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늦은 시작이지만 열정적으로 자신만의 작업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는 강인경 작가는 청화백자의 현대화를 모색하며 우리의 일상 속 가장 가까이 있는 식기를 만든다. 그리고 푸른빛 가득한 청화자기는 아름다움을 더하는 장식의 묘미가 가득하다.
강인경의 작업들
강인경 작가는 전통과 기법, 전승의 의미를 이어가고 우리 삶속에 녹아있는 생활예술의 근본이 되는 공예가 지닌 정신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그녀는 청화백자의 전통 기법과 화풍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체화시켜 아름답고 격조 높은 표현을 모색한다. 또한 전통과 동시대의 다양한 사안들을 들춰내며 공예가 지닌 진정한 의미에 대해 질문해 온 작가이기도 하다. 9월 27일부터 10월 2일까지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옛것에서 새것을 찾다
청화기법이란 백자 태토 위에 코발트가 함유된 안료인 회청을 이용하여 문양을 나타낸 것을 말하며 그 위에 유약을 입혀 고원에서 환원 번조한 것을 청화백자라 한다. 특히 조선 초기 청화백자는 의례기와 같은 특수한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기형과 문양에 있어서도 품격이 높고 아름다운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강인경 작가는 18세기 청화백자를 제작하던 기법 중에 하나인 가압 성형 방식으로 기형을 만들어 나간다. 이는 느리게 가는 과정의 미학을 추구하며, 현대적인 형태와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청화의 외형과 미감을 온전히 계승하는 데 초점을 맞추려는 흐름이 있다. 그녀는 점묘적 청화바탕에 추상화나 구체화에 근접하는 현대적 감수성이 느껴지는 문양을 그려냄에도 불구하고, 접시와 같은 조선청화를 대표하는 기형을 ‘선택’하고 시정이 풍부한 여백과 간결하고 절제된 표현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조선청화의 미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적인 쓰임’에 주목하여 일상생활에서 만나기 쉬운 작은 크기의 실용기에 천착하고 ‘현대적인 미감’에 주목하여 화병, 면기 등 모던한 감수성으로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강인경의 시선으로 체화된 청화백자의 기형과 문양
이번 전시는 18세기 조선청화백자 기법을 차용해서 제작한 접시를 시작으로 면기, 반상기, 화기, 합 등 실용에 쓰일 수 있는 작품을 배치해 테이블 웨어를 구성한다. 그녀의 청화백자 작품은 음식을 담고, 사용하며 실생활에 직접 사용할 수 있기에 매력적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그릇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마에서 그릇이 나오면 직접 음식을 담아 사용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처음에는 예쁘게 보이고, 장식성이 가미된 그릇들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실용적인 부분을 고려하고 있어요.” 그녀는 외국 생활에서 수집한 그릇과 여행에서 구입한 그릇을 모아 놓은 그릇장에서 꺼내 음식을 담으며 특별한 기억을 상기한다. 또한 그릇의 본질을 비롯해 공간을 장식하고, 추억을 상기하는 매개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Blooming Plate」 28×28×2cm
청화백자에 그려지는 그림
이번 작품에서는 나비, 꽃이 들어간 「Blooming」 라인 외에 형태와 크기에 기교가 들어가고, 그림은 좀 더 단순화된 작품을 선보인다. 이는 소지를 가압하고, 가압된 기물의 겉면을 깎으며 기형을 제작하고, 청화를 뿌리는 과정을 거쳐 청화백자의 바탕을 만들며, 그림의 요소들을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 요소들을 합쳐 다양한 시점으로 그림을 재배치하여 전통을 재구성한 현대적인 청화백자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자연물은 저에게 새로운 영감의 대상이에요. 모든 과정은 일상의 우연에서 탄생하죠. 블루베리 열매의 문양은 블루베리를 좋아해서 그리게 됐어요. 그리고 사발에 그려진 토끼는 둘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동화책에 나온 토끼 그림이 아주 귀엽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토끼가 갖는 역사 속 의미를 찾아서 그려보았어요. 어떤 전통 소재를 찾아서 그리기 보다는 일상 속에서 영감을 받아 그리는 편이에요”
청화백자의 아름다움
강인경 작가의 작업은 가압 성형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녀의 작업실 곳곳에는 형태적인 부분을 비롯해 틈이 나가거나 벌어져서 깨진 청화 그릇들이 놓여있다. 물레를 차고, 석고틀에 찍어내고, 깎아내며, 청화 안료를 뿌리는 과정을 모두 거쳤는데도 깨져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같이 그녀의 손길에 전해진 완성작들은 오랫동안 자신을 체화시켜 온 결과물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나중에는 오기로 붙들고 있어서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왜 이 작업을 계속해야 될까란 고민을 하게 됐어요. 파손률에 대한 부분은 몇몇 분들에게 자문을 받으며, 흙이 물성을 파악했어요. 굳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요. 많은 시간 동안 한 작품만 만드는 것보다는 대량생산을 해서 판매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충고도 있었어요. 이 같은 의견 때문에 작업적 소신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제 작업적 생각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을 가치 있게 봐주시는 분들 때문에 작업을 이어 왔습니다”
“앞으로 계속 청화백자를 중심으로 한 테이블 웨어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실생활에 사용하는 아름다운 식기를 만들고 싶어요. 전통적인 기법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며 현대 산업사회 속에서도 조화를 모색할 수 있는 작가가 되려고 합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10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