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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월호 | 뉴스단신 ]

도자기에서 울리는 신명 조종훈 국악인·신철순 도예가
  • 편집부
  • 등록 2018-01-10 16: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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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판에서 장구는 하늘을 울리는 벼락 소리 같기도, 미어지는 심장의 고동 같기도 하다. 한국인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무巫 의식은 글자 그대로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통일성을 이룬다는 뜻을 지닌다. 그리고 여기 천지인의 합위일체가 있다. ‘도자기 장고’는 땅으로부터 만들어져 사람의 손으로 울리는 하늘을 향한 소리다. 인력으로는 닿을 수 없는 신들의 세계를 향해 이렇게 소리로나마 손끝을 뻗어본다.

 

 

고려시대 도자기 장고의 원류를 찾고 복원을 위해 노력하는 조종훈 국악인은 동해안별신굿의 마지막 세습무인 김정희의 뒤를 잇는 중요무형문화재 동해안별신굿 82-1호 이수자다. 젊은 국악인으로서 국악의 활성화와 현대화를 고민하는 그는 ‘도자기 장고’에 매료됐다. 타악을 전공하는 그가 여러 종류의 장고에 호기심을 가지는 일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을 터. 일반 장고보다 크기가 작은 동해안 별신굿 무구 덕분인지 그는 삼국시대부터 사용했다 전해지는 세요고와 고려시대 청자로 만들어진 도자기 장고에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대학원 시절 마주한 도자기 장고에 대한 출토 자료와 연구 자료들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소리’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도자기 장고 재현을 시도한 것이 그가 처음은 아니다. 앞선 그의 선배들도 늘 고민해왔던 옛 소리의 복원은 그에게 이르러 좀 더 현실적인 모양새를 갖춘다. 그는 도자기 장고의 형태와 소리를 단순 복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도자기 장고가 우리 국악 중심부로 스며들게끔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중의 귀를 가장 무섭게 여기는 그를 도와 미지의 소리를 살려낸 숨은 조력자는 바로 신철순 도예가다. 예술로서의 도자 타일과 아트월 작업을 주로 해오던 그가 도자기 장고를 바로 마주했을 땐 역시‘소리’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다. 그럼에도 기꺼이 조종훈 국악인을 도와 도자기 장고 재현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신철순 도예가. 국악과 도예의 뜻밖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장단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Interview
조종훈 국악인

 

도자기 장고가 실재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어떤 계기로 고려시대 도자기 장고를 복원하기로 마음먹으셨나요?
우리나라 타악기 중 메인은 역시 장구(장고)입니다. 제가 타악을 전공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장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었죠, 공부하는 과정에서 삼국시대 혹은 고려시대 벽화들을 통해 장고의 원류 격인 세요고와 고려시대 도자기 장고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연주자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 도자기 장고가 지금까지 전해졌더라면 오늘날 우리 전통음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았을까.’ 오늘날과는 다른 형태와 쓰임의 도자기 장고가 어떤 소리를 낼지 상상하다가 창작 작업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악기사에 대한 논문과 도예 쪽 전문가들의 논문을 참고하기도 했고요. 발굴된 현지조사 자료들과 연구소의 가마터 조사 자료 등 폭넓게 조사했습니다. 그러던 중 도자기 장고가 동시대 송나라, 수나라, 당나라 때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소수민족 지역 중에는 아직까지도 실용 악기로 사용하고 있는 곳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때문에 현지조사까지 떠나게 됐습니다.

현지조사까지 다녀왔다니 놀라운데요, 현지조사는 어디로 떠났나요? 또 어떤 분들과 함께했는지도 궁금합니다.
현지조사는 중국의 광서성 자치구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계림시라는 곳을 베이스캠프로 두고 주변의 여러 소수민족들을 만났습니다. 중국 광서민족대학의 음대 음악학 교수로 재직 중이신 오녕화 교수님께서 현지 코디를 맡아주셨습니다. 그분도 현지 소수민족의 음악을 연구하고 계시기 때문에 도자기 장고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작년 7월, 약 보름 정도를 답사했는데 하필 그곳이 우기라 내내 비가 오고 흐렸던 기억이 나네요. 장족壯族과 모남족毛男族 그리고 요족猺族 등의 소수민족들을 직접 만나 그들은 도자기 장고를 어떻게 쓰고 어떻게 연주하는지, 그리고 어떤 명칭으로 부르는지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그들 악기의 역사와 유래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어요. 작년 1차 답사를 통해 아직도 많은 소수민족과 중국 전 대륙에 그들이 ‘도고’라 부르는 도자기 장고가 퍼져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 번의 답사로는 부족하다 싶어 이달 말, 2차 답사를 떠납니다.

 

2차 답사 때는 어떤 곳을 답사하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신철순 도예가와 함께하나요?
이번에는 그때 못 갔던 지역을 답사할 예정입니다. 1차 답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현지에서 코디를 맡아주신 오녕화 교수님께 연락이 왔는데요, 광서성 난닝시에 도고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기술자가 딱 1명 남아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답사에서는 그분을 만나 직접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고 어떤 기술로 도자기 장고를 만드는지 조사할 예정입니다. 작년에는 운이 좋게 한국예술문화원에서 지원을 받아 답사를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올해도 소정 지원을 받지만 충분한 금액이 아니라 신철순 선생님과 다녀오지는 못할 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이번에도 가서 최대한 많은 자료와 사진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중국 답사 이외에 참고했던 자료들이 있나요? 또 어떤 과정을 거쳐 복원작업이 이뤄졌는지도 궁금합니다.
우선은 국립국악원에서 도자기 장고와 관련된 자세한 자료들을 참고했습니다. 제작은 신철순 도예가님께 부탁드렸습니다. 크기부터 두께, 디자인, 재질 등의 데이터를 신 작가님께 드렸고 그것을 토대로 작가님과 상의하여 1차 샘플을 스무 개 이상 만들어봤어요. 허리가 잘록한 우리나라의 스타일로도 만들어 보고, 고려시대 도자기 장고의 표준 사이즈로도 만들어보고 좀 더 크게도 만들어도 보고, 항아리형인 중국 스타일도 만들어보면서 여러 방법으로 만든 샘플 중에 12개가 완성됐습니다. 그 위에 직접 소가죽, 개가죽 등 여러 가지 가죽도 씌워보고 소리를 비교해 그중 2개를 꼽아 보완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기물이 크다 보니 손으로 일정한 두께로 빚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두 번째로 제작할 때는 틀을 사용해 거기에 흙물을 부어 만들었습니다. 두께가 일정하고 얇은 것이 소리도 좋고 무게도 줄일 수 있었죠. 물론 틀을 사용한 것은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운데요.
도자기 장고 제작 당시 신철순 도예가님과 약속했어요. “넉넉하지 않은 제작비지만 선생님의 사비를 들여서까지 제작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주어진 제작비 안에서 최선을 다해주시되 저도 열심히 노력해서 도자기 장고를 꼭 팔겠습니다.”라고요. 문화는 결국 수요와 소비 안에서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어요. 먹고사는 일을 외면할 수는 없죠. 도자기 장고의 틀을 만들어 제작 단가를 낮추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한 것 이면에는 악기로서의 실제 상품가치를 고려한 일이기도 해요.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고 신철순 선생님의 노력에 꼭 보답해드리고 싶습니다. 제작 판매가 활발하게 되려면 결국 연주할 곡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창작에도 손을 뻗었습니다. 또 악기의 높은 완성도를 위해 보강 연구가 필요하겠죠.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8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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