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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0월호 | 특집 ]

공예 비엔날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편집부
  • 등록 2018-01-02 17: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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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이후’의 공예-공예 담론의 모험과 모색

 

<2017 청주공예비엔날레> 기획전 전경

 

공예와 예술

 공예와 예술1)의 관계가 공예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공예와 관련된 여러 문제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예와 예술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확실히 문제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공예와 예술의 관계가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대략 세 가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문화사에서 예술의 등장이 공예의 개념과 존재방식에 미친 영향이다. 둘째, 예술의 등장 이후 거꾸로 공예가 예술에 미친 영향이다. 셋째, 예술이 공예를 대체하게 된 어떤 상황이다. 이는 각기 다른 역사적, 지리적 조건과 상황들 속에서 전개된 사태들이다. 그리고 이는 공예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공예의 방향을 살피는데 중요한 참조점이 될 것이다. 공예와 예술이 관계를 맺는 세 가지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예술이 공예에 미친 영향

 과거에는 공예만이 존재했었다. 적어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에서의 예술은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에서의 예술이 등장한 것은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부터이다. 르네상스에 이르러 비로소 공예, 즉 기술Skill과는 차별되는 인문학Liberal Arts으로서의 예술이 등장했다. 그러니까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문학으로 간주된 어떤 고급한 지식들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들과 그들에게 얽힌 에피소드들은 예술의 등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신화들이다.

 

공예가 예술에 미친 영향

 예술의 등장이 초래한 변화는 반드시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말했다시피 예술의 등장이 공예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그러나 반대로 공예가 예술에 미친 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예술이 공예에 미친 영향이 그랬던 만큼이나 공예가 예술에 미친 영향 역시 일차적으로는 개념적 차원의 변화였다. 이는 예술의 등장으로 인해 형성된 조형예술의 위계질서에 대한 도전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예술은 고급예술High Art이고 공예는 저급예술Low Art이라는 구분이 문제가 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19세기까지 이러한 구분이 고착되었다. 하지만 19세기에 오면 이러한 위계질서에 대한 도전이 등장한다. 그것이 바로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공예운동The Arts and Crafts Movement’이다.

 

야나기하라 「도자기」 2012~2016

 

Q: 무엇이 공예인가?

A: 결국 공예다!

 

 

1999년을 시작으로 제10회를 맞이하는 청주공예비엔날레가 그동안 다뤄온 많은 담론과 이슈는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래서 무엇이 공예인가? 이 질문에 대해 기획전이 고민한 답변은 ‘A:CRAFT’다. 단순 명료하고 솔직하며 직설적이다.
‘무엇이 공예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가기 이전에 예술가이자 전시감독으로서 충분한 자격과 역량을 갖추었는가는 둘째 치더라도, 함축적이면서도 다의적인 이 화두를 어떻게 이해하고 정의하는가에 따라 본 기획전시의 시작과 끝에서 마주할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것이 오히려 고민의 핵심이다. 그래서 제10회 청주공예비엔날레 기획전은 ‘무엇이 공예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세 가지 시선으로 공예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했다. 첫째, ‘공예와 미술의 미묘한 동거관계’, 둘째,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공예는 공예인가?’, 셋째, ‘디지털 시대의 손은 어디로 향하는가?’ 이 세 가지 시선으로 ‘우주: 7개의 방Universe: 7 Spaces’ - ‘공예의 시간Time in Craft’ -
‘심미적 관계Aesthetic Relation’ - ‘품다Embrace+’라는 4개의 섹션을 구성하고 근원적인 물음을 관통하는 한 편의 서사敍事를 기획했다. 하지만 이 서사는 결국 무엇이 공예인가에 대해 명확히 답변하지 않는다. 청주공예비엔날레 ‘10번째 공예 이야기’의 섹션별 글머리에 적절한 첫 문장을 제시할 뿐이다. 서사의 결말은 비엔날레를 만들고, 참여하고, 관람하는 모든 이들이 스스로 찾아야 하는 몫으로 남겨 놓는다. 이것이 제10회 청주공예비엔날레 기획전의 목적이자, 방향이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공예는 공예인가?

