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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월호 | 작가 리뷰 ]

Kwak Tae-Young 곽태영
  • 편집부
  • 등록 2018-02-04 2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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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위와 자연이 합작한 물질의 퇴적층

「COM.11-06. 도시의 흔적」
조합토, 금속산화물, 안료, 전사, 수금, 산화소성1250℃, 2011년 작

 

홍지수 미술학박사, 도예평론

 

곽태영은 오랫동안 온도와 소성방법에 따라 같은 유약이라도 매번 다른 효과를 내는 도자예술의 특성을 회화적 수법으로 운용해왔다. 그는 흙으로 만든 형태를 화면으로 삼아철, 코발트, 망간 등 자연 안료와 유약, 전사지 등을 자유자재로 운용하여 매우 추상적이고 물질적인 화면을 구성한다. 그의 화면은 흙, 물, 불이 만나 만든 역사와 시간이 한데 뒤엉키고 축적된 총체적 이미지다.

작업의 형태는 주로 도판陶板 또는 함이나 항아리 등 기器의 형태가 주를 이룬다. 작업의 근간인 도판은 저부조低浮彫이자 오브제objet로서 자연의 물질들이 다채로운 색채와 질감으로 발화發化하는 장이다. 물질은 평면 위에서 수평으로 흐르며 생생한 자취를 남기고 저희들끼리 뒤엉키며 색과 질감으로 표출한다. 물질은 녹고 굳으며 새로운 영토를 만들고 우리는 새로운 영토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질료로서 존재하는 자연을 목도한다. 반면 기器 오브제의 화면은 도판과 달리 수평과 수직이 동시에 공존한다. 수직의 면에 시유된 유약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수직으로 흐른다. 평면과는 다른 생생한 자취가기의 수직면에 남겨진다. 또한 공간에 놓인 기器에는 다양한 변수들-면의 위치와 각도, 공간, 시간, 빛, 그림자 나아가 관람자의 시각 위치와 운동방향 등-이 작동한다. 공간 속 기는 변수들의 간섭 때문에 끊임없이 유동하고 변화한다. 그래서 기는 불에 의해 고착화된 물질들의 독특한 색채와 텍스처가 구현된 평면의 스펙트럼을 시공간 속으로 확장하려는 작가의 도자예술에 대한 본질과 새로운 창작에 대한 실험이 끊임없이 반문되고 타진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작가에게 기器는 항상 숙명처럼 전통과 기器를 근간으로 하는 도예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환기하는 대상이자 다짐이다.곽태영의 작업은 젖은 흙을 밀대로 밀고 잘라 화면을 마련하는 일로 시작된다. 흙은 가소성이 좋은 탓에 어떠한 가공이나 처리도 다 받아주는 포용력이 넘치는 재료다. 작가는 젖은 흙의 표면에 다양한 모양판과 도구, 손을 이용하여 기복의 변화가 있는 화면을 만든다. 날카로운 도구로 틈을 만들거나 상처를 내기도, 흙 조각을 덧붙이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몸과 도구들을 총 동원해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새로운 흙의 피부들을 만들어낸다. 흙을 자르고 덧붙이고 도구를 겹쳐 찍고 다시 뭉개는 작가의 반복적 행위 속에서 흙은 자신의 몸에 가해진 수많은 사건들을 몸 안 깊숙이 차곡차곡 밀어넣는다. 그리고 철저히 기억한다.
불은 인간의 행위로 다져진 흙의 기억을 고착화시킨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불이 흙에 대해 행하는 일은 녹이고 태우고 생성하는 일이다. 화생토火生土야말로 흙이 따라야 하는 자연의 순리다. 불을 만난 흙 역시 순리에 따라 제 몸을 최대한 웅크려 마치 금속처럼 단단하게 변화한다土生金. 흙은 급기야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거나, 태워져 소멸되기도, 급기야 녹아내려 태초의 실체와는 전혀 다른 무엇이 되기도 한다. 흙은 불 속에서 단단한 질료와 유동하는 액체 사이를 오간다. 용해와 응고를 수없이 거듭한 흙의 표면은 빛이 발하기도 빛을 잃기도 한다. 도예가는 이러한 흙과 불의 조화에 기대어 색과 질감, 광택과 무광택, 부피와 이미지를 도출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속에 지속적 으로 상기했던 이미지에 다가간다. 그러나 도예가의 의지는 미리 시뮬레이션한 시편試片을 근거삼아 이미지를 구상하고 자신이 계획한 바대로 시유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데까지 만이다. 도자의 색은 회화의 색과 달리 비즉각적이다. 도자의 색色은 불의 에너지와 열을 통해서만 비로소 실체를 드러낸다. 그러나 흙과 불의 결합은 종종 인위로 도출할 수 없는 다채로운 색과 질감을 만들어낸다. 소성의 결과가 항상 도예가에게 최선의 결과물을 내어주는 것은 아니며 그 결과를 명료하게 예상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도예가는 설레임과 기대, 희망을 가지고 자신이 흙의 피부에 남긴 물리적 자국들과 흙과 불이 만들어낼 화학적 변화의 조우를 예상하며 유약을 바르고, 닦아내고, 긁는 일련의 과정들을 즐겁게 수행할 수 있다. 곽태영은 이 과정을 수정하고 되풀이하면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진화하는 화면을 만든다. 이것이 바로 그가 오로지 흙, 안료, 유약, 작가의 몸으로 이룬 인위와 자연이 함께 만들어낸 이미지, 도화陶畵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1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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