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선 드물게 관악산으로부터 흐르는 상쾌한 공기를 맛볼 수 있는 서울대학교 미술관. 산 아래 한껏 세련된 외관이 그 자체로 신선하다. 그 곳에서 <뉴 올드: 전통과 새로움 사이의 디자인> 전시가 한창이다. 이번 전시는 독일국제교류처ifa와 큐레이터 폴커 알부스Volker Albus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2011년 5월 이스라엘 홀론디자인뮤지엄 전시를 시작으로 세계를 순회하며 열리는 전시는 각국의 작가들을 참여시켜 전통과 새로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한국작가 7명(혹은 팀)이 이번 전시에 참가했으며 순회전에 참여한 해외작가 45명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주민선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에서 기성작가들의 상업적으로 성공한 유명 작품들 보다 오히려 유머러스하고 각양각색의 해석이 담긴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지금 가장 트렌디하고 유명한 디자인보다 전시의 주제인 새로움New과 오래됨Old에 대한 담론을 깊이 있게 고민한 작품들을 꼽은 것이다.
김자형 「OldNew_ “New worth from No worth”」
전시는 새로움과 오래됨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해석을 전한다. 전시에서 올드Old에 대한 개념은 각양각색으로 읽힌다. 누군가에게는 바로크가 올드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것보다 더 이른 시기의 바우하우스가 올드이자, 디자이너로서 넘어야 할 벽이 된다. 가내수공업 생산방식이 올드가 될 수 있고, 이미 쓰고 버린 것이 올드가 되기도 한다. 작가들에게 전통은 새로움에 대한 모티프가 되고, 전통 소재가 올드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쓰임Using
작가 김자형은 현대 사회 속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기형적인 생산 구조 속에서 빠르게 버려지는 물건들은 작가에게 새로운 오브제가 된다. 1900년도 초에 사용되었던 오래된 장欌은 현재의 새로운 재료들을 만나 두 개의 장으로 새로 태어난다. 이로써 수납과 전시의 기능성은 두 배가 된다. 「OldNew_ “New worth from no worth”」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 새로운 시간의 층위로 얽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자투리 천을 꿰맨 조각보처럼 여며진 놋쇠 문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음’과 ‘소통’을 대변하기도 한다. 쓸모없이 버려진 것도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 내는 수공手工에 대한 작가의 예찬이다.
전통Traditional
소반은 그 단어만으로도 소박하고 아담하다. 전통적으로 좌식 온돌방 생활에 가장 알맞은 소반은 전 계층을 아울러 가장 빈번히 사용되던 전통가구다. 소반은 전통 한옥에서 공간적으로 부엌과 방이 멀고, 방으로 식사를 들여오는 식문화를 오롯이 담고 있기도 하다. 작가 양웅걸은 이 소반에 눈길을 준다. 「소반 시리즈」는 박소영 도예가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소반이다. 개다리소반, 원반, 다각반 등 다양한 형태의 소반 하부에 상판은 도자기로 만들어 도자기라는 또 다른 전통과 조우한다.
전통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가진 작가가 있다. 작가 주세균의 「Tracing Drwaing」 연작은 학습되는 전통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전통도자기의 사진을 보고 전통적인 기형의 도자기 위에 연필로 문양을 입혀나간다. 평면에서 시작된 전통에 대한 학습은 ‘그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3차원의 도자기 위에 펼쳐진다. 때문에 생기는 빈 여백은 작품을 미완성의 느낌이 들게 한다. 전통에 대한 교육은 늘 현재라는 배경에 부딪혀 왜곡된다. 작품의 빈 여백이 현재와 전통 사이에서 벌어지는 간극을 암시하는 듯하다.
소재Matter
작가 이보람은 한국 도예가로서 전통성을 대변하는 표현매체로 백자를 차용한다. 백자가 상징하는 조선의 시간은 과거로의 무한한 깊이를 느끼게 한다. 역설적으로 작가는 백자를 이용해 현대사회의 일률적인 생산체제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일상 소재품인 ‘병’은 쉬이 찾아볼 수도, 또 쉽게 버릴 수도 있는 물건이다. 공장에서 생산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병에 작가는 다양한 표정을 심어준다. 캐스팅기법으로 만들어진 똑같은 흙 병에 작가는 인위적인 힘을 가해 본연의 형태를 일그러뜨린다. 작가의 손이 닿는 과정에서 병은 각각 표정을 달리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반복생산품으로서 차갑고 획일적인 이미지를 벗어내고 각기 다른 개성으로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의 전환을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시대Age
르네상스, 로코코, 바로크. 한 시대를 정의하는 이름은 강력하다. 한 시대의 유행은 사조가 되고 결국은 하나의 유형, 거대한 상징이 된다. 성공적인 ‘양식idiom’은 후대에도 차용되고 모방되며 변주된다. 질비아 크뉘펠Silvia Knűppel은 바로크풍의 육중한 옷장을 불러왔다. 검고 큰 옷장에 어울리지 않는 「게으름뱅이_주거수칙 시리즈_옷장」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사실은 거대한 스펀지 블럭으로 만들어진 이 옷장은 틈새가 있어 여기저기 물건을 끼워 넣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게으름뱅이처럼 옷장 문을 열기조차 귀찮은 이들에게 딱 맞는 디자인이다. 이 유쾌한 작품은 오래된 바로크 양식의 옆구리를 찌른다. 오래된 기존의 양식을 재현하려 집착하는 태도에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조소를 날린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주거형태에 맞는 가구들에 대한 고민은 이렇듯 시대를 꼬집고 거추장스러운 허례허식을 벗어나 간단하고 실용적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