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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월호 | 전시리뷰 ]

신동원
  • 편집부
  • 등록 2018-02-04 21:53:13
  • 수정 2018-02-04 21: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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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풀이 말했다
  • 11.19~12.16 갤러리sp

「여름...들풀」 28x48x36cm, 2014

 

신동원 작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형의 그릇을 입체가 아닌 평면으로 만들어 설치하는 작품을 해왔다. 주인공인 음식이 아니라, 그 배경이 되어주는 도자기의 담박한 존재를 통해 도자기와 어우러지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들이었다. 작가의 오랜바람처럼 도자기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그간의 작업이었다.그런데, 2013년 겨울, 10여년을 변주하던 그녀의 작품에 아주 큰 변화가 생겼다. 일단 작품의 기형이 그릇을 넘어섰다. 흙으로 만드는 도자기의 개념적인 형상을 평면화된 형태로 보여주었던 이전의 작품과 달리, 이제 흙이 한 채의 집을 짓는다. 먹을거리가 담기는 것이 그릇이라면, 집은 사람이 담기는 그릇이다. 삼각 지붕을 얹고 있던, 깍둑깍둑 머리를 자른 아파트건, 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휴식을 주는 곳으로 존재한다. 도자기를 통해 사람을 이야기하더니, 아예 그 도자기와 사람이 모두 함께 사는 공간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집 또한 흙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흙위에 서 있는 집에서 흙에 뿌리내린 들풀들과 함께 흙으로 만든 도자기에 담긴 음식을먹고 사람은 살아간다.
흙으로 만들어 불에 구워낸 집은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모양새를 닮았다. 우리는 집에서 홀로든 여럿이든 개인적인 역사를 만들어간다. 그 역사는 모두에게 공유되거나 누구에게나 유의미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제 나름 굉장히 치열한 내적 싸움의 결과다. 우리의 삶은 들끓는 도가니에서 녹아버리는 쇳덩어리이거나 체온의 300배를 넘나드는 온도의 가마 안에서 묵묵히 소성되는도자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상상조차 할수 없도록 차고 단단하게 굳어 있는집 모양의 도자기는, 그저 저 또한하나의 그릇이라 말한다. 뭔가를 담아내는 크기가, 또한 그것이 발 딛는터가 조금 달라졌을 뿐이라 덤덤히말한다. 그러니 이 기막힌 기형의 변화를 과연 굳이 ‘변화’라는 말로 단순화할 수 있을까.두 번째로 눈에 들어오는 변화는 그리기의 방식이다. 이전에는 각각의 도자기를 한 데 어우러지게 하여 하나의 도자기 그림을 완성했다. 하지만 이제 작가는 도자기에 직접 그림을 그린다. 언젠가 고백하였듯, 신동원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작가였다.도자기를 만들면서 그것으로 그림을그리려니, 도자기 그림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필을 들고 흙덩이 위에 과감히 그림을 그린다. 흙판 위에 종이를 얹어놓고 연필로 그림을 그리면, 흰 종이에는 연필로 된 그림이 남고, 흙 위에는 그대로 그 그림이 새겨진다. 얇게 새겨진 자리 위로 상감토를 넣고그림의 흔적을 다시 흙으로 메운다. 그림의기운에 따라 새겨진 자리 너머로 바람처럼안개처럼 흙이 넘나들기도 한다. 그 위로 유약이 얹어지고 불길을 넘나들면, 어느새 작가가 그린 그림은 도자기와 하나가 된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신동원 작가는 도자기위에 그림을 직접 그린다. 본래 신동원은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다. 그리고 싶은 열망이큰 작가였다. 도자기를 만나 그 열정이 흙을 만지는 일로 자연스레 옮겨갔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도자기들은 서로 얽혀 하나의 그림이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직접 흙 위에 그림을 그린다. 흙판에 새겨지는 그림은 한 번그리고 나면 지우고 수정할 수 없기에, 완성된 도자기에 남겨진 모든 그림은 한 붓에 그려진다. 무성히 번져가는 들풀의 생명처럼 단한 순간도 멈추거나 뒤로 물러설 수 없는 호흡이 이어진다. 묘사하는 것describing이 아니라 새기는 것inscribing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은 어떤 형상을 그대로 가벼이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눈여겨보지 않던 생명이 사람과 삶을 다투는 과정을 거치며 얼마나 강인하게 살아남는가를 그렸을 것이다. 무엇이든 살아 있는 것은 살아있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민들레, 토끼풀, 쑥부쟁이 같은 미약한존재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 아니라, 셋, 넷,다섯이 무더기무더기 피어오르면 풍경화도되고, 산수화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흙에 뿌리박은 풀들을 한 없이 부드럽게 흙에 새겨 그 무엇보다 강한 생명의 숭고함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스무 해를손끝에 유보해두었던 신동원의 그림은, 그렇게 그녀가 오랫동안 바랐던 별 것 아닌 것들도 숨을 쉰다는 말을 전하려 들풀처럼 꽃을피웠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1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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