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2016.04월호 | 작가 리뷰 ]

중국 도예가 다이위샹戴雨享의예술세계를 엿보다
  • 편집부
  • 등록 2018-01-30 01:04:13
기사수정
  • - 중국미술학원 도예과 교수실에서

다이위샹의 부친 다이롱화戴荣华의 작품 「이백취주李白醉酒」 30×30×3cm,1992년

 

중국미술학원은 캠퍼스가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도예과는 시후西湖 옆 본원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도심에서 살짝 벗어난 곳으로, 산 능선과 주변 풍경이 마치 우리 경기도 어느 지역처럼 정겹다. 유리작업을 하는 1층을 거쳐 2층으로 올라가니 도예과 교수연구실과 실습실이 있다.
다이위샹戴雨享 교수의 연구실에는 작품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이 책꽂이에 가득 꽂혀 있다. 다이 교수는 항저우杭州의 대표적 산물인 룽징차龍井茶를 내주며 몇 차례 방한 경험이 있다는 말로 친밀감을 표시했다. 김해 ‘클레이아크’와 지난해에는 ‘아시아현대도예교류전’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다이 교수는 두툼한 도록을 펼쳐 자신의 글을 보여줬다. 제목이 ‘현대 학원도예에 대한 소견-중국 미술학원 도예계 연구생 교학 이념’이다.
다이위샹은 1965년 징더진景德鎭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50여 생을 도자기 예술 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유명 도예가 다이룽화戴荣华다. 부친의 작품세계는 고색, 분색장식 연구를 통해 고색을 전수받은 것으로 칭송된다. 그 외에도 인물·미인도·아동·화조·산수화 등 다방면에서 명성이 드높다.
최고의 실력자인 아버지가 아들인 다이 교수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고 한다. 하나는 전통을 바탕으로 과감히 전통을 개선하는 ‘창작정신’이었다. 둘째는 ‘도량’을 갖추라는 말이었다. 부친은 이 두 가지를 입버릇처럼 강조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예술에 대한 집념’을 잃지 말라고 했다. 다이 교수는 부친의 가르침을 자신의 작업세계를 구축하는 자양분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세계의 바탕은 아버지의 영향과 더불어 유년시절 접한 수많은 회화 서적이라고 한다. 서양화와 소묘, 석고, 인체와 풍경, 그리고 인물 등이 담긴 화첩을 펼쳐보는 것이 그 어떤 장난감보다 즐거운 놀이였다. 청소년 시절 읽은 『항주 서호 민간 이야기』라는 책은 회화와 예술을 동경하게 되는 시발점이었다. 나아가 항저우의 미술학원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85년 절강미술학원(현, 중국미술학원)에 입학한 다이 교수는 중국의 개방과 서양 예술사조의 유입 덕분에 각종 예술표현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서양 철학자인 니체·프로이트·헤겔 등과 예술가 로버트 라우젠버그·알베르트 자코메티·파블로 피카소 등의 이론서와 화집을 탐독했다. 당시 중국의 대학생들은 현대예술 사조에 몰입해 있었다. 다이 교수 역시 생소한 철학 어휘들을 음미하며 예술과 예술가의 삶에 대해 깊게 사고하였다. 다이 교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작가노트에 적은 글을 보여주었다.
“참신한 사유와 서양 예술의 창작관은 우리 청년 학생들의 시야를 넓혀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 마음에 새로운 걸 창작해야 한다는 의식과, 전통에 대한 반역과 혁신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와 달리 현대도예의 창작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이위샹의 연구실에는 그의 작품 하나가 원형의 평면으로 벽에 걸려 있었다. 불규칙적인 작은 구멍이 원형 안에 뚫려 있다. 대형 접시처럼 보이지만 기능이 배제된 작품이다. 흙의 결도 거칠고 구멍 또한 거칠게 뚫려 있다. 흑유 위에 흰색 분장을 스프레이로 뿌리고 시유했다. 그 위에 선과 원형의 붉은 추상 그림이 간결하고 힘 있게 그려져 있다. 마치 분화구에서 흘러넘치는 용암 같다. 거친 대지의 속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거대한 생명의 꿈틀거림이 그리 크지 않는 원형 작품에서 뿜어져 나온다.
