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와서 분청은 보다 다양한 색을 보여준다. 귀얄의 힘찬 흐름과 덤벙의 파격은 오늘날의 미감에도 유효하다. 이번 전시 <분청, 그 자유로운 정신>은 전시가 분청을 다루는 기존의 방법과는 사뭇 다르다. 보통의 전시가 분청자를 기법별로 나열하는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반해, 이번 클레이아크의 전시는 기법으로의 분류는 배제하고 분청에 깃든 자연의 흐름을 따라간다. 이는 보다 깊은 차원에서 분청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전하기 위함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진리이나 결국 미美란 즉흥적인 순간에 다가오는 것이다.
곱게 단장한 그릇
단장에는 이유가 있다. 흠을 가리고자 할 때, 혹은 무엇을 돋보이게 할 때 우리는 단장을 한다. 분을 발라 단장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분청자(혹은 분청사기)’라는 이름은 1930년대의 미술사가 고유섭이 당시 일본인이 사용하던 용어 ‘미시마三島’를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로 고쳐 쓰며 유래했다. 14세기 중엽, 비색을 호령하던 고려청자는 고려의 몰락과 함께 무늬는 점차 도식화되어갔으며 기법은 졸렬해지기 시작했다. 분장(또는 분청)기법은 조질의 청자에 백토를 발라 꾸미는 데서 시작한다. 세태가 변함에 따라 다양한 수요와 미감이 뒤섞여 분청자가 청자의 자리를 대신하기에 이른다. 조선시대에 이르며 분청자는 상감, 인화, 박지, 음각, 철화, 귀얄, 덤벙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세련된 완성도를 보인다. 하지만 본래 분청자는 청자나 백자처럼 관청주도의 그릇이 아닌 민간에서 서민을 위한 그릇으로 활약했기에 법도와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을 더욱 분방하게 드러내는 그릇이다.
분청정경粉靑精景, 정서를 자아내다
중앙홀에 펼쳐진 도입부에서는 최성재 도예가의 작품을 통해 분청의 다양한 미감을 맛볼 수 있다. 작가의 작품은 크게 세 가지 경향으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손이나 나뭇가지, 대나무 뿌리 등을 이용한 귀얄기법으로 한국적인 맛을 살려낸다. 그리고 분청은 좀 더 다채로운색을 가지게 된다. 작가는 초벌 된 기물에 색 슬립을 입혀 이를 긁어내거나 수세미로 문지르는 방법을 통해 새로운 표현을 이끌어낸다. 프로세스가 다르니 기존의 분청과는 차별된 느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작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청화백자에 분청을 접목한다. 청색의 기물에 백토를 분장해 색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자연과 하나되다
도예는 늘 자연에 빚지는 작업이다. 모든 예술가들이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할 때 도자는 이미 자연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중에서도 자연의 흐름을 닮은 귀얄은 도자에 서린 물아일체物我一體
의 경지다. 황종례 도예가는 귀얄기법을 한국만이 가지는 물결이라 말한다. 일상에 사용하는 붓을 이용해 그려내는 귀얄은 정적인 물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작가는 지난 60여 년간 우리 도자문화를 위한 사명으로 작업해 구순이 된 지금까지도 항상 새로운 작업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자연의 색을 닮은 작품에는 파도와 바람과 때때로 흔들리는 풀이 생동한다. 그리고 작품은 도자의 본질적인 가치인 쓰임을 갖춤으로써 우리네 생활 속에 스민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