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청자는 회유灰釉계의 유약을 발라 녹갈색, 고동색의 유색을 보이며, 유면이 고르지 않고,
포개어 번조한 조질청자粗質靑磁로 일상 생활용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들 녹청
자는 고려시대 당시 지방수요를 위해 만들어진 고려시대의 도자기이다.
녹청자는 1965년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천시립박물관이 함께 인천 경서동 녹청자요지를 발
굴조사하게 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최순우 선생께서 『인천시 경서동 녹청자 요지 발
굴조사개요』를 통해 ‘녹청자’라 이름 붙이면서 현재까지 녹청자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1965년 조사되었던 <인천 경서동 녹청자 요지>는 1964년 겨울 당시 국립 현대미술관장이
었던 석남 이경성 선생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경서동 가마터의 발견 경위와 현상을 알리게
되면서, 인천시에서 주관하고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천시립박물관이 공동으로 발굴하게 된
고려시대 청자생산 유적이다.
이 유적은 발굴당시 바다와 면한 완만한 경사의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1965년 12
월부터 1966년 5월까지 4차에 걸쳐 조사되었다. 발굴조사결과 가마는 동남-북서방향으로
위치해 있고, 축조한 이후에 두 번 개축하여 보완해 사용했던 흔적이 발견되어 총 3차례에
걸쳐서 수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사된 가마는 봉통부위의 폭은 105㎝이며, 요실부분의 폭은 120㎝이고, 경작과 훼손으로
인하여 가마의 길이는 730㎝ 정도만 조사되었다. 가마의 내부 구조는 특별한 시설물은 없
으나 원통형의 도침이 아닌 경사진 도침을 이용해서 도자기의 수평을 맞춰 번조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토축요土築窯로 20도 내외의 경사를 가진 단실요이다.
경서동에서 출토된 「녹청자접시」
녹청자박물관 소장
인천 경서동 출토유물2(출처 세계도자전집 18권)
## 일부 내용과 이미지는 생략 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은 월간도예 본지 2014년 11월호를 참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