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은 내적 정신세계를 가시적인 외적 형태로 표출시키는 인간의 욕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삼라만상은 물론 인류 역사의 산물인 문화의 잠재된 의식과 무의식적 요소들이 가시적으로 표출된 삶의 흔적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은 창조적인 예술작품을 그들만의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된 내면세계로부터 결과로 표출되는 원형을 찾고자 고민한다. 이와 같이 내적심상이 외적으로 표출되는 예술가의 행위의 결과물에 대하여 단순히 의식적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이는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에 얻어진 각고의 결과이자 갈등과 희망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도예가 정담순선생의 예술의식에 대한 고민은 그의 삶의 철학 속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2005년 <정담순 도자전> ‘나의 뜻으로’라는 글을 보면 “살아 있다는 건 좋은 것 같다. 왜냐하면 기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괴롭기도 하기에 나는 삶이 좋은가보다. 어느 곳에 내가 있든 내 존재의 가치는 생의 깊이와 관련이 있고 이것을 나의 속으로부터의 나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라는 진솔한 내적 심상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선생의 고민은 이보다 훨씬 전인 1973년 <제1회 도예전>에서부터 잘 나타나고 있다. 전통백자나 청자를 모방한 것이 아닌 작가 자신의 내적 심상이 표출된 조형에 대한 고민은 자연미를 강조한 투박하고 순수한 미를 강조한 작품들이 전통과 창조의 사이에 끼여 있는 현대의 생활이념까지 반영시켜야 한다는 미의식으로 투영되고 있다.
선생의 독백 같은 이러한 미의식은 예술로서의 현대공예 특히 도자공예의 시대적 발전에 대응하여 현대도예의 발전이 참다운 길을 걷고 있는지, 또한 예술가적 의식과 무의식은 참다운 빛으로표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한현대조형의 예술적 관점에서 도자공예의 미적 창작에 대한 진실과 허실의 표현이 원점에서 방황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고민은이미 1995년 도예전 <나의 표현의 세계>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현대사회의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변화에 대한 도자공예 변화의방향에 대한 궁금증은 물론 그것이 긍정적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도예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담순선생은전통과 현대도예에 대한 답습으로부터 벗어나 흙이라는매체로 몸소 의문을 풀어보고자 전통의 기능적 표현미의 중요성이 아닌 매체가 갖는 순수한 물성에 의한 조형미의 표현에 매진하였다. 초기 전통의 완벽한 재현에 목적을 두었지만, 선생은 분명 한국현대도예의 태동에 크게 기여한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전통의 재현과 계승이 화두였던 근대를 지나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한국의 현대도예는 많은 유·무명의 도예가들에 의해 흙의 본질과 재료 자체의 심미적 요소를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다양한 조형미의 표출이 시도되었다. 근대에서 현대로 전환하는 이러한 과정에서 정담순선생의 위치는 중요하다. 전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나흙의 본성과 인간 내면의 무의식적인 감성을 결합한 작업은 일종의 도전으로써 이는 전통으로부터의 답습을 과감히 벗어난 현대도예로의 이행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수 있다. 현대도예의 시발점은 그렇게 작가의 미적 감수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예술형태 요소에 일치하는 불변요소는 작가의 의식, 무의식적인 감수성으로부터 표출되기 때문이다.
정담순선생은 그의 작가노트에서 “덩어리에서 작은 행복을 향한 모든 것은 내가 얻기에 최선을 다하고 그 그림자가 나의 뜻을 받아 줄 때 나는 어쩌면 나의 진리를 터득하고 만드는 것에 모든 힘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라고말한다. 이것은 그의 표현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 개의 허와 실, 즉 의식과 무의식 이 두 개의 공존의 미가 현대공예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그 스스로 끊임없이제기하고 있는 의문일지도 모르겠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5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