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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월호 | 특집 ]

공예를 보는 학술적 시선 : 공예에 투영된 사회상
  • 편집부
  • 등록 2018-01-08 13:59:48
  • 수정 2018-01-08 14: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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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숙
「엄마의 방-오래된 서울Mother’s Room- Old Seoul」 92x79x5cm, Acrylic on terracotta, 2012

 

2000년대 한국 도예계에 유입된 활력과 국제적 흐름에 대한 인식은 다양한 방면으로 한국 현대 도예에 영향을 미쳤다. 과거의 전통이나 타자화 된 서구의 조형언어를 빌리는 방식을 지나, 다양한 매체와 방법을 통해 현실의 문제에 기반한 다양한 담론이 도예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
그 이전에도 우리는 이미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며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공예에 대한 사회적 통념의 변화를 경험한 바 있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한정됐던 도자 제작 분야를 포함, 다양한 공예의 영역에서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등 젠더에 따른 역할의 구분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희석되고 또 교차되어 왔다.

이번호 특집에서는 국내 도예 및 공예 학술대회에서 최근 논의된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한국 도예계의 전통과 현재를 짚어본다. 국내 공예계가 눈에 띄게 그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지금, 공예를 보는 학술적 시선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미래를 예측해보고자 한다.

 

한국 도예의 이야기꾼들, 지금 무엇을 보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모든 시각 예술가들은 이미지를 통해 시대를 이야기하는 이야기꾼들이다. 따라서 한 시대의 작가가 만든 예술품은 당대 사람들의 현실 생활과 의식구조를 읽는 창이자 그를 투영하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들은 예민한 정신과 역량을 발휘하여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하고 간과했던 진실들을 낱낱이 파헤치고 형상화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예술은 시대와 사회가 합의한 규율과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양육되고 길들여진 한 예술가의 눈과 정신으로 편협하게 들여다본 단편에 불과하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한국 현대도예의 서사 즉, 한국도예의 서사가 어디서 발아하고 어떻게 현실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표현의 모태가 되는 현실을 먼저 가늠하고 그 속에서 예술가들이 현실의 무엇을 불편하게 혹은 중요하게 여기는 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수년간 한국도예 현장의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 ‘한국 사회에서만 발아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 시대의 현실과 상처를 정면으로 목도하게 했던 이미지와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사유할 것이다.

 

