들은 당연히천주교를 모를거라고 단정 지었기 때문이야. 우리 7대조 할아버지도벼슬 박탈당하고 옹기를 몇 개 사서 지게에다 지고 여기저기 팔러다니시면서 6대조 할아버지를 옹기장이로 키우셨어. 그때부터 나까지가 6대, 내 아들들은 7대 옹기장이가 됐지.

+ 전통의 방법을 고수하는 이곳도 현대화의 물결을 피할 순 없을 것 같은데요.
기여(맞아). 일단 손으로 만드는 도공이 없어. 예전에는 수없이 많은도공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국에 수작업하는 도공이 50명이 안 돼.그마저도 나이가 얼추 80줄에 든 사람들이여. 부족한 일손으로는주문받은 수량을 맞추지 못혀. 그래서 우리도 대량생산 쪽으로 연구를 하고 있어. 그 대안이 석고틀 제작이여. 이것도 기술이 있어야혀.석고틀에 흙을 붙일 때 압력을 어느 정도 줘야 수작업의 타래질 한것과 같이 야무지게 되는지 등 그런 기술을 전수자들에게 알려주고있지. 대신 장작불로 번조할 때 나는 연기가 환경문제에 큰 걸림돌이되지 않는다면 장작가마만큼은 고수할 생각이여.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9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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