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과정 중 사진과 AIR 리즈 코헨Liz Cohen(오른쪽)과 금속공예과 학생(왼쪽)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Cranbrook Academy of Art는 미국 미시간Michigan주 블룸필드 힐즈Bloomfield Hills에 위치한 석사과정만을 제공하는 예술학교이다. 1904년 조지 부스와 엘렌 부스George and Ellen Booth는 현재 초등학교Brookside Lower School, 중학교Cranbrook Kingswood Middle School, 고등기숙학교Cranbrook Kingswood Upper School, 자연사 박물관Cranbrook Institute of Science, 미술 박물관Cranbrook Academy of Art, 그리고 예술 아카데미Cranbrook Academy of Art로 구성된 크랜브룩 교육 공동체Cranbrook Education Community를 설립했다. 당시 부부는 훗날 크랜브룩 교육 공동체가 될 부지의 건축 및 조경 총괄자로 미국 근대 디자인과 건축에 큰 영향을 끼친 핀란드 출신 건축가 엘리엘 사리넨Eliel Saarinen을 고용하면서 그와의 첫 인연을 맺게 된다. 이 셋은 공통적으로 영국에서 시작된 미술 공예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특히 조지 부스는 미술 공예 운동에서 강조하는 수공예 정신이 우수한 상품의 생산과 윤리적인 삶의 바탕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인연으로 엘리엘 사리넨은 초대 교장으로 역임하게 되었고, 1932년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이하 크랜브룩 예술학교가 공식적으로 출발했다.
크랜브룩 예술학교는 건축Architecture, 도예Ceramics, 시각지다인2D Design, 산업디자인3D Design, 금속공예Metalsmithing, 섬유미술Fiber, 사진Photography, 회화Painting, 조각Sculpture, 판화Printmedia 총 10개의 석사과정을 제공하는 전교생 150명 내외의 소규모 커뮤니티이다. 학부 과정이 없으며, ‘교수professor’ 그리고 ‘수업class’의 개념 또한 없다. 대신 각 과에는 캠퍼스 내에 거주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인 Artist-In-Residence이하 AIR가 지도자의 역할을 맡는다. 학생들은 자신의 스튜디오를 2년 동안 AIR과 나란히 운영하며 작업을 발전시키게 된다. AIR은 교육자로서의 책임을 지기보다는 학과 운영을 위한 기본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학생들과의 1:1 면담을 제공하는 등 멘토 혹은 조언자의 역할을 한다.
교수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수업이나 정해진 커리큘럼, 그에 따른 학점이란 개념 또한 없다. 대신 학생들은 학교차원에서 기획하는 일련의 프로그램들에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돼있으며, 이는 대부분 필수 참여사항이 아니다. 때문에 개인의 생활·작업 패턴과 필요에 따라 작업시간 및 작업 외적인 일정을 입맛대로 조정하면서 학기를 보낼 수 있다. 학생들이 참여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에는 크리틱Critique, AIR과의 1:1면담, 학기말 1~2학년 리뷰1st/2nd Year Reviews, 초대작가, 평론가, 사학자 강연Visiting Artist/Critic/Historian Lectures, 크리티컬 스터디Critical Studies, 그리고 독서 세미나Reading Group 등이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전공과 무관하게 각자의 관심과 작업 철학에 따라 선택적으로 참여 할 수 있다. 이렇듯 모든 과를 위한 기본적인 틀은 갖춰져 있지만, 전공에 따라 중점을 두는 활동이나 프로그램을 이끄는 방향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필자는 현재 재학 중에 있는 도예과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겠다.
필자가 입학한 2016년도에는 덴마크 출신의 안더스 루월드Anders Ruhwald가 도예과 AIR로서의 마지막 해를 남겨두고 있었다. 따라서 첫 1년은 안더스 그리고 그의 부인이자 같은 도예작가인 마리 헤르만Marie Hermann과 함께 보냈으며, 현재는 새로운 AIR인 이안 맥도날드Ian McDonald가 지난 9월부터 본교의 도예과를 이끌고 있다. AIR은 말 그대로 캠퍼스 내에 입주해 있는 작가로, 과의 운영 틀을 결정 할 뿐 학과 학생들 개개인의 주관적인 작업 방향 설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예에서부터 디자인, 조각, 설치, 퍼포먼스까지 학생들이 ‘흙’이라는 재료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이런 다양성과 개성은 크리틱과 1~2학년 리뷰라는 과정을 통해 더욱 장려된다.
크리틱은 여럿이 모여 한 학생의 작품을 놓고 한 시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토론, 질의하는 과정이다. 재료 특정성이 강한 도예과라 할지라도 크리틱 시간에서 만큼은 작업의 완성도나 재료를 다루는 기술과 같은 일반적인 관찰에서 벗어나 작업이 내재하고 있는 의미와 아이디어에 대한 토론이 주를 이룬다. 그 어떤 형식의 작업이든 AIR과 학생들은 열린 마음으로 작업을 받아들여 의견을 나눈다. 본인의 작업이 논의되기 원하는 특정한 미학적 맥락과 방향이 있다면 필요에 따라 다른 전공의 크리틱에 참여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1~2학년 리뷰 역시 다양한 관점에서 피드백을 받기 좋은 기회이다. 1학년은 2학기 중간에, 2학년은 1학기 말에 리뷰가 행해진다. 학생들은 대학원 재학 기간 동안 해왔던 작업들을 개인 스튜디오 안 혹은 캠퍼스 내 공간을 빌려 전시한다. 그리고 크랜브룩 미술 박물관 관장, 큐레이터, 학과장과 10명의 AIR들은 각각 배정받은 학생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주관적인 피드백을 주는 시간을 갖는다. 한 학생당 분야가 각기 다른 4명의 평가자Reviewer에게 리뷰를 받게 되기 때문에 평가자들 사이에서 같은 작업을 놓고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필자를 포함한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작업에 있어서 모범답안이란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동시에 개성을 밀고 나갈 용기와 소신을 얻는다.
더 나아가 학생들은 자신의 작업세계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도예과’라는 틀과 ‘흙’이라는 재료에 얽매이지 않는다. 다른 전공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여러 재료를 다루고 다양한 시도를 해 봄으로써 졸업생들은 매년 신선하고도 실험적인 작업을 선보인다. 이는 도예과 뿐만 아니라 다른 과의 졸업전시에서도 잘 나타나게 된다. 실제로 졸업전시장에 들어서면 눈앞에 놓인 작품이 어느 전공에 속한 학생의 작품인지 쉽게 구별할 수 없다. 학생들의 이러한 실험적 시도는 학교가 학생들의 작업을 대하는 태도와 작품을 경험하는 관람자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학부 재학 시절 도예를 공예와 디자인으로서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필자는 작업에 있어서 사용자를 항상 염두해 왔었다. 이와 달리 지금까지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통해 필자는 작업과 더불어 스스로에 대해 연구하고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필자가 이후 작가로서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지 크랜브룩 예술학교에서의 경험은 졸업 후 작업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현될 것이라고 믿는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12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