1. 新 ‘격물치지格物致知’-자아가 투영된 풍경들
한국은 포스트모더니즘과 글로컬리즘의 강력한 영향 속에서 놓여 있으면서도 여전히 자연세계 그리고 윤리 영역을 포용하는 세계관을 배태한 유교의 가르침과 불교의 형이상학적 사고가 공존하는 세계다. 식민지, 전쟁, 민주화운동, 속도와 성과위주의 경제성장 추진 등과 같은 급격한 사회 변동은 한국사회에 근대적 요소와 전통적 요소의 충돌, 세대 갈등과 가치관의 혼란과 같은 문제들을 불렀고 이는 더욱 첨예화되고 있다. 이 혼란 속에서 예술가들이 가장 의문하고 문제시 하는 것은 단연코 인간의 실존, 좁게는 나의 실존이다. 실상 시대와 문화를 아울러 모든 예술가들이 결국 궁극적으로 알고 보고자하는 대상은 인간의 모든 행위 자체이자 삼라만상이다. 예감으로만 존재할 뿐 알려지지 않은 인간 그리고 세계의 실체에 답하기 위해서 예술가들은 인간이 생生에서 사死에 이르기까지 경험해야 하는 수많은 현실의 순간들을 복잡한 알레고리의 파편들로 치환하고 엮고 표현해왔다.
예술가들이 인간의 존재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동원했던 가장 오래된 은유는 자연이다. 특히 동아시아의 땅에서 농경 문화권에 속해 삶을 살아 온 한국인에게 나의 정체성을 투영하고 반추하는 매개체로 자연을 여기는 것은 매우 오랜 사유이자 삶의 태도였다. 특히 동아시아의 지성들은 자연을 자아를 비추는 투영의 창으로 여겼다. 자연을 살피고 계절과 장소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에서 생명의 본성, 자연과 삶의 이치를 깨닫는 것을 수신修身의 방법으로 여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가까운 물物에서 이치를 깨닫는 성리학적 세계관 즉, 격물치지格物致知다. 주변의 미물에서 겸허히 앎을 구하고 모든 존재를 성찰하며 그 자체로 존중하려는 옛 선인들의 마음은 근원적 의미에서 타자들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애정 속에서 인간과 세계, 자연의 본질을 탐구하고 의미 있는 생각을 드러내는 미술의 정신과 닮아있다. 거대한 것을 탐하기보다 자기 주변의 미시微示의 사물들에 끝없는 애정과 관심을 탐구하려는 동양문화의 근사近思의 시각은 거대서사에서 미시서사를 중시하는 최근 한국 도예가들의 작업에서 더욱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작가들은 선인들이 그러했듯 내 공간 속 익숙한 사물들에 자신을 투영한다. 생명이 없는 사물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생명성과 의미를 부여한다. 일상의 물건들에게 실존을 반추시킨다. 이들의 작업은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말처럼 자아가 살고 있는 장소를 탐사함으로써 집안의 소소한 사물들을 통해 자아 및 세계와 교감함으로써 결국 안온과 평화를 획득하는 일과 비견된다.
이지숙李芝淑, 1970∼이 테라코타로 재현한 정물도靜物圖는 늘 생의 근거리에 책을 놓아두고 생활화하며 고매高邁하게 살고자 그렸던 조선 선비들의 책가도2)와 묘한 접점을 이루고 있다. 서양의 원근법과 다른 흥미로운 화면구성, 차분한 색조, 노동으로 일군 핍진逼眞한 묘사가 매력적이다. 작가의 어느 하루를 그대로 이미지로 떠낸 듯 화면에는 주로 일상의 소소하고 다양한 기물이 등장한다. 대부분 자신의 엄마에게서 물려받았거나 여성인 자신이 사용해온 일상 물건들로 작가의 시간과 동행하며 저마다 독특한 고유의 언어와 온도, 역사를 몸 속 곳곳에 지니게 된 물건들이다. 또한 그것들은 처음에는 다수를 위한 혹은 타인의 것이었다가 어느 날 어느 인연으로 삶에 불현듯 들어와 나의 것으로 명명되고 각인된 것들이다. 이처럼 한 사람의 삶과 오랫동안 동행한 사물들에는 새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함과 특별함이 있다. 물건이 곧 주인장의 성격이고 취향이며 살아온 인생이다. 이것은 단순한 물리적 사물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 속에서 한 사람의 애정과 삶의 방식 그리고 추억을 덧입은 것들이기에 충분히 물건 주인의 실체와 면모를 가늠하게 해주는 물질적 기표라 여길만하다.

 

최홍선 「지극한 ‘것’the greatest devotion-‘Got(things)’」 39x39x2cm, Stoneware, reduction firing, 2013

 

최홍선崔洪瑄, 1964∼의 관조 대상은 내가 본 모든 ‘것Things’이다. 이때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이 아닌 ‘무엇을 보고 있는 주체의식’이다. ‘것Got’은 자신의 눈으로 매일 포착한 실재다. 그것은 세상에서 학습된 편견과 한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열린 눈으로 다시 바라볼 때 발견할 수 있는 익숙한 사물들의 감춰진 이면裏面이다. 대상을 선택하고 마음을 주어 살피고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일상의 객체들은 ‘보이는 사물’로부터 벗어나 ‘생각의 대상’으로 전환된다. 우리 삶의 단편들 즉, 대상의 존재와 본질을 인지하는데 반드시 시각이나 촉각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부피와 색이 부재한 사물의 실루엣과 표피는 오히려 비워있으되 채워있는 것, 존재하지 않되 존재하는 것처럼 공空, 허虛, 무無 같은 동양 특유의 시공간 개념과 존재론적 가치를 드러낸다. 부피가 사라지고 여백과 선線만으로 구성된 하얗고 담백한 형形은 우리 선비들이 먹과 한지 위에 단련된 선으로 펼치고자 했던 지극히 정제된 사유의 풍경이며 절제 혹은 침묵과도 같은 여백의 풍경과 같다.
김문경金紋敬, 1979∼은 도자기에 채소와 문방구 등을 듬성듬성 꽂아둔 정물풍경still-life을 보여준다. 그러나 김문경의 정물풍경은 서구 전통 정물화 형식을 취하되 원근법이 지워진 평면적인 세계이며, 어울리지 않되 부인할 수없는 것들의 생경한 조합이다. 그러나 하이데거Heidegger 식으로 말하면 김문경의 모든 사물들은 ‘형상εδος의 세계 내에 존재하는 이데아’들로서 동등하다. 담백한 색조, 세밀한 묘사 덕분에 채소들의 피부는 윤기가 흐르고 날 것처럼 부드러우며 관능적이다. 그러면서도 벌레 먹고 이로 베어물린 자리는 죽음 같은 차가움을 안긴다. 죽음과 인생의 허무를 감촉하는 바니타스Vanitas의 풍경이다. 작가는 정물화의 형식을 빌려 우리의 시선과 관습을 바꾼다면 소소하고 하찮은 일상 사물들과 풍경들 나아가 우리의 존재와 삶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시 보일 수 있는 지 일깨워준다.