 ‘무엇이 공예인가?’에 대한 두 번째 시선은 시간과 역사 그리고 계보에 관한 ‘공예 속 공예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미술의 기원으로서 고대미술장식’과 더 나아가 ‘인류의 기원으로서 그릇쓰임’이라는 공예의 뿌리에서 시작된다. 이어서 그 뿌리를 잇는 전통으로부터 발전해 온 현대 인류가 다시 그 전통을 바라보는 두 축인 ‘전승傳承과 보전保全’, ‘계승繼承과 발전發展’을 다룬다. 인류 문명이 역사·문화의 융성과 쇠퇴를 거듭하며 발전한 것처럼, 공예 또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태도로 새로운 시대를 위해 창조적 실험을 시도하고 창의적 대안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통 공예와 현대 공예, 미래 공예를 둘러싼 담론의 중심에는 다양한 방향성과 견해차가 존재한다.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겠지만, ‘공예’라는 개념이 유입된 이래, 한국 공예의 다층적 구조에 더하여 ‘전승과 보전’, ‘계승과 발전’이라는 양측의 입장에 따라, 전승공예·전통공예와 예술공예·현대공예가 갈등하는 모양새다.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취지와 정체성을 함의한 기획전시는 한국 공예가 고민하고 갈등하는 이런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공예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두 번째 시선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난제다.

 

<제10회 청주공예비엔날레> 기획전 ‘RE:CRAFT’ 전시 전경

 

RE:CRAFT

그리고 기본 다지기

 

 어느 비평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21세기에 들어오며 한국은 비엔날레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비엔날레들이 연속적으로 생성되고 있다. 그 시작은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이어진 문민정부의 주요정책인 민주화, 지방화, 세계화 정책에 힘입어 1995년에 개최된 <광주비엔날레>였다. 또한 같은 해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더불어 시행된 지방자치제도는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서울에 편중된 정치, 문화, 경제를 시도단위로 분산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88 서울올림픽>과 <93 대전엑스포> 이후 국제문화행사가 한동안 뜸했던 즈음에 개최된 <제1회 광주비엔날레>의 가시적인 성공으로 인한 지역의 정체성 형성 및 문화마케팅 효과는 지방자치제 초기의 시・도 단체장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그리하여 전국에서는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1998~, 2002년 부산비엔날레로 개칭,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1999, 미디어시티 서울2000~, 격년제 개최, 경기세계도자엑스포2000, 이후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로 개칭, 홀수년도 개최, 공주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2004~, 광주디자인비엔날레2005~ 등 지자체들이 주최하는 비엔날레가 성행하게 되었다.1) 이와는 달리 서울국제도예비엔날레처럼 순수하게 작가들의 의지와 열정으로 민간영역에서 시작하여 공적영역으로 흡수되려다 중간에 사라져간 비엔날레도 있다.2) 비엔날레는 아니지만 대구텍스타일아트도큐멘타2004-2009는 지역섬유산업협회가 주축이 되어 섬유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섬유미술 전시회, 패션쇼 등을 아우르는 행사를 개최하였으나, 지역의 섬유산업이 사행길로 접어들자 지속적인 지원이 불가하여 행사도 종료되었다.

 이와 같이 국내의 무수한 비엔날레들 중에서 올해로 10회째의 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주제의 특이성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공예계의 주목을 받으며 굳건하게 지속해오고 있다. 제1회 전시감독 장동광에 따르면, 당시 스위스 로잔느 타피스트리 비엔날레, 프랑스 발로리스 국제도예비엔날레, 일본의 세계 유리전과 같이 공예의 한 분야만을 특화시킨 비엔날레 또는 국제 공모전은 다수 있었지만, 5개의 주요 분야금속, 도자, 목칠, 섬유, 유리를 아우른 국제전시는 최초였다고 기술되어 있다.3) 또한 98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준비위원회가 구성되기 5년 전 미국 공예계에서는 공예인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일어나는데, 1956년에 개관한 미국 뉴욕에 소재한 아메리카 크라프트 뮤지엄America Craft Museum이 아트 앤 디자인 뮤지엄Museum of Art & Design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공예 단어를 버리게 된 것이다.4) 이에 대해 1990-93년에 아메리카 크라프트 뮤지엄의 큐레이터로 근무한 미술비평가 존 페로우John Perreault, 1937-2015는 지난 2007년에 제3회 공예비엔날레를 방문 후 작성한 전시리뷰에서, ‘한국의 공예는 다른 선진국들이 겪은 공예 정체성의 위기로 고통 받고 있지만,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와는 달리, 아직까지는 ‘공예’라는 단어를 지우려는 수고를 하고 있지 않다’ 라며 사라져가는 단어 ‘공예’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5) 서구 예술계에서 ‘공예’가 사라져가는 상황과 한국 공예계의 정체성 혼돈 속에서 개최된 청주공예비엔날레는 당시 공예계 내부의 요청보다 지역자치단체의 홍보와 마케팅의 일환으로 1998년 급박하게 출범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준비위원회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조직위 초기의 부족한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의 세월동안 한국 공예계와 세계 공예계에 끼친 영향이 결코 미미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10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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