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王이 사랑한 보물: 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 전시 전경
국립중앙박물관은 그간 국외 여러 박물관과 교류하며 세계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를 개최해왔다. 그러나 독일의 박물관과 함께 전시를 준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별전 <왕王이 사랑한 보물–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 연합인 드레스덴박물관연합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과 함께한다.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도자기, 무기, 회화 등 소장품에 따라 특화된 15개 박물관으로 구성된 드레스덴박물관연합은 문자 그대로 ‘가장 폭넓게’ 유럽의 보물을 소장한 기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두 기관 간에 교류가 시작된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전시 준비 과정에서의 의견 교환과 합의는 오랜 파트너쉽을 유지해온 듯 순조로웠다. 이번 전시가 양 기관 간 교류전시의 일환으로 개최된 만큼, 향후 2~3년 내에 있을 드레스덴에서의 한국미술 전시도 충분히 기대해 볼만하다. 파트너쉽의 첫 결과물로 열리는 이번 서울 전시는 드레스덴박물관연합을 대표하는 그린볼트박물관, 무기박물관, 도자기 박물관의 소장품 중 130점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생김새를 본 뜬 태양 가면, 1709년
전시장에 펼쳐진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꿈
‘왕’이 사랑한 ‘보물’이라는 전시 제목답게, 이번 전시는 한 왕이 열정적으로 수집한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가득하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August der Starke, 1670~1733, 1694년부터 작센 선제후, 1697년부터 폴란드 왕’는 작센Sachsen 공국의 선제후이자 폴란드의 왕으로 재위하며, 유럽 곳곳에서 예술품을 사들였다. 나아가 최고의 장인들을 궁정으로 불러모아 군주로서의 권위를 과시할 작품을 제작하게 했다. 당시 ‘하얀 금’이라 불렸던 도자기 또한 여기에 포함된다. 아우구스투스는 전쟁이 끊이질 않았던 18세기 초에 자신의 용기병dragoon 600명을 중국 도자기 151점과 맞바꿀 정도로 동양 도자기의 열렬한 수집가였다. 그의 열망에 부응한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Johann Friedrich Böttger, 1682~1719의 끊임없는 시도 끝에, 작센 공국은 유럽 최초로 경질 자기를 생산해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전시는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예술품을 통해 펼치고자 했던 꿈을 3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제1부는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강건왕아우구스투스라는 인물을 살펴본다. 작센 공국의 ‘선제후’였던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선출할 권리를 가졌지만, 제후를 뛰어넘어 왕의 지위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왕이 되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그는 가톨릭으로의 개종과 각종 경제적 능력의 과시를 통해 선출직이었던 폴란드의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왕위 쟁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해체된 군복,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왕”을 의미하는 라틴어 명칭을 담은 모노그램 “FARFridericus Augustus Rex”이 장식된 의례용 검, 그리고 루이 14세를 연상케 하는 태양 가면에서 바로크 군주로서 왕위를 열망하고 그 권위를 과시하고자 했던 그의 꿈을 읽어낼 수 있다.
제2부는 드레스덴을 명실공히 ‘엘베 강의 피렌체’로 자리매김하게 한 드레스덴 보물의 방, 즉 ‘그린볼트Grünes Gewölbe’에 전시되었던 작품을 소개한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드레스덴을 유럽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기를 꿈꾸었고, 웅장한 궁정 건축과 화려한 예술품을 통해 그의 권위를 효과적으로 전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훌륭한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프랑스의 절대군주, 태양왕 루이 14세Louis ⅩⅣ, 재위 1643~1715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젊은 공작 시절,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통해 베르사유 궁전을 직접 방문했다. 이 기억은 그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1부의 태양 가면에 이어 청동의 방에 전시된 루이 14세의 기마상, 루이 14세 부자가 열성적으로 모았던 수정 그릇 컬렉션은 직접적인 모방의 대상에서 나아가, 취향의 영역에까지 파고든 루이 14세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붉은 용’ 식기 세트, 18세기 후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그는 소장품 목록을 만들어 컬렉션을 관리하고, 자신만의 구상에 따라 여덟 개의 방에 소장품을 분류하여 전시하였다. 이어 1729년에는 유럽 왕실 최초로 보물의 방을 전시실과 로비, 사무실을 갖춘 박물관의 형태로 대중에게 공개했다. 즉, 그는 유럽 최초의 박물관 설립자이자 큐레이터였던 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18세기 초 아우구스투스가 개방했던 모습 그대로 그린볼트 보물의 방을 부분적으로 재현한다. 재질별 소장품을 전시하는 상아, 청동, 은, 도금은의 방부터, 작센 선제후들의 비밀 금고에서 드레스덴의 ‘거울의 방’으로 재탄생한 금은보화의 방과 코너캐비닛, 그리고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권위를 전시하기 위해 기획한 회심의 장소, 보석의 방까지 총 7개의 공간이다. 특히 보석의 방은 벽면뿐 아니라 바닥까지 그대로 재현하여 마치 드레스덴 궁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했다.
제 3부는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끝내 달성하지 못한 꿈, ‘도자기 궁전’을 그의 계획에 따라 부분적으로 재현한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동양 도자기의 열렬한 수집가로서 단기간에 유럽 최대 규모의 동아시아 자기 컬렉션을 완성한 군주였다. 그는 이 컬렉션을 바탕으로 뵈트거와 발터 폰 취른하우스Walter von Tschirnhaus, 1651~1708에게 자기를 발명할 것을 명했고, 마침내 1708년 유럽인들이 그토록 열망한 경질자기 생산에 성공했다. 이후로도 20년에 걸쳐 이루어진 끊임없는 실험은 마이센 자기를 안료와 기형 등 모든 면에서 동양의 자기를 따라잡을 수 있게 했다. 실제로 1730년경 파리에서는 한 예술품 중개인에 의해 마이센 자기가 동아시아 자기로 거래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마이센 자기의 우월함과 그의 동아시아 자기 컬렉션을 함께 내보일 ‘도자기 궁전’을 만들고자 구상하였다. 이를 위해 여름 별장이었던 ‘네덜란드 궁전’을 ‘일본 궁전’이라 이름 붙이고 외관을 새롭게 하였지만, 결국 내부까지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는 도자기를 색상 별로 분류하여 전시할 것을 기획했고, 궁전의 핵심 공간인 2층 중앙 왕좌실의 양쪽 끝에는 도자기로 만든 왕좌와, 중국에서조차 제작에 난항을 겪었던 자기로 만든 악기인 카리용Carillon을 선보여 작센 자기의 우월함을 내보이고자 했다. 이 모든 계획은 그의 궁정 건축가 마테우스 다니엘 푀펠만Matthäus Daniel Pöppelmann, 1662-1736과 자하리아스 롱겔룬Zacharias Longuelune, 1669~1748의 입면도로 구체화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구상을 담은 입면도와 함께 실제 자기를 전시하여 그의 못다 이룬 꿈을 재현하고, 유럽 경질자기 생산의 시작을 알린 마이센 자기의 발전양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18세기 중국과 일본의 수출 자기와 더불어, 초기 마이센 자기를 비교해보는 즐거움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10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