 

 

「사기장」 『기산풍속도첩』 中, 19세기 말-20세기 초, 독일 함부르크 민속박물관

 

한국 공예의 사회적 통념의 형성 과정과 여성 장인: 역할의 변화와 현재

 

들어가는 글
일반적으로 널리 통하는 개념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통념通念, conventional wisdom’은 인간 사회의 역사와 문화, 생활 등 오랜 기간 사회 전반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의 상호 작용과 인식을 통해 완성된다. 공예에 적용된 여러 사회적 통념과 현재까지 존재하는 성性에 따른 통념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계문명의 도래가 본격화되기 전,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물질의 채취 및 가공과 완성은 손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적용된 사회적 역할과 통념·인식은 남성과 여성이 가진 손의 역할을 이분화 했고, 이러한 역할의 구분과 수행은 오랜 시간 축적되어 전해졌다. 따라서 공예를 둘러싼 사회적 통념의 형성과정에 대해 현재 사회 전반에 가장 일반적으로 인식된 예술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논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여기에는 오랜 시간 형성 과정을 거친 공예의 기본 성격과 인간의 생활 전반에 걸친 쓰임을 바탕으로 전개된 발전과정, 오랜 시간 인간의 삶 안에서 이뤄진 산업적·문화적 역할이 복합적으로 내재되었기 때문이다.
전통시대 농업과 상업 등 사회 전반의 활동과 공예품의 제작은 남성이 주도했다. 일부 여성 장인의 활동이 확인되는 사례도 있지만, 사서와 문헌, 조선시대 의궤, 풍속화 등에서 확인되는 장인의 활동을 통계로 구성해보면 남성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특히 의궤에서 확인되는 국가에서 시행한 공역에 참여한 장인의 성비를 살펴보면 자수, 침선 등 궁인 및 여성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분야를 제외하고는 참여 장인의 대다수는 남성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국가와 사회의 기간산업이었던 공예가 남성 장인의 주도로 전개됐고, 기술의 전승 역시 마찬가지의 형태로 이뤄졌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전통시대의 남성 장인은 사회에서 사용되는 공예품의 제작을 주도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공예품의 제작은 물론 디자인, 공예품에 대한 사회적인 제도와 의례의 구성 및 완성 등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반면 여성은 궁 내에서, 집안 내에서, 혹은 마을 내에서 사용하는 것을 담당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내치內治한다, 집안을 돌본다’는 전반적인 사회적 통념의 작용과 함께, 이를 기반으로 공예를 둘러싼 모든 사회적 역할이 남성장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상과 당시 인식에 따른 남성과 여성의 역할분담은 김홍도의 「자리짜기」 등 여러 회화 작품과 문헌에서 확인된다.

근대부터 본격화 된 물질의 생산 및 가공주체의 변화는 과거의 사회적 통념이 희미해지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남성장인이 담당했던 사회 전반의 제작활동은 점차 기계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삶에서 사용되는 모든 공예품이 손을 통해 완성된다는 물질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을 불러왔다. 인식의 전환은 수공예의 위축을 동반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수요 환경은 물론 공예품을 제작하는 원천 기술의 전승 및 교육방식의 변화를 수반했다. 그리고 남성장인과 여성장인의 영역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었던 통념의 경계를 약화시켰다.

