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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2월호 | 전시토픽 ]

Giorgio MORANDI
  • 편집부
  • 등록 2018-02-04 22: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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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르조 모란디 : 모란디와의 대화>
  • 2014.11.20~2015.02.25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Portrait) Giorgio Morandi, 1961 photo by Antonio Masotti, Bologna

 

이탈리아에서 온 남자
20세기 한국은(모든 나라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변혁의 시기를 겪었다. 그리고 같은 위도에 있는 서양의 한 나라, 이탈리아 역시 우리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수세기에 걸친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20세기, 이 격변의 시기에 주변 강대국들과 보폭을 맞추지 못했다는 점, 그로 인한 결과로서 2차 세계대전에서 각각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맡았다는 것. 이 시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작가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1890-1964의 국내 첫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다. 조르조 모란디를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는 이 전시는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되었다. 전후 한국미술계의 관심이 미국과 서유럽에 편중된 탓에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탈리아 작가 모란디는 베니스 비엔날레(1948)와 상파울로 비엔날레(1957)에서수상할 만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고, 사후에는 지속적으로 세계유수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에 위치한 모란디 미술관Museo Morandi의 소장품중 주로 작가의 전성기인 1940~60년대에 제작된 회화, 판화, 드로잉 40여점을 소개하는 <조르조 모란디> 섹션과 동시대를 살아간 한국의 작가와 모란디의 작품을 한 공간에 놓고 비교하고 감상할 수 있는 <모란디와의 대화>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일상의 변주
제 1섹션 <조르조 모란디>에서는 단순화된 형태와 모노톤의 세련된 색조가 담겨있는 작은 캔버스들이 짙은 회색의 벽 위에 걸려있다. 고요하고 적막한 한 작품, 한 작품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보면 어느새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모란디의 작업실에 있는자신을 발견하게 된다.(전시장에는 모란디의 작업실이 재현되어있다.) 이탈리아 블로냐의 폰다차Pontazza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모란디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세 명의 누이와 함께 살았고, 침실겸 작업실이었던 작은 방에서 작업하다 생을 마감했다. 20세기의 발전한 기술을 누리며 이국적인 곳을 여행하던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모란디는 자신의 고향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2차 세계대전 때 공습을 피하기 위해 떠났던 이탈리아의 그리차나Grizzana를 제외하고) “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는 그의 한마디로 평생을 은둔과 고립의 화가로 살아온 그의 삶과 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매일 매일의 햇살에서,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느 목이 긴 병에서, 산책길에 발견한 드넓은 황무지에서 그는 예술의 존재를 발견하고 홀로 지독하게 본질을 찾아 헤매었다. 현실을 떠나 어디론가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작가의 많은 실험과 끊임없는 사색과 예민한 직관의 총체는 매일의 일상을 변주한 정물, 조개껍질, 꽃, 풍경을 그린 작품들에 담겨있다.

 

정물과 풍경을 통한 추상으로의 여정
모란디는 ‘병甁의 화가’라고 불릴 정도로 병과 기器가 있는 정물화를 즐겨 그렸다. 라벨을 떼고 페인트를 칠해 본래의질감이 제거된 병들과 다양한 구도를 테스트한 흔적이 담긴 종이는 모란디의 ‘실험도구’들 쯤으로 묘사할 수 있겠다.이는 최적의 구도를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을 상징한다. 이토록 구도에 집착한 이유는 자신이 그리는 것이 페인트가칠해진 병이 아니라 그 표면에 닿는 ‘빛’이기 때문이었다. “가시적인 세계에서 내가 유일하게 흥미를 느끼는 것은 공간, 빛, 색, 형태다.”라고 말한 모란디는 젊은 시절 그에게 영감을 준 세잔처럼 정물화를 통해 가시적인 세계에 내재하는 무수한 이질성을 탐구하여 작품 속에 독특한 질서로 재구성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였다.
제 1섹션의 동선을 따라 작품을 관람하면 마지막에 말년의 모란디가 그린 풍경화들이 있다. 바닥에 놓인 캔버스들에 물감을 바르지 않고 춤추는 듯한 액션으로 튀겨내던 추상회화가 맹위를 떨쳤던 시절이 그의 말년, 20세기 중반이었다. 허나 모란디의 작품에는 여전히 작업실 안에서 관찰한 주변의 모습, 예술적 특이함이 아닌 평범함이 등장했다. 양식적 구분이 없는 그의 그림에는 구상과 추상이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추상을 따른 것이아니라 지각 가능한 것을 재현하는데 있어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것을 그리지 않았다. 오직 필요한 것들에 더 집중하기 위하여 단순하게 그린 소박한 풍경은 점차 한 폭의 추상화로 변해갔다. 이점이 모란디의 예술이 높이 평가받고,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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