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문함」 백자토, 13x8x10.5cm, 2014
현대사회 전반에서는 체계적으로 분류되고 정립된 영역간의 경계가 흐려진지 오래이다. 하지만 공예에서 만큼은 재료에 대한 깊은이해와 숙련에 따른 하나의 집중에서 발현되는 힘이 여전히 더 크게 여겨진다. 양식이나기법, 지역, 특성적인 부분보다는 재료에 따라 도자기, 목공, 섬유, 금속으로 나누어 세분화 시킨 것이 자연스럽게 현대공예에 스며있다. 짧고도 오랜 시간 익숙해진 공예의 세분화는 오늘에 이르러 또 다른 낯설고도 친숙한 양상을 낳는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표현요소 사이에서 재료의 한정을 벗어나 공예장식의 혼합과 절충으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고자 하는 행위가 현대공예 범주 안에서혼성이란 이름으로 발생하고 있다.
백토로 판 성형한 크고 작은 김은주의 백자함은 전체적으로 전통목가구와 금속장식품,도자공예가 지닌 장식요소들로 혼합되어 백자 안에 화려함을 담아낸다. 전체적인 중심을 잡고 있는 묵직한 사각형의 몸체는 위 뚜껑과 아래몸통의 다양한 비례의 변화로 형태를 변형하거나 쓰임을 고려하는데 밑바탕이 된다. 여기에 시원하게 뻗은 긴 굽이나 소반다리 형태의 굽은 전통목가구의 모습을 닮아 마치 우리 목가구의 미니어처이자 산뜻한백자함의 화려한 혼합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전통가구를 견고하게 만드는 금속제 장식인경첩과 단순화된 자물쇠모양은 백자함을 구성하는 양각기법의 장식기능과 동시에 작품의 앞뒤구분, 함이라는 기능의 역할을 가능케 한다. 사각형의 비례아래 한국 전통공예 대표적인 여러 장식요소로 전통금속제나 목가구의 화려함을 백자가 지닌 포용력의 자세로 융합한 작품에서 혼성의 미가 엿보인다.
백자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이어온 특징 중 하나는 도자공예의 투각기법이다. 다루기 쉽지 않은 백토 판 성형 위에 새긴 투각은 전체적인 사각형의 직선과 대조를 이루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특히, 한국 대표적인 당초문양이나 넝쿨식물, 모란꽃 문양등을 생략, 단순화시켜 조화를 이룬다. 세밀하고 완벽성을 기한 문양의 투각보다는 전체적인 전통목가구적인 형태의 묵직함처럼 투박한 칼날의 움직임과 둥근 선들로 포근함을안겨주고 있다. 최근 백자투각함 모양의 도판작업은 강렬한 색상의 프레임 안에 디자인을가미하여 평면와 입체의 경계 및 현대생활의인테리어로서 공간에서의 활용성을 확대해가고 있음을 각인시켜 준다.
모든 문양, 장식요소들은 사소하게 덧붙이거나 쓰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실용적, 조형적인 모든 면에서 작품 전체를 구성하는데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서로 이질적인 재료에 의해 분류된 공예를 작가는 재료가 아닌각 전통공예의 양식과 다양한 매력적 요소에서 끄집어낸 혼성의 시각으로 백자투각함을만들어가고 있다. 자신의 미감으로 완성도를높여가는 반복된 창작의 행위는 시대 감성과현대생활의 변화를 읽어내는 그 과정 자체로충분한 의미가 있다. 매 순간 빠르게 변해가는 우리 삶의 모습과 복잡한 감성들 속에 묵묵히 다양성을 하나로 묶어낸 작가의 시각은축적된 시간만큼 결과물로 보답함을 느끼게해준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1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