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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월호 | 해외 ]

영국 도자기 공장, 박물관 시리즈⑥
  • 편집부
  • 등록 2018-02-08 12: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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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열 크라운 더비Royal Crown Derby박물관 + 조지안 시대Georgian Period, 1714~1830 영국 다이닝 문화

01. 로열 크라운 더비 이마리 제품사진 _https://misachievement.files.wordpress.com/2011/08/royalcrown-derby-4-litherland.jpg

 

 

로열 크라운 더비는 첼시 공장에서 일하던 윌리엄 듀스버리William Duesbury가 설립한 공장으로 1770년 첼시 공장을 사들이고 첼시-더비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습니다.
로열 크라운 더비가 ‘크라운Crown’ 과 ‘로열Royal’이란 상호를 쓰며 백 스탬프backstamp, 도자기 바닥면에 사용되는 일종의 로고에 왕관 모양을 새기고 있는 것은 영국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영국은 왕실문화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에 왕실, 왕실기관 혹은 귀족 칭호를 받은 사람과 일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처음에 ‘더비 공장’이었던 이 브랜드는 1775년에킹 조지 3세가 백 스탬프에 특별히 왕관 모양을 사용할 수 있는 작위honour를 수여해 ‘크라운 더비 공장CrownDerby Factory’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 후 1890년 빅토리아 여왕에게 로열칭호를 받아서 지금의 ‘로열 크라운 더비The Royal Crown Derby Porcelain Company, Manufacturers of porcelain to Her Majesty’가 되었습니다.1) 유명한 디자인으로는 일본의 이마리Imari자기를 모방한 시리즈와 여러 동물모양으로 제작된 컬렉터블Collectable, 수집형 피겨린인 페이퍼웨이츠Paperweights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2014년에 로열 크라운 더비 박물관을 방문할 기회가 생겨서 더비 시내에 있는 공장과 박물관을 둘러보았습니다. 공장은 들어가 보지 못하고 박물관을 둘러보았는데 멋진 작품들을 혼자 보기 아까운 생각이 들 정도로 박물관 안에 관람객은 저 뿐이었습니다. 팩토리 숍을 지나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2012년부터 함께 협력관계를 맺어온 스틸라이트 인터내셔널Steelite International과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18세기부터 상류층의파인 다이닝에 많이 사용되었던 로열 크라운 더비와 컨템포러리 파인 호텔웨어Hotelware로 유명한 스틸라이트가 협력을 통해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고 하니 이 둘의 조화가 기대됩니다.
박물관을 들어서자마자 18세기의 화려한 테이블 세팅과 당시 다이닝룸에서의 복장을 보여주는 전시가 있었습니다. 더비 공장은 1774년에 런던 코벤트 가든에 쇼룸을 세운 이후 런던 사회에 이름을 알렸다고 하니, 이러한 다이닝 세트가 많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진 3과 같이 당시 원예 학술지나, 잡지 등에서 많이보이는 튤립 같은 꽃과 식물은 더비의 디저트용 식기에서도 많이 장식되었습니다. 18세기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새로운 문화에 대한 관심이 널리 퍼졌기 때문에, 신기한 꽃, 식물, 동물 등에 대한 관심과 흐름이 도자기에서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홈 파티, 응접 문화가 일상적인 영국에서 부유한 가정이나 귀족이 사람들을 집에 초대했을 때 도자기는 자신들의 부를 자연스럽게 과시하는 도구이기도 하였습니다.18세기 다이닝오찬, 정찬의 순서를 간단히 살펴보면 도자기가 사교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이닝에 초대되면 먼저 집주인은 초대한 부인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과 함께 들어갑니다. 손님들은 가로로 긴 테이블 사이에 앉고 초대자인 집주인 내외는 테이블의 양 머리 쪽에 앉습니다. 이는 초대한 사람이 손님을 잘 보기 위함입니다. 보통 식사는 코스 2개와 디저트 코스로 이루어지는데 5~25개 접시가 준비되면 손님들은 취향에 따라 2~3개 정도를 선택하여 식사합니다. 다이닝의 음식은 삶거나 구워진 고기, 스프, 생선, 파이, 채소, 과일 타르트, 젤리, 크림 등이 포함되고, 코스마다 식기와 숟가락, 포크, 나이프도 모두 바뀝니다. 다이닝의 절정인 디저트 코스는 아이스크림, 소벳, 젤리, 과일, 견과류 그리고 치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찬이 끝날 무렵에는 차와 커피, 술 등을 내놓습니다.2) 이렇게 다양한 음식과 여러 개의 코스들을 준비하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식기가 사용되었습니다.
오찬이나 만찬뿐만 아니라 아침식사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영국은 아침Breakfast, 점심Lunch, 지방에 따라 Dinner라고 부르기도 함, 저녁Dinner/Tea에 먹는 음식 종류와 스타
일이 각각 다른데, 1770년대에는 오늘날의 가든파티처럼 아침식사파티Breakfastparty가 유행하였습니다. 이 파티에서는 호스트가 손님들과 차가운 음식을 먹고 음악을 들으면서 오후까지 즐길 때도 있었습니다. 1828년 기록에 따르면,런던 하이게이트Highgate에 있던 홀리 롯지Holly Lodge에서 왕실가족인 더치스 오브세인트 알반스Duchess of St Albans가 주최한 ‘아침Breakfast’은 오후 3시에 시작되기도하였습니다.3) 그리고 이러한 아침 파티는 자정까지 지속될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녁 초대 또한 오후 3시부터 시작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화려한 다이닝 코스를 준비하고 음식을 담는 그릇도 그것에 맞게 화려한 자기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18세기 영국 상류층의 모습이었습니다.
영국인들은 만찬을 소중한 문화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라 로슈포콜La Rochefaucauld 기록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저녁식사가 보통 오후 3시에 시작되어 저녁 10시까지 지속된다. 영국 사람들은 절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서두르는 법이 없다.4)’라고 적혀있고, 또한 영국인들은 다이닝 룸을 ‘먹는 방EatingRoom’이라 칭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고급도자기는 만찬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실과 귀족들은 도자기 회사에 따로 디너용 식기와 디저트용 식기들을 주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대변해 주고 재력을 과시하는 도구로 로열 크라운 더비에서도도자기를 주문생산 하였습니다.

