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작가는 장사를 업으로 삼아 바쁘셨던 부모님 대신 조부모님의 손에서 자랐다. 그 덕에밤하늘 보기를 좋아하는 소년, 서울에 사시는 외삼촌이 내려오실 때 사다주던 레고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블록 하나하나를 조립하던 손은 시간이 지나 흙 조각 하나하나를 잇는 손으로 자랐다. 좋아하던 밤하늘을 표현하고자 한 흙 조각 군집에는 종종 작가의 어린 시절을 나타내는 작은 집이 놓였다.
빛을 담은 그릇
우창민 작가는 흙 조각을 이어 전체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개인전 때 선보인 작업들은 ‘감정’을 소재로 다루었다. 흙 조각 하나하나를 잇는 동안 자신이 정한 어떤 한 감정을 유지하며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환희’라는 감정을 정했다면 흙을 붙이는 과정에는 환희를 느꼈던 순간들 혹은 환희를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색감을 상상했다. 그렇게 완성된 띠와 같은형태는 그에게 ‘환희’가 됐다. 그런데 최근 아트스페이스 너트에서열린 그의 두 번째 개인전 <빛을 담다>2015.4.21~4.27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흙 조각 군집을 선보였다. 갤러리를 가득 채운 그의 도자기 조명은 화이트큐브 내에 존재함으로써 ‘오브제’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불규칙한 흙 조각의 패턴을 수용한 빛은 갤러리의 벽에 투영됐고 그 모습은 밤하늘의 별, 혹은 우주의 성운과 같았다.
“빛에 대한 관심은 예전부터였어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2010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3년 동안 군대에 다녀왔어요. 그기간에는 흙을 만질 수 없어서 틈틈이 페인팅 작업을 했습니다. 저녁에는 그림을 그리고 낮에는 창가에 캔버스를 걸어 말려 놓곤 했죠. 그런데 어느 날 창문가에 걸어둔 캔버스에 햇빛이 스며들어 내는 빛을 보았어요. 물감이 중첩된 두께와 공간만큼 오묘한 빛깔이연출됐어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작가는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재료인 흙으로, 자신의 성격과 잘 맞는 흙을 잇는 기법으로 그 모습을 표현한다. 물감 한 터치와 터치사이에 스며든 빛은 흙 한 조각, 조각 사이의 공간에서 재현된다. 이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마치 명상처럼 아무런 생각과 계획 없이 스스로를 누르는 것이다. 제작할 때의 감정과 우연, 작가의 손길로 빛이 거쳐 갈 비정형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높이 80센티가 넘는 커다란 원기둥이나 뭉툭한 사각기둥의 모형일 때도 있고 얇은 원기둥으로 시작해 풍선처럼 커지기도 한다. 그렇게 제작된 비정형의 도자기를 작가는 ‘빛을 담는 그릇’이라 부른다. 컵이나 소반, 화기의 형태에따라 물의 모양이 결정되는 것처럼 빛의 형태도 자신이 만든 ‘그릇’의 형태에 따라 정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빛을 담는 그릇은 모든 부분에 작가의 손길이 닿는다. 순수한 오브제가 아닌 용도가 있는 제품을 만들 때 많은 작가들은 주문제작을 하거나 일정 부분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우창민은 조명 밑판으로 사용될 나무, 내부의 LED와 전기배선, 사용자의 터치를 인식하는 센서까지 모든 부분을 직접 제작한다. 흙 조각을 이어붙인 조명의 갓을 성형하고 1220℃~1250℃ 사이의 불로단벌 소성한 후에는 그의 공예가적 성향이 드러난다. 소성된 조명갓에 어울리는 나무 밑판, LED와 전기 플러그를 잇는 배선, 기하학적인 조명 갓에 고루 빛이 퍼지기 위해서 필요한 내부 호스 등 모든것은 우창민의 작업실에서 제작되고 조립된다. 나무나 전기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작업시간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효율적이지 않은가 물었더니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잖아요.저는 개인적으로 작품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제 손길이 가야한다고생각해요. 왜냐하면 나무 하나를 자르는 데도 제 감정이 담기기 때문이에요. 스케치를 하고 시작하더라도 직소기를 들었을 때 제 마음이 달리 동할 때도 있더라고요. 그 감정까지 분들이 잘라줄 수는 없잖아요. 결국 작업 과정, 과정마다 제가 담기게 되더라고요.”라고 대답한다. 빛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동안 그는 도예가도 됐다가 전기공으로 변했다가 또 목수로 변하기도 한다.
사이의 위치
지난겨울 한 페어에서 우창민의 조명을 처음 보았다. 페어에서는 조형성과 기능성을 갖춘 사물이었지만 개인전에서 좌대위에 놓인 그의 조명은 (라이팅아트에 가까운) 오브제였다. 모호한 조명만큼 작가는 자신의 역할을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는다. 요새 신진작가들은 필드에 나올 때,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계획하고 정리해서 나오곤 한다(명확하게 정리된 계획은 필드에서 작가의 빠른 적응을 돕기 때문이다). 반면 우창민은 빛이 좋아 조명을 만들기 시작했고 작업하며프로세스들을 보완하고 완성시켜 나가는 케이스다.
“스스로를 도자디자이너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디자이너는 엔지니어적인 부분, 대중성, 상품성 등 모든 부분을 포괄적으로 인지해야하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작업이 좋아서 만드는 것보다더 다양한 방면을 고려해야 하죠. 작가보다 디자이너가 훌륭하다는것이 아니라 고려하는 부분이 다른 거예요. 저는 스스로를 도예가나디자이너로 구별하고 싶지 않아요. 도예를 전공하며 형성된 예술적인 감성과 조명 작업을 하면서 추가되고 수정된 프로세스가 어우러져 궁극적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는 지난 일 년간 개인전을 위해 쉼 없이 작업했다. 그 사이에 두 번의 디자인 페어에 참가하며 조명을 대중에게 선보였고 두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을 얻었다. 여러 사람들의 관심과 손길을 받고 돌아온 무유로 단벌 소성된 조명들은 손때가 탔다. 더불어 내구성에 대한 질문들도 여럿 받았다. 자유로운 형태를 위해서는 무유소성은 피할 수 없기에 카페인트, 바니쉬 등 마무리 가공 작업을 추가했다. 하지만 ‘과정’과 ‘직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에게 내구성에 대한 문제는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었다. “기능성을 가진 상품을 추구하지만 ‘작품성’은 그대로 가져가고 싶어요. 사실 내구성이라는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어요. 불투명 아크릴로 제작하면 더 단단하고 비슷한느낌을 낼 수 있죠. 하지만 흙을 잇는 그 ‘과정’이 제겐 가장 중요한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 과정을 침해할 수는 없더라고요. 그리고 여려 보이는 분위기가 더욱 조심스레 다뤄줘야겠다는 느낌을주기에 이 미감을 더욱 살릴 예정입니다.”
스탠드조명보다 구매자 입장에서 구입하기 부담 없고 작업과정을 훼손하지 않으며 내구성을 보완한 액자형 조명라인을 제작해 최근 개인전에서 선보였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5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