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제색실첩」 19세기
만물이 멈춘 듯한 고요한 겨울이야말로 옛것의 감상을 꺼내보기 좋은 계절이다. 그래서일까. 겨울에는 유독 고미술의 미를 탐닉하는 전시들이 곳곳에 많다. 한 해의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계절에 옛것을 더듬어보기 좋은 전시가 찾아왔다. 가나문화재단은 미술사가 혜곡 최순우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조선공예의 아름다움>전을 열었다. 18~20세기 초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을 한 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는 총 463종의 조선시대 공예품 656점을 선보인다. 다섯 개의 공간으로 흐르는 전시는 다양한 소재와 기법들로 만들어진 공예품들을 각각 쓰임과 생활공간을 중심으로 정리해 소개한다. 전시는 미술사가이자 애호가였던 최순우의 업적을 기리는 동시의 그의 미학과 취향을 추억하는 자리였다.
최순우를 그리며
<조선공예의 아름다움>은 1975년, 광복 3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민예미술대전>의 오마주다. 이번 전시를 총괄한 박영규 용인대 명예교수는 <한국민예미술대전> 당시 최순우의 옆에서 전시 준비를 돕던 새내기였다. 최순우와 함께 전시 준비를 위해 소장자의 집을 방문하며 사진 찍고 유물을 옮기던 때가 박영규 교수에게 있어서는 40여 년이 지나도록 조선시대 공예품을 대하는 척도가 됐다. 박영규 교수는 최순우 선생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바탕으로 살아생전 선생이 좋아하셨을 공예품들을 엄선해 그러모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평소 대중들이 접할 기회가 있는 유물들을 배제하고 오로지 개인 소장가들의 작품으로만 구성한 것도 이번 전시만의 놓칠 수 없는 특징이다. 아주 서민적인 소박한 공예품에서부터 사대부가 쓰던 높은 수준의 공예품까지 다양하게 소개한다. 덕분에 공예품에 담긴 담백함과 화려한 맛을 비교해가며 보는 재미도 있다. 작품들에서 최순우의 취향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나만의 취향을 찾으며 눈을 키워가는 것도 이번 전시에서 찾아갈 수 있는 의미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공예가들에게는 선인들의 뛰어난 공예품을 접하고 배울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일반 관람객들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한편 이번 전시 도록은 특별히 개인 소장을 욕심낼 정도로 훌륭하게 완성됐다. 전시 구성과 도록 집필을 위해 각 분야의 공예 전문가들이 기꺼이 힘을 모았다. 도록은 도자, 목공예, 금속, 규방공예, 한지공예, 장신구 등 조선의 공예품을 미술사적 측면에서 설명과 함께 전시된 작품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담겨있다.
삶의 격을 높여주는 물건
공예품이란 생활 속에서 그것을 쓰는 사람의 품격을 높여주는 것이다. 플라스틱 그릇이나 질박한 도자기 그릇이나, 그 안에 음식을 담아낸다는 쓰임과 형태는 같지만 분명 그 안에 비친 사람들의 생활은 다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를 돌보고 조금 번거롭더라도 시간과 정성을 기울일 수 있는 것, 바로 공예품을 곁에 두는 일이다.
최순우 선생은 일평생 한옥에 살며 한국의 공예품들과 함께했다. 과거에 머무른 것이 아닌, 오늘의 공예품과 함께 살아온 그의 삶이 뭇 미술학도들과 대중들에게도 존경받았음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조선의 공예품은 실용적인 형태를 갖춤과 동시에 기능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장식을 더한다. 이는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갖췄던 우리 선조들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 미술사가는 우리의 고유한 미의식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에서 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말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게 중도를 지키는 우리의 미의식이 한국 공예에 스며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