로열 크라운 더비는 18세기부터 지금까지 명실상부 왕실에서 사랑하는 도자기 브랜드의 하나로서, 자신들의 박물관에 왕실에서 의뢰받았던 다양한 작품들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주문받은 작품들도 일부 진열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킹조지 5세와 퀸 메리 여왕이 의뢰한 채스워스 하우스ChatsworthHouse, 더비셔(Derbyshire)에 있는 Duke and Duchess of Devonshire가 머무는 곳, Cavendish가족이 16대에 걸쳐서 살았다.가 그려진 채스워스 그릇 한 벌ChatsworthService, c. 1795-1800도 그중 하나입니다.
진열된 전시품 중에 흥미로운 것은 1770년대 프랑스 세브르에서 만들어진 디자인이 더비에서 사용된 예를 보여주고있던 것이었습니다. 18세기 초에 포셀린Porcelain을 발명한 프랑스와 독일과는 달리 영국은 18세기 중반에 가서야 자기생산에 돌입하는데 그전까지는 프랑스, 독일의 포셀린 형태나 패턴을 모방하기도 했습니다.(사진 11참고) 더욱이 17세기부터 조지안 시대1714-1830에 영국 상류층에서는 프랑스 남자요리사를 고용하여 집안의 요리사로 일하게 하는 것이 유행하였습니다.5) 당시 사회·문화상을 보았을 때도 영국 다이닝과 도자기에 프랑스 문화는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3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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