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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1월호 | 뉴스단신 ]

일본인 유종렬 ⑫
  • 편집부
  • 등록 2018-01-02 16:32:36
  • 수정 2018-01-02 16: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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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뛰어난 기량과 기술을 가진 자 ‘공예가들’

뛰어난 기량과 기술을 가진 자 ‘공예가들’

 

| 나유석 도예가

 

야나기는 기술이라는 것이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는 자가 알아야하는 도리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도리’는 공예의 힘든 기술을 배워야 할 ‘당위성’ 그리고 ‘직업적 소명’과 만난다. 그는 참된 기술에 근거해 그 도리를
따르지 않는 것들은 어떤 물건이든 올바르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도리란 공예품이 만들어지는 이치이기도 하지만 만드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이기도 하다. 어쩌면 대학에서의 공예교육은 제대
로 된 직업적 자세를 갖게 하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고된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마음가짐이 제대로 된 공예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인지시켜줘야 한다. 공예의 기
술인 ‘도리’는 공예가로서 가져야 할 ‘사회적 도리’이기도 하며 지켜야 할 ‘당위성’과 ‘직업적 소명’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기본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을 ‘기술’이라는 개념으로 구별하자.
이를테면 쪽빛藍을 넣은 단지에, 쪽과 물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할지. 여기에다 무엇을 섞으면 색이 나타나는지. 몇 번이나 휘저어야 할지. 발색發色에 적합한 온도는 몇 도 인지. 염색할 실의 분량에 대하여 단지를 몇

개나 준비해야 할지. 실을 단지의 물에 적셨다 뺐다 하는 데에는 어떤방법이 좋은지.

색을 고정시키는 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물에 담그는 정도는 얼마가 적당한지-여러 가지 세밀한 일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요령을 알게 되는 것은 기량이 아니라 기술이다. 기술은 솜씨가 아니라 지혜이다.

어떤 일에 관한 구체적인 이해이다.”1) 어떤 일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기술’이라고 설명하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해석 능력에 그저 놀랍다는 생각밖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공예의 기술은 오랜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쌓아올린 지혜가 경험이 되고 그리고 그것이 기술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지금의 공예기술은 우리 선조들의 체험을 통해 후세에 후세를 거쳐 남겨진 큰 유산들이다. 그 훌륭한 지혜들을 우리는 대학에서 각자의 전공시간에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 지혜가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과학을 닮지 못해 시대적 흐름에 뒤처지는 듯 보여도, 이 공예의 기술은 시대를 초월해 축적된 지혜들이므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이유와 당위성으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공예가 과학을 따라가지는 못한다고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 할 것이 아니라 공예에서 말하는 ‘기술’과 과학은 분명 다르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공예의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 비합리적인 것으로 비춰지지만 이
는 과학과 다른 점에서 오는 것이다. 오늘날의 과학은 도자기의 모든 것을 분석해낸다. 하지만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과학도 ‘달 항아리’ 특유의 곡선에 아름다움을 재현해 낼 수 없다. 이것은 마치 몬드리안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색면추상과 같은 작품을 이론에만 근거해 색채학자도 생각해 낼 수 있느냐를 묻는 것과 같은 경우다. 그래서 우리는 비합리적으로 보일지라도 힘을 들여 공예의 기술을 몸으로 습득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과학은 고려자기를 분석해서 화학적 성분이 어떻게 되어 있고 어떤 물리학적 성질의 불로 구워졌는지를 기술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분석된 그 방법을 가지고 옛날의 고려자기의 풍운風韻을 재현할 수 있을까, 불가사의하게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렇게 안 되는 까닭이 뭔지, 뭐가 빠져서 안 되는지, 우리는 그 까닭을 모른다.”2)
첨단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 고려청자를 아직도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학과 기술이 서로 상호보완 속에 발전되어 왔다고 하지만 공예의 기술만큼은 과학과 몇 걸음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공예의 기술은 세련되지도 않고 화려해 보이지도 않는다. 공예의 기술은 좀 고리타분하다. 하지만 그게 공예이고 제대로 된 ‘공예’가 될 수 있는 길이 바로 고리타분한 기술에 있다. 공예
는 그래서 ‘진보’보다는 지켜져야 할 ‘보수’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공예의 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현대적일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공예교육의 시작이어야 한다.

 

## 일부 내용과 이미지는 생략 되었습니다.전체 내용은 월간도예 본지 2014년 11월호를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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