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육아로 잠시 손 놓았던 도예 작업들. 시간이 지나 주부로서의 역할을 조금은 벗어나 자아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L’Oiseau Bleu 플레이트」 5만원, 「조약돌접시」 5만원, 「L’Oiseau Bleu시리즈 합」 3만원
잃었던 흙작업의 감각을 찾아나선 주부도예가
도예가 박보영은 그릇을 빚는다. 수려한 색감과 정교한 그림, 화려한 테크닉을 뽐내는 전통자기와는 달리 그녀의 그릇은 ‘그릇’이라는 그 자체의 소박하고 따스한 미를 담고 있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L´Oiseau Bleu』를 아이에게 읽어주며 극의 의미를 되새긴 그녀는 그릇에 파랑새 한 마리를 다소곳이 앉혔다. 행복은 나의 주변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이면의 진실을 자신의 작업물인 그릇에 투영한 것이다.
박보영 작가는 어느 날 추억이 담긴 사진을 정리하다 상념에 젖었다. 먼 훗날의 행복만을 꿈꾸며 무심히 보냈던 현재 이 시간들이 행복이었고, 틸틸과 미틸이 찾아다닌 파랑새처럼 행복은 나의 집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한 일상이 훗날 다시 보면 가장 돌아가고픈 행복이 아닐까라는 의미였다. 평범하고도 특별한 날에 찾아오는 행복을 그녀는 자신의 그릇에 화두를 던진다. ‘우리에게 행복이란 어떤 의미인지’,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이냐고’.
박보영 작가는 결혼 10년차 베테랑 주부이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아직은 가족에 맞추어 일과가 짜여진다. 아침 8시50분까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아침식사 후 매일 해야 하는 간단한 집안일을 하며 11시부터 그녀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 작업을 하는 날에는 4시까지 아이를 마중하러 가고, 그 후부터는 오로지 엄마 역할에 충실한다. 아직은 아이가 엄마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해서 숙제를 봐주고, 준비물을 챙기고, 놀아주고, 씻기고 먹인다. 엄마라는 이름의 삶을 살고있다.
아이의 엄마, 나보다는 가족
임신 기간부터 만 3세까지는 아이에게 엄마가 중요한 시기였기에 엄마와 아내 역할에 모든 시간을 쏟아 부었다. 육아가 생활의 전부였다. 아이가 예쁘고 소중하면서도 항상 무엇인가 허전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 이름은 없었고 누구의 엄마가 이름이 되었다.
작업이 간절해졌다. “육아와 살림만 하며 지내다가 내 시간을 갖고 흙을 만지다 보니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즐거운 에너지가 생겨났어요. 자연히 야근하는 남편에게도 너그러워지고 사이도 더 좋아지고요.” 가장 좋은 반응을 보여줬던 건 예상외로 딸아이였다. “엄마가 없으면 잠도 못자고 베이비시터가 와도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던 아이라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저의 마음을 알았는지, 엄마도 하고 싶은 거 해야지라며 조그만 손으로 의자에 올라서서 몰래 설거지도 해놓고, 집에서 작업할 때 먹으면서 하라고 쟁반에 간식도 챙겨주고...유치원 다니는 꼬맹이답지 않게 마음을 쓰더라고요.” 주어진 환경에서 작은 걸음이나마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아이 역시 자신의 꿈을 찾는데 좋은 영향을 주었다.
“아마 다른 어머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선택의 순간에서는 자신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되잖아요. 그런 결정을 하지 않게 도와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가족과 주변의 도움이 없으면 주부로서 도예가로 활동하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든든한 가족이 버팀목으로 지지해 주고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작업에만 몰두하지 못하니 아이의 하교 시간 때문에 시간을 놓쳐 남은 작업을 나중에 다시 해야 했던 일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주부라는 직업 이외에 도예가로서 자아를 찾을 수 있게 이렇게라도 작업하는 게 얼마나 좋고 다행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많은 양을 만들고자 욕심을 내지 않고 작품 하나에 더 큰 정성을 담았다. 부족한 시간은 아이가 점차 커가면서 혼자 하는 부분이 늘어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라고 자신을 다독이기도 했다. 작업실의 동료도 모두 주부였기에 아이가 더 어릴 때는 작업실에 돗자리를 펴서 아이를 재우고,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작업하기도 했었다. 덕분에 여자들의 우정도 끈끈해졌다.
주부도예가의 그릇
학교 다닐 때는 조형작업을 했지만 주부가 되니 그릇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박보영 작가. 단순히 음식을 담는 도구로서의 그릇이 아닌 소중한 사람에 대한 마음을 담고 정성을 담아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그릇 작업에 임한다.
작가의 그릇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다. 백자 바탕에 청화꽃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는 접시와 밋밋한 흰색이 아닌 아이보리와 상아색의 은은한 빛깔을 사용하고, 부분적으로 유약처리를 하지 않아 흙 자체의 수수하고 따뜻한 느낌의 매력이 묻어나게 했다. 한편으로는 따뜻한 그릇의 색감과 대조적으로 그릇의 두께를 얇게 만들어 날렵함을 더하고, 그릇의 깊이와 크기를 달리해 동서양의 요리를 담을 수 있게 했다.
그녀의 그릇에는 감성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 찬찬히 뜯어볼수록 어딘가 따스하고, 정감이 느껴져 자꾸 만지고 싶고, 무언가 음식을 담아 먹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 그릇이다. 아마도 작가 자신이 이 그릇에 담길 요리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다양한 생활자기를 만드는 박보영 작가의 취미는 요리. 쓰임새뿐 아니라 담음새까지 고려해 그릇을 만드는데 직접 요리하면서 다양한 아이디어와 감각을 얻는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의 생일 상차림에서도 어김없이 테이블 세팅 실력을 발휘한다. 정성스런 음식이 담긴 그릇을 받고 내가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그릇이 되길 소망하는 그녀의 바램이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