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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1월호 | 특집 ]

그릇 예찬-그릇 사랑 주윤경 도예가
  • 편집부
  • 등록 2017-03-20 15:16:56
  • 수정 2017-04-13 10: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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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릇 사랑 주윤경 도예가

유순하고 담담한 백자는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내가 그릇을 사랑하는 이유
내가 도예를 전공하게 된 건 유난히 상차림에 신경 쓰셨던 엄마를 가진 가정환경 탓이 크겠다. 엄마의 그릇 취향은 그야말로 여성스러움, ‘꽃가라 취향’으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엄마의 그릇엔 어떤 음식이 담기건 화려한 꽃무늬가 테두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노란 카레 옆 산딸기 패턴, 당근볶음과 함께 하얀 바탕을 메우던 장미꽃 패턴 등 나의 어린 시절 밥상은 사시사철 ‘봄’이었다. 그런 엄마의 밥상에 질린 나는 20대에 독립하며 엄마의 취향과 가장 거리가 먼, 심플하고 모던한 그릇으로만 찬장을 꾸렸다. 미술을 전공한 나의 감각은 엄마보다 우월하다 자부하며 무채색 그릇에 담긴 음식들이 훨씬 정갈해 보인다고 믿었다.
하지만 30대 중반 어느 날, 호주 빈티지 숍에서 발견한 꽃무늬 빈티지 그릇을 보고 ‘아, 예쁘다. 따뜻하다’라며 지갑을 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알록달록 꽃무늬에서 엄마가 차려주셨던 따뜻한 밥상의 냄새가 났다.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던 나의 찬장 속에 결국 엄마가 들어오고 만 것이다. 내가 그릇을 사랑하기 시작한 건 그릇 속에서 엄마의 냄새를 맡은 그날 부터였던 것 같다.
그릇의 무상한 변화
그릇은 어떤 것이 담기냐에 따라서 용도를 달리한다. 그릇의 무상한 변화는 내가 그릇을 사랑하는 큰 이유이다. 긴 저그에 샹그리아가 담겨 있다면 그날의 용도는 술을 담는 술병이 되고, 정원에 핀 보라색 들국화가 담겨 있다면 그날의 용도는 꽃병이 된다. 새로운 것을 담으면 단숨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아이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 즐겁다. 하얀 도화지처럼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을 것 같아 늘 기대된다.
식기로서의 운명을 다한 그릇에게 다른 용도를 주는 것도 재미다. 나는 그릇뿐 아니라 무엇이 담기는 행위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가 빠진 머그잔은 향초를 만들어 소중한 누군가에게 선물하고.바닥이 갈라진 그릇엔 귀여운 다육식물을 심어 화분으로 사용한다. 그릇의 역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는 그릇을 가지고 노는 ‘나’다.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온 세상이듯 내가 그릇에게 온 세상이 될 수 있다.
백자가 좋아
나는 유독 백자를 좋아한다. 잘 만들어진 백자는 표면의 작은 점들과 함께 ‘하얀 배’를 보는 듯하다. 독일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리하르트 리머쉬미트Richard
Riemerschmid는 애장했던 「청색 총상꽃차례 접시」가 자신의 선량한 자아를 닮아서 좋다고 했던가. 나는 차분한 느낌의 담담한 수묵화 같은 백자가 내가 가지지 않은 성격을 담고 있는 것 같아 늘 궁금하다. 고운 밀가루로 칠해 놓은 듯 말간 백자의 표면은 아무리 날을 세워 깎아두어도 눈으로 닿는 하얀 색감 덕분에 유순하다. 그 옛날 툇마루에 턱을 괴고 누워 폭폭 쌓이는 눈발을 보는 듯, 백자는 겨울처럼