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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월호 | 뉴스단신 ]

떠나는 여자 김민지가 들려주는 길가온 여행기
  • 편집부
  • 등록 2018-02-05 00: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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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도편(2)

 

 

한국 최대의 비구니 강원이 있는 운문사
운문사로 가는 길에서도 감나무의 향연은 끝이 없었고 운문댐을 지나며 고향이 수몰된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샘 촬영과 약속들로 지쳤던지 졸음이 밀려와 꾸벅 졸다보니 운문사에 도착했다. 온통 감나무뿐이던 길이 운문사에 들어서자마자 아름다운 소나무들로 풍경이 바뀌고 그토록 아름답다는 낙엽 길은 때를 놓쳤지만, 산으로 둘러싼 너른 분지에 남향으로 자리한 절은 비구니스님 특유의 정갈하고 깔끔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운문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고찰로 삼국의 옛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고려시대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는 청도 전문 역사 해설가(?)의 설명이 이어졌다. 신라의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한 장소로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랜 수령을 자랑하는 처진 소나무가 있는데 매년 봄, 열두 말의 막걸리를 부어 기름진 양분을 공급하는 등 귀하게 모셔지는 소나무 설명도 이어진다.
“저도 양분이 필요하니 그 막걸리 좀 먹어 볼게요.”라고 답하자 “오늘 저녁에 그럼 동곡 막걸리 먹지 뭐.”라는 쿨내 나는 대답이 이어졌다. 만세루를 지나 펼쳐지는 경내의 모습은 잔잔한 평온함이 가득하고 절을 에워싼 산봉우리들 역시 절경이다. 특이하게 이곳은 대웅전이 두개인데 석가모니불을 모신 새 대웅보전과 함께 비로자나불을 모신 또 다른 대웅보전은 창살마다 다른 무늬가 화려하다. 보물835호로 지정된 옛 대웅보전 법당 안 천장을 올려다보면, 여느 사찰 법당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다. 반야용선에서 내려진 밧줄에 동자 하나가 줄을 꼭 잡고 악착같이 매달려 있어서 악착동자란 이름이 붙었단다. 극락정토로 가는 반야용선에 타야만 하는 대중의 염원이,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자 하는 부처님의 자비심이 표현된 것이리라. 대웅전 경내까지 사진기를 들이밀지 못하는 새가슴인지라 눈으로만 구경하고 돌아왔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들린 공양간. 시골 시렁에 쌀 한 그릇, 물 한 그릇 담아 조왕신에게 예를 다한 것과 달리, 사찰이라서 그런지 탱화를 걸어놓았다. “사진만 찍지 말고 절한번 하고 가이소. 조왕님이 보시는데.” 하시는 처사님 말씀에 절도 한번 해본다. 금당을 지나오는데 스님의 예불 소리가 낭랑하고, 지장전에서 바라본 앞산에는 낮에도 그믐달이 솟아올랐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새벽 3~4시 예불하는 광경이 그렇게 아름답다 하신다.
안개 자욱한 까만 밤, 파르라니 깎은 민머리 빛나는 비구스님들이 줄지어 법당으로 가는 모습과 새벽 별, 달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이야기 해주시는데 나도 그 풍경을 꼭 한번 보고 싶어졌다. 사고의 소리와 어우러지는 비구니 스님의 낭랑한 독경으로 새벽 어스름을 가른다하시며 봄에 다시 내려올 것을 당부하셨다.

청도요
드디어 선생님의 작업장으로 향했다. 사위가 어둑시니 하지만 야트막한 둔덕 위에 자리한 ‘청도요’를 가늠하기에는 딱 좋은 시간. 500평 넓은 부지에 가마와 물레 작업장, 차를 마시며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는 전시장까지 갖춰져 있다.바쁘셔서 정리가 깔끔하지 못하다고 하셨지만, 가마 위에 올려진 다완을 보니 이연자 스승님께서 왜 선생님의 작업이 차인의 작업이라 칭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차도 직접 덖으시는데 요즘은 바쁘셔서 물 한잔만 올리고 가마에 불을 붙이기도 하신다고 겸연쩍어 하셨다. 그러나 요즘 보기 힘든 마음가짐의 표현이고, 그릇이 잘 구워지도록 빌기 위한 조촐한 제상이며, ‘차례茶禮’의 의미를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의미기에 각별했다. 전시장에 앉아 선생님은 숙차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맞춰 차를 내어 주시고 새로 한 작품들도 보여주셨다. 몇 년 전에 보았던 분장토에 붓질한 귀얄기법 항아리나 덤벙 다완 외에도 판형을 자연스레 내려쳐 얻어지는 변형된 형태의 작품들을 보았는데 요즘같이 지갑이 홀쭉한 때가 아니라면 가지고 오고 싶은 아이들이었다. 농사를 짓듯, 흙을 만져 그릇을 빚고 구워내는 선생님의 단순하고 우직한 에너지 덕분에 피로한 줄 모르고 폭넓은 주제의 대화가 오고갔다. 마지막으로 다완에 손수 갈아서 핸드 드립으로 내려주신 커피까지 맛보고 저녁을 먹기 위해 일어났다. 미나리에 싼 삼겹살의 유혹이 있었지만, 선생님이 안내해주신 돌고래 횟집에서 멸치회와 도다리에 쇠주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2차는 선생님의 지인이신 화가 선생님도 오셔서 치맥으로 대동단결. 2차 땅땅치킨 역시 후배분이 운영하셨는데 작고 작은 시골 동네의 일상 풍경이 참 정다웠다.

풍각장
아침부터 묘사제 준비로 바쁘신 선생님을 따라 풍각장 구경을 나섰다. 청도 역시 오일장이 동네마다 열리는데 토요일은 풍각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1년에 기제사만 열 번이 넘는다고 하시더니 제사 지낼 제수 음식을 사는데 프로의 향기가 난다. “묘제가 뭐예요?”라며 묻자, 시월보름이 되면 각 집안마다 제사가 있다 말씀해 주신다. 청도는 안동, 밀양처럼 집성촌의 형태로 유지하는 곳이 많다보니 마을마다 묘사를 모시고 있어서 시장에는 제수 음식 장만하러 오신 분들이 한 가득이다. 특징이 있다면 남자 분들이 압도적이고 손에는 작년도 제사에 쓰인 지출 내역이 적힌 종이가 들려 있는 것. 종손의 책임까지 다하시며 작업을 함께 하시느라 수고하신 선생님께 전통을 잇는 예인의 향기가 느껴졌다. 생활 속에서 함께하는 깊이 있는 전통과 가문의 자존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선생님의 작품 그 자체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시장의 풍경은 다소 쇠락해 보였고 젊은 사람들의 활력보다는 어르신들만이 지켜내는 느낌도 있었지만, 지역색이 잘 드러나는 곳이었다. 특히 돔배기(죽상어)를 사는 어물전이 제일 붐빈다. 조기가 귀해져 민어로 대신한다 하시는데 말린 홍합을 열합이라 부르는 것도 처음 알았다. 콩잎삭혀 놓은 것을 좀 사고 풍각장 제 1, 2의 맛집은 아직 문을 안 열어 새로 생긴 국밥집으로 도전을 감행했다. 소고기 국밥, 수구레 국밥, 선지탕 등이 주요 메뉴였는데 소의 내장과 혀까지 부속을 삶아 푸짐히 내어 놓고 들통 가득 육수가 끓고 있었다. 뜨끈한 국밥에 동곡 막걸리 한 잔으로 해장하고 나니 기차시간이 다가온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1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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