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의 학창시절 선후배 사이로 만나 일과 삶의 동반자 길을 걷고 있는 박병욱·양수열 부부 도예가. 그들은 경기도 여주에 자리를 잡고 제주도와 흙에 대한 열정과 감각으로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나무로 만든 찬장饌欌이란 제주도 방언인 ‘살래’. 이름처럼 부엌 선반에 담긴 소담한 그릇을 빚어내고 있는 그들과의 만남을 시작해본다.
세라믹 스튜디오 살래’의 벽면에 장식된 그릇장
제주에서의 삶을 여주로 옮겨오다
경기도 여주에 자리한 ‘살래’는 대학 동문 도예가인 박병욱·양수열 부부의 공동 작업실 겸 일터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한옥 안에는 부부의 작업 공간 및 건조실, 수비실, 작품을 촬영할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까지 작업실로서 알차고 야무진 멋을 뽐낸다. 선반과 그릇장에 진열된 작품에는 무유 시유의 투박하지만 정감어린 사발과 그릇들이 소담히 자신의 자태를 지키고 있다. ‘살래’를 오픈하기 전 부부의 본거지는 제주도.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자 제주도를 떠나 도자기의 중심지인 여주에 터를 잡았다.
“제주도는 도자기 시장이 작다는 판단이 들었고, 장작 가마를 떼다보니 나무 수급의 문제가 컸어요. 제주도에서는 나무가 많이 안 나올거라고 예상했거든요. 그래서 여주로 오게 됐죠.”
여주는 타지에서 온 도예가에게 접근성이 열린 고장이기도 했다. 도자기 조합에 가입할 수 있어서 활동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타지에서 온 이들 부부에게 동료 도예가의 도움은 큰 자산이 되기도 했다. “김종훈·문지영 작가가 여주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바로 옆집이 비었다는 정보를 전해 들었어요. 집도 알아봐 주고요. 문경에서 작업하는 김대웅 작가에게 무유 장작 가마 작업에 대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불의 미학, 무유번조 그릇들
아직도 부부의 그릇과 작품은 제주도의 흙으로 만들어진다. 박병욱 작가는 제주도 흙을 가지고 논문을 썼을 정도로 제주의 문화와 자연 환경에 매료됐다. 제주옹기를 습득하기 위해 옹기장이 밑에서 작업을 배우고, 일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제주도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그들은 제주도에서 쓰던 흙을 여주로까지 옮겨왔다. “제주도에 직접 가서 흙을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흙맥’이라는 게 있는데 점토층의 단면이 띠로 뭉쳐있는 흙을 찾아요. 그 흙의 지면을 보면 지역 옹기나 도자기의 발전사를 알 수 있죠. 관련 문헌을 가지고 흙을 보러 갔어요. 도자기 하는 사람들은 흙을 볼 줄 알잖아요. 점토질의 흙은 점성이 있기 때문에 뭉쳐있습니다. 나뭇가지, 돌맹이 등 불순물이 많지 않아 작업하기 좋은 흙이죠. 제주의 흙이 저희 작업이랑 잘 맞아요.”
양수열 작가는 제주도가 고향이고, 박병욱 작가는 제주도에서 대학을 나왔기에 제주만의 정취를 갖고 있다. 자연스럽게 작업에도 제주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긴다.
“제주도의 문화와 정취를 차용해 작업을 합니다. 남편은 제주 옹기 기법으로 도자기를 빚고 기물의 굽에 제주도의 오름을 표현해요. 굽의 표면을 쳐내어 제주도의 오름이나 파도를 연상하게 하는 작업을 하고, 저는 제주도 ‘오름’ 모양의 화병과 식기를 만들어요. 핀칭 작업을 통해 계절에 따라 변하는 오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표현해요.”
그들의 작품에는 손작업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질감과 텍스쳐가 담겨 있다. 부부는 서로 다른 도예 기법을 사용하지만, 제주라는 같은 감성이 그릇과 옹기, 화병이라는 작품 속에 어우러져 또 다른 색을 내면서 ‘살래’ 고유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살래’의 그릇은 때로는 잔잔하고, 때로는 투박하면서도 거친 흙의 질감을 고스란히 살려내 불과 조화를 이룬다. ‘살래’ 작품은 도자기의 전통과 현대, 그리고 부부 작가의 개성있는 감성과 감각을 품고 있다. 도예가로서 박병욱·양수열 부부의 앞으로 계획이 궁금했다.
“남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우리만의 그릇을 빚어내고 싶습니다. 아내와 제가 느꼈던 제주의 감성은 같지만 각자의 도자기 제작 방식은 달라요. 앞으로 제주도의 모티브인 조랑말, 오름을 이용한 조형작업도 하고 싶어요.”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5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