또 다른 원형 작품은 매끄러운 백자 형상에 불교 수행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현자賢者, 좌선坐禪, 그리고 ‘향해香海’라는 글자가 적힌 도자기도 있다. 다이 교수가 그림과 서예에도 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도자기와 철·나무 등 여러 가지 재료를 결합한 작품도 꽤 많다. 텍스처는 한자와 이집트 문자, 중국화를 그린 그림의 실크스크린, 중국화의 양각 등 다채롭다. 아버지를 통해 전수받은 중국화와 예술정신, 대학시절 학습한 서양예술과 서양철학 등 개인의 경험이 예술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이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작품세계에 그대로 녹여내고 있다.
그를 인터뷰하며 특히 인상적인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모습이다. 중국미술학원 도예과 교수는 작가로서도 뛰어나지만 이론에도 해박해야 한다.
“우수한 도자기 예술 교육은 학생들에게 형성의 풍격을 제안하지 않는 것이고, 단계적으로 자신의 예술이 다름에 대한 것을 깨닫는 것, 각종 재료와 표현 기법을 통해 이를 나타내는 것, 자신의 예술의 이해와 사모하는 마음을 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준비된 작가로서의 모습이다. 그는 정성을 다해 인터뷰에 응했다. 귀국 후 필요한 자료를 요청을 했을 때도 메일을 통해 바로 체계적으로 정리된 그의 포트폴리오를 받아 볼 수 있었다.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세 번째는 골동품 수집가로서의 면모다. 그가 골동품 수집 전문가라는 사실은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알게 되었다. 식당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 정원이 제법 아름다운 곳이었다. 앤티크한 가구가 인상적이었다. 필자가 골동품에 흥미를 보이자 대화는 골동품 수집으로 이어졌고, 그는 식사 후 직접 자신의 컬렉션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그의 집에 도착해 그가 가장 먼저 꺼내 보여준 것은 한나라 때 기마병과 토우였다. 그밖에도 명·청시대의 다완, 일본의 은주전자 등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진기한 골동품이 연이어 나왔다. 덕분에 2시간 이상 골동품 감상 삼매경에 빠졌다. 그는 골동품 수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도자기는 지조와 정서를 갈고 닦을 수 있고, 심미적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방법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 생각과 마음을 수련할 수 있고 정신과 영혼이 승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안정적이고 조용한 상태로 소장품을 마주할 때면, 몇 십, 몇 백 년, 심지어 몇 천 년 전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책 안에서 보는 역사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고, 그것이 당신 눈앞에 있다면 당신은 그걸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 천지는 이와 같이 넓고, 아득히 먼 역사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그 속에서 사람은 큰 바다에 던져진 한 알의 좁쌀과 같다. 천수백년의 역사를 경험한 골동품 앞에 서 있노라면 사람은 매우 보잘것없이 느껴진다. ‘학문과 지식이 있는 눈은 골동품을 알아보고, 소장품은 자기 자신을 높여준다文眼识古董,收藏品自高’. 소장품, 골동품 그 자체는 바로 역사의 운반체이자 끝이 없는 경지를 간직했다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이위샹은 열린 마음을 가진 예술가다. 전통을 흡수하고 자기화해 동시대의 작업으로 융합하는 데 탁월하다. 도자기는 다른 모든 것을 결합할 수 있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아주 매력 있는 장르라고 스스로 강조한다. 그의 도자기 예찬에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중국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그의 적극적인 사고가 깃들여있다. 그의 골동품 수집은 책을 넘어 당대의 물건으로 체험하는 훌륭한 학습이다. 다이위샹의 힘은 골동품에서 비롯되고, 탄탄한 이론과 경험을 통해 더욱 발전한 신작을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

0
비담은 도재상_사이드배너
설봉초벌_사이드배너
산청도예초벌전시장_사이드배너
월간세라믹스
전시더보기
작가더보기
대호단양CC
대호알프스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