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는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든다. 대부분 그릇이나 가구 같은 우리 삶에 필요한 일상 사물들이다. 20여 년 전 조선백자의 절제된 조형미와 옻칠을 접목한 작품을 시도한 이래, 작가는 줄곧 백토를 재료삼아 다양한 성형기법을 시도하고 독자적 형태를 구하고 여기에 유약과 옻칠을 조합하며 다양한 색채와 질감을 도출하는 작업을 해왔다. 특히 작가는 한국미술이 지닌 다양한 미적특질 중에서 특히 선線과 매스, 색色의 문제에 집중한다. 2014년부터 시도한 <Line-線> 연작은 우리 고건축 양식 곳곳에서 보이는 단순하고 명쾌한 선형과 기하학적 구성감각을 닮아있다. 창살문, 기둥, 우물 등에서 쉬이 발견되는 수직과 수평의 선의 궤적, 균형과 조화 그리고 현대적 감각에 준하는 추상성이 그것이다. 원형의 형태 역시 작가가 오랫동안 시도해온 사과 합盒으로부터 항아리, 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용되고 있는데, 이들 역시 자연물이나 산천山川의 곡선 같은 자연의 선 그리고 보름달처럼 둥글고 농현한 달항아리 특유의 곡선의 멋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정미의 작업을 단순히 옛 것을 기준하고 계승하려는 온고지신溫故知新내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성취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전통이라는 거대하고 무거운 한국적 유산 속에서 전체가 아닌 일루一縷를 응시한다. 그것은 첫째, 한국미술의 물질적 패턴에 주목하되 외향을 흉내 내거나 억지로 꾸미고 만드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 것이고 둘째, 입체와 평면, 예술과 공예의 경계를 두지 않는 광범위한 실험 속에서 흙과 불, 칠漆이라는 물질을 매체의 근본적이고 자연스러운 속성으로 다루는 것이다. 즉, 이정미의 작업은 한국 미술의 외형이 아닌 우리 미술이 지향하고 담고자 했던 근본을 향하고 있다.
이정미는 재료와 자신을 자연에 귀속시키고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하되 자연을 개념추구의 대상이 아닌 일상적 삶의 태도이자 공예적 태도로 환원시킨다. 특히 흙, 유약, 옻 등 자연으로부터 얻은 천연재료와 동력의 특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재료 고유의 물성을 조형미 내지 공예미로 확장한다. 그 예로, 그는 흙을 덧붙이거나 파거나 찢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사물에 신체성을 부여하고 사용자의 시각과 촉각에 재료의 태생과 본성을 감지케 하는 계기moment 부여의 과정이다. 흙의 물성이 촉발한 촉각성은 재료의 성질, 작업의 공정, 작가의 신체성을 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물질의 영역에서 비물질성의 영역으로 끌어넣는다. 결국 이정미의 작업에서 재료의 물성은 실용적 사물에 기계가 만든 물건이 갖지 못한 개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단순한 형태와 물질의 대조-극적인 만남을 창출하여 사용자에게 새로운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5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