 

「가마점」 『기산풍속도첩』 中, 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전통시대 공예의 통념 형성과 여성 장인의 활동 범위
공예에 대한 사회적 통념의 형성과정을 따라가면 오랜 시간 동안 사회 전반의 여러 작용을 통해 이뤄진 공예에 대한 인식과 제작 활동, 부여되었던 역할, 그리고 이를 통해 완성된 문화와 마주한다. 더불어 공예품을 사용했던 사회상과 인간의 삶을 만난다. 공예의 근간인 손과 기술은 전통시대 인간의 생각과 필요에 의해 구현되는 모든 물질들을 완성하는 매개이자 도구였다. 공예는 일상과 의례, 규범과 문화 등 사회 전반에 사용되는 모든 물질을 구현했고 이들의 쓰임을 담았다. 제작을 담당한 장인은 숙련된 기술을 통해 당시의 문화와 쓰임이 반영된 다채로운 기종과 의장을 완성했다. 물질문화의 흐름은 성의 구분 보다는 사용의 주체와 용도 및 용처, 그리고 당대의 경향과 전통에 의해 전개되었지만 흐름의 줄기는 내적인 일을 담당한 여성보다는 외적인 일을 담당한 남성이 주도했다.

 

전통시대~현재 전승된 현 국가무형문화재 및 지방무형문화재의 세부 분야는 이러한 전통시대 성에 따른 장인의 역할과 활동의 폭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세부 분야 중 전통시대부터 여성의 주도로 전승이 이어진 분야, 모계를 통해 전승된 분야, 가업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전승된 분야를 분류 대상으로 포함하고 반대로 현재는 여성장인에 의해 전승이 이루어지지만 의궤 및 사서와 문헌자료를 통해 남성주도로 제작 및 전승이 이루어졌음이 확인되는 분야를 제외한 후, 사서와 문헌을 근거로 분류해보면 49개의 세부분야 가운데 실질적으로 전통시대부터 여성의 주도로 전승이 이뤄진 분야는 매우 적은 편이다.

또한 곡성의 돌실나이, 나주의 샛골나이 등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여성들의 활동에 의해 전승된 분야 및 자수장, 침선장, 매듭장 등 왕실과 규방을 중심으로 전승된 분야 등 여성 주도로 전승이 이뤄진 분야의 구성과 성격은 당시 사회적 통념 하에 전개된 여성 및 여성 장인의 제한적 활동의 폭을 보여준다. 더불어 각종 직조에 사용된 베틀의 바디를 제작하는 바디장이 남성장인을 중심으로 전승된 사례 등은 여성장인에 의해 제작과 전승이 주도된 분야라 하더라도, 도구의 제작 등 일정부분은 남성장인의 제작 참여가 이루어졌으며 관련 기술 역시 같은 맥락으로 전승이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전통시대 사회 전반을 주도했던 남성장인들의 활동과 사회 구조와 통념에 의해 한정된 여성의 역할, 여성 장인의 제작활동 및 범위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앞서 언급한 사회에서 통용된 공예와 장인의 역할과도 직접적으로 맞물린다. 공예는 현재와 달리 사회에서 사용되는 모든 물질의 제작을 의미했고 이는 현재적 의미로 산업이었다. 크게는 국가의 기간산업이었고, 실질적으로는 일상공예이자 제작자에게는 생계의 수단이었다. 남성장인은 사회적 표상과 문화, 일상의 모든 물질의 생산과 공급을 책임지는 제작자이자 동시에 이를 통해 집안을 꾸려나가는 가장이었다. 따라서 남성장인이 주도하는 전통시대 공예품의 제작과 기술의 전승은 당시의 사회적 구조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조선 후기 작품인 김홍도의 「자리짜기」는 한 공간에서 제작활동을 하는 부부의 모습을 통해 당시 이러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왼쪽에 자리하고 있는 남성장인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돗자리를 짜고 있다. 돗자리는 집에서 사용하는 것을 자체적으로 제작하기도 하지만, 돗자리의 다채로운 종류만큼 다양한 제작 기술이 존재했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장인이 제작하여 시전에서 판매되는 물품 중 하나였다. 작품 속 남성장인이 국가나 지방관청 소속의 장인인지 민간에서 활동하는 장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돗자리를 짜는 장인은 관청에 소속된 장인분야 중 하나였다. 작품 속 장인이 집에서 사용할 것을 제작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장인의 역할과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동시에 존재했다.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는 여성장인은 물레로 실을 뽑고 있다. 물레로 뽑은 실은 시전에서 판매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집안에 물레가 하나 쯤은 있을 정도로3) 실을 뽑는 작업 자체가 당시 일반화 된 여성의 집안일 가운데 하나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장인이 어떤 목적으로 작업을 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작품에서는 장인 가정 내의 일상적 풍경을 통해 당시 사회적 통념 하에 전개된 남성과 여성의 제작 활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양상은 도안디자인을 제작했던 화원畫員, 화공畫工, 화승畵僧 역시 마찬가지였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6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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