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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월호 | 전시토픽 ]

그물에 걸린 전설
  • 편집부
  • 등록 2018-01-09 20: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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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 2016.7.26~9.4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모란넝쿨무늬큰꽃병」
1975년 신안 앞바다에서 작업하던 어부의 그물에 걸린 청자는 꽃병을 비롯해
6점이었다. 당시 문화재관리국은 이것들을 중국 원나라 때 저장 성 용천요에서 만든 것이라 밝혔다.

 

그물에 걸린 전설
1975년 8월 20일, 소문만 무성하던 보물선의 실마리가 나타났다. 어부 최평호 씨가 걷어 올린 그물에서 청자 6점이 발견된 것이다. 최 씨는 처음에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집에 보관하다 당시 교사였던 동생의 조언으로 이를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의 전신)에 감정 의뢰했다. 문화재평가위원회는 이 청자를 원나라 초기 또는 송나라 말의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영국에서 고려청자가 10만 달러 이상을 호가한 것으로 미루어 그 가치에 준할 것으로 감정했다.1) 그간 소문으로만 전하던 신안 앞바다 보물섬에 대한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후 몇 차례 도굴꾼들의 불법 인양으로 100여 점이 넘는 청자들이 계속해서 올라오자 문화재관리국이 나서 본격적으로 신안선 발굴조사에 나서게 된다. 1977년부터 1984년까지, 총 11차례의 유물 인양으로 총 2만 3,520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2만개의 보물들
신안의 보물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아시아관 신안해저문화재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워낙 발굴된 유물이 많아 그간 공개된 것은 일부인 1천여 점에 불과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신안해저선 발굴 40주년을 기념해 열린 특별전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에서 2만 4천여 점에 이르는 신안 앞바다의 보물들을 모두 모아 공개했다. 신안선이 침몰한 곳은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와 증도에서 각각 4㎞ 떨어진 곳으로 바닥의 진흙과 세찬 조류로 연중 물이 탁해 시계視界 가 좋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오래도록 발견되지 못한 신안선의 보물들은 땅 위의 강산이 수십 번 바뀌는 동안에도 차디찬 바닷속에서 650년 전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었다.

 

도착하지 못한 무역선
신안해저선은 길이 약 34m, 폭이 약 11m, 중량 200톤 급 이상의 무역선이다. 거대한 배 안에는 도자기와 금속공예품은 물론 동전과 자단목 및 각종 향신료가 실려 있었다. 보통은 거센 풍랑과 태풍의 위험 때문에 항해를 꺼리던 1323년 음력 6월, 무슨 사연이었는지 신안선은 중국 닝보寧波항을 출발해 일본 하카타 항으로 향했다. 신안 앞바다를 지나던 도중 태풍을 만났던 것일까. 암초에 부딪힌 배는 뱃머리 우현에 벌어진 틈으로 자꾸만 바닷물을 삼켜댔고, 결국 침몰하고 만다. 전시는 ‘신안선이 만약 목적지인 하카타 항에 무사히 도착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하는 상상으로부터 출발한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9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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