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철의 도예 작업은 단순히 ‘빚는’ 방식보다는 ‘깎아내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도기의 표면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형태대신 마치 소나무 껍질이나 거북의 등을 연상시키듯 불규칙한 자연적인 느낌이 강하다. 기존의 도기들이 일정한 반복적 구성을 택하는 것과는 달리 김훈철의 방식은 근원적이며 원초적인 미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방식은 인위적인 계산이 아닌 원시미술에서 보듯 전체적인 느낌, 원형적이며 직접적인 방식의 산물이다. 이것은 자아를 찾는 행위로서 시초의 자리, 근원적인 상태를 탐구하는 것이다.
작가의 깎는다는 행위는 시초로 돌아가려는 하나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흙에서 기器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깎는 행위는 시원始原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과정을 상징화한다. 그렇다고 작가의 깎는 행위가 단지 저 먼 심연으로 한없이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의 저편으로 흘러가기보다는 그 무의식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변화’이다. 창조의 자발성과 비합리적성격은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한다. 이것은 하나의 이성적인 중심에서 또 다른 이성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근원을 통해 또 다른 세계가 창조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예술적 사유를 통한 직관의 산물이다.
따라서 김훈철의 도예 작업은 대상으로부터 관념을 배제하는 것인데, 이것은 단순한 대상물이라는 세계 속에 ‘정定’하여진 대상으로 서의 도기가 아니라, ‘비정非-定’ 즉 정하여지지 않고 항상 변화해가는 도기인 것이다. 이것은 도기가 단순한 사물을 넘어, 그리고 김훈철의 작업이 ‘변화’를 넘어 삶 속으로 다가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의 도기는 이제 우리와 소통하고 세계 속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Mit-Leben)이라는 실존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번 전시에서 김훈철은 단순한 형태의 변화를 넘어 근원으로 다가선다. ‘허상의 현실화’는 감각적 지각을 극대화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눈을 비비고 눈을 감고 있으면 불규칙한 불꽃들이 역동적이며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것은 정형화된 패턴이 아니라 순간순간 변화하는 유기체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근원 속에서 모든 것은 계산적인 구성이 아니라 저절로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새로움을 통해서 현실화되는 것이다.
이전의 작업들에서는 깎아내린 흔적들이 비슷한 크기로서 그 흐름들은 중심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계산된 정점으로 향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방식은 단지 실제를 변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김훈철의 변화의 이면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이면의 탐구, 즉 근원의 탐구 작업은 도기의 흔적들이 물결치는 모양으로, 또는 그 크기와 깊이가 조금씩의 차이를 보이면서 중심에서 다시 주변으로 흩어지려고 한다. 더 이상 중심을 계획하지 않고 크기와 형태면에서도 다양성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도기 표면에서 부유한다. 여기에는 현실과 근원의 구별도 없고 또 마치 나무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것처럼 기교보다는 근원적인 자연스러움이 담겨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