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청화기명문접시白磁靑畵器皿文楪匙」 조선 19세기, 17×4.2(h)cm,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조선 후기의 학자 이규상李奎象(1727-1799)이 저술한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은 18세기의 걸출한 인물을 망라해 소개한 책으로, 화가 이윤영李胤永(1714-1759)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의 집은 서울의 서쪽 반송지盤松池 가에 있었는데, 연못 가까이 정자를 세우고, 선비 오찬, 김상묵, 이인상 등 7, 8인과 더불어 문회文會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겨울밤엔 얼음덩이를 잘라내어 그 속에 촛불을 두고 이름하여 ‘빙등조빈연氷燈照賓筵’이라 하였고, 여름에는 연꽃을 병에 꽂아두고 벗들을 불렀다. 그는 그림을 잘 그리고 전각에도 능했다.
얼음등氷燈이 비추는 손님照賓, 곧 매화다. 얼음등의 환한 빛이 마치 달빛처럼 밝게 화분에 담긴 매화를 비추는 광경이라니, 지금 상상해봐도 호사스럽기 그지 없는 정경이다. 이윤영의 문집을 통해 함께 어울리던 벗인 오찬吳瓚(1717-1751)의 집에서도 빙등조빈연을 가졌음을 알 수 있는데, 매화와 함께 “문왕정文王鼎이 놓여 있고, 다른 고기물古器物 몇 가지가 있었는데 모두 맑고 깨끗하여 즐길 만하였다”2)고 적혀있어 기명器皿과 절지折枝를 같이 두고 보며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이윤영과 오찬과 어울려 매화를 즐긴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능호관 이인상李麟祥(1710-1760)이있는데, 오찬의 집에서 모인 장면을 「아회도雅會圖」로 남겨 당대 분재 및 고동완상古董玩賞 장면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림의 우측에는 매화, 대나무, 파초 화분이 있고 한가운데 방형의 문왕정과 검이 한 자루 놓였다. 좌측에는 필통과 벼루를 비롯한 문방사우를 늘어놓았고, 아회의 참석자들이 둘러앉아 이를 감상하고 있다. 화분이 그려진 분재무늬盆栽文 혹은 공예품 등이 함께 그려진 기명절지무늬器皿折枝文가 하나의 장식으로 조선 후기 청화백자에 널리 시문된 것은 이와 같은 수요층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었다.
분재애호盆栽愛好가 담긴 도자기
분재에 관련된 기록은 조선 전 시기에 걸쳐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매화를 중심으로 다수 남아있다. 이인상은 「관매기觀梅記」를 통해 분매의 죽음을 두고 평생 벗들과 매화를 감상했던 일을 회고하였는데,글에서 오찬의 집에 매화 외에도 여러 화분이 있었다고 언급하였다. “경보敬父(오찬의 자)가 매화와 대나무와 파초, 세 화분을 한 감실龕室 안에 두었는데 파초도 오래 견디었다”3)는 것으로 보아 매화가 가장 인기를 끌었지만 다른 종류의 식물 또한 분재의 대상이었다고 생각된다. 앞서 이윤영이 병에 꽃아 두었다는 연꽃이나 오찬이 길렀다는 대나무, 파초 또한 모두 사대부와 깊은 관련이 있는 상징적인 식물로서 널리 애호된 품종이며 분재문으로 다수 도자기에 장식되었다.
분재 도상이 도자기에 장식된 경우는 대개 회화적으로 완성도 높게 묘사되었으며, 따라서 백자호 등 비교적 기면이 넓어 문양을 시문하기에 적합한 기형을 중심으로 그려졌다. 조선 후기 청화백자의 많은 문양들이 도식화되어 장식적으로 그려진 경우가 많은데, 분재문은 비교적 회화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감상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매화새분재무늬항아리」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나무연꽃국화분재무늬항아리」 등을 살펴보면 구륵법으로 화분 및 식물을 그리고 채색했으며, 화분 및 화분대 또한 세부장식을 그릴 정도로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실물을 보고 그렸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백자진사분재문항아리」는 파초와 화분을 대담하게 장식하였는데, 지방가마에서 이와 같이 붉은빛이 나는 동화 안료를 사용하여 식물류를 그려 넣은 백자가 다수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항아리의 구연과 굽 부분의 지름이 거의 같다는 점은 19세기 항아리와 유사한 특징으로,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분재문이 지방백자에 그려질 정도로 유행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