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바라 본 풍경은 목가적이고 소박한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그렇게 두시간을 달린 기차는 잉글랜드 중부 스태퍼드셔Staffordshire주에 위치한 스토크-온-트렌트Stoke-on-Trent 라는 이름도 생경한 도시에 도착했다. 인구 25만 명이 거주하는 도자기 공업의 중심지이다.
영국의 도자기 생산과 거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스토크-온-트렌트 시는 1910년에 5개의 도시 핸리, 버슬럼, 턴스탈, 펜턴, 롱턴이 병합되어 만들어졌다. 수공예 공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이 곳은 영국 전역의 도자기 산업 인력의 1/4에 해당되는 7,000명이 작업을 하며 웨지우드, 로얄 덜튼 등 세계적 도자 브랜드 산업을 이끌어나간 도자의 메카였다.
하지만 1970~1980년대에 미국을 비롯해 서유럽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탈산업화와 기계화로 인한 급속적인 변화의 물결은 스토크-온-트렌트를 추락시켰다. 그로 인해 단기간 수천 명의 인력들이 해고 되었으며 공장들은 문을 닫았다. 문화의 유산인 이 지역을 다시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2009년에 시작되었다. 스토크-온-트렌트 시는 도토가 많아 포터리스The Potteries 또는 5도시 지역으로 불렸고, 이 지역에서 영국도자비엔날레가 발족되었다. 이는 황폐해진 스토크-온-트렌트 지역에 빛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한영 상호교류 프로젝트 전시공간 및 한국도자재단 홍보부스
영국도자비엔날레는 스토크-온-트렌트 시에 위치한 도자 중심지인 ‘5개의 지역’을 거점으로 동시대 이슈와 지역 정체성을 포괄하는 국제 행사다. 이는 스토크-온-트렌트 시와 예술위원회, 폴햄린재단, 스탠포드셔대학교 및 지역공동체, 기타 다양한 협력기관들의 후원과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2017~2018년이 한영 상호교류의 해로 지정된 만큼 영국도자비엔날레 주최 측과 한국도자재단은 2016년부터 이미 교류의 물꼬를 튼 상태였다. 도자재단의 초청으로 영국 측 관계자들은 <2017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준비 기간부터 행사 마지막 날까지 국제위원과 워크숍 작가 및 퍼포먼스형 전시작가로 참여하여 한국 도자에 대한 연구와 작가 교류에 상당한 시간을 쏟았다. 또한 도자재단은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을 위하여 여러모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김주리 작가와 영국 작가 니일 브라운스워드와의 협업 레지던시를 시작으로 오향종 작가와 이강효 작가가 한국도자를 알리는 대표주자로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필자 역시 한국 도자의 깊이 있는 역사와 현대적 가치를 알리고자 스토크-온-트렌트를 향했다.
한때 도공의 위대한 솜씨가 지역 곳곳에서 숨 쉬던 유럽 도자의 본고장이었던 스토크-온-트렌트는 현대에 맞는 지역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초기 단계에 있다. 지역 공동체와 함께 만들어가는 본 행사는 각 지역 내 9개의 다양한 건물에서 진행되고 있었기에 여행자의 낯선 시선으로 행사장 지도를 보며 지역 곳곳을 방문하였다. 우리가 첫 번째로 방문해야 하는 곳은 스포드팩토리Spode Factory의 차이나홀China Hall이 주 행사장이었다.
1776년 설립된 스포트팩토리는 2008년 공장이 문을 닫은 마지막 날까지 230년 동안 매일 수천 개의 그릇을 생산하던 곳이었다. 한때는 노련하고 숙성된 솜씨를 자랑하는 도공들의 화려한 무대였던 이 지역 곳곳에 위치한 칙칙한 회갈색 빛의 도자기 공장들은 영국의 서늘한 가을 풍경 너머 황량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낡고 오래된 건물의 창문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내부에는 수없이 포개어 놓은 몰드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그 위로 한때 영광의 잔해들이 그림자처럼 흔들리는 듯 했다. 하지만 지금의 이 공장은 2009년 제2회 비엔날레 때부터 동시대 현대도자예술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이번 전시 역시 이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에 약간의 흥분과 기대가 생기는 것은 필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포드팩토리
먼저 한국 현대도예를 대표하는 이강효 작가가 영국도자비엔날레 개막을 알리는 <분청 퍼포먼스>로 서막을 열었다. 한국의 전통음악 작곡가 김덕수의 사물놀이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대형 옹기항아리에 흙물을 뿌리는 그의 독창적 퍼포먼스에 유럽인들은 기대 이상의 환호와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장소와 관습Place and Practices>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한영 상호교류 프로젝트에서는 한국과 영국의물리적 공간을 초월해서 하나의 예술적 카테고리를 만들어 나가며 문화의 공유를 위한 장을 열었다.
김주리 작가는 「소실되는 풍경Evanescent Landscape」을 주제로 두 개의 퍼포먼스형 설치 작업을 했다. 그는 완성된 작품에 인위적으로 물을 부어 침식시키는 작업을 했는데 하나는 폐허가 된 도자기 공장 중 하나인 팔콘포터리Falcon pottery이고 다른 하나는 미들포트포터리Middle Port Pottery에서 작업하던 노동자들이 살던 소형주택가이다. 이 건축물은 도시의 대표적인 주택 양식이다. 폐허로 변한 공장과 한때 그곳에 살던 노동자들의 소형주택은 작가의 새로운 발상과 함께 작품으로 거듭났다. 그것은 물이라는 흐름 즉, 영속적 소재를 이용해서 시공을 초월하고 있다.
영국도자비엔날레 전시장 전경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11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