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산」
작가란 어찌 보면 세상에 자신을 반쯤은 벌거벗은 채 내어놓고 살아야 하는 운명일는지 모른다. 개인적인 경험은 작품에 맺혀 감상자에게 오롯이 드러난다. 그렇기에 개인전은 늘 시퍼런 긴장의 연속일 터. 하지만 흰 전시장 가득한 붉은 노을 빛 화폭이 언제 그리 겁을 먹었냐는 듯 따스한 온기를 발하고 있었다.
봄이 어디 지름길로 달아나기라도 한 듯 무더운 날씨가 연속되던 5월 언저리. 작가 김현정의 전시가 붉은 장미와 함께 찾아왔다. 넓은 전시장을 들어서면 주홍과 붉음 그 사이의 벌건 빛이 눈 안 가득히 들어온다. 작가 마음속 깊이 박혀있었던 하나의 풍경이 작품으로 스며 나온 것이다. 작가가 살고 있는 미국 미시시피 주를 구글링해보면 신기하게도 그녀의 유화 작품에서 보이는 색과 비슷한 미시시피 강의 붉은 노을 사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아마 그녀는 그 자연이 낳은 노을의 색을 기억에, 마음에 박았으리라. 굽이치듯 이어지는 검은 산맥이 노을을 배경으로 강한 콘트라스트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선명한 색감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도자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강한 빛을 발한다. 노을의 붉음을 입은 물고기들은 도자기 타일 위에 유유자적한다. 작가의 마음에서 빚어 나온 풍경은 골프장 연못에서도 커다란 물고기들이 헤엄치게 만든다.
작가 김현정이 표현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연에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우연과 확률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미는 아름다움, 즉 도자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넓은 도자 트레이를 들여다보면 깊은 심연으로 빠져든다. 마치 모네의 작품을 보는 듯 수면 위로 산란하는 빛은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으로 분리된다. 눈앞에 펼쳐지는 색의 황홀경은 도저히 도자가 낸 색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다. 얇은 판성형으로 온도와 습도에 유달리 예민했던 작업은 건조와 번조라는 변수를 거쳐 결국 하나의 완성품을 작가의 품에 안겼다. 다양한 색의 저화도 유약이 섞여 마치 인상주의 작품을 보는 듯 오묘한 빛을 내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사용하는 재료와 유약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은 이처럼 작가 고유의 독창성이 되어 감동을 안겨준다.
도판 위에 유약을 바를 때도 붓질하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바른다는 작가는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 유약을 바르고 번조과정을 여러 차례 시도한다. 자연의 색을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그녀의 집요한 작업정신은 유화에서도 나타난다. 역시 붓을 사용하지 않고 물감을 떠 캔버스에 올려놓고 직접 손으로 펴 발라야 ‘믿어진다’는 작가의 말에서 작품과 자신이 얼마나 동일시되었는지가 느껴진다. 결국 작가는 작품과 자신, 그리고 자연과 자신의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먼 타국, 외로이 흘러간 세월과 떠나간 존재들을 그리워하면서 작가는 그녀를 안아준 자연을, 그리고 하늘을 통해 위로와 따뜻한 기운을 건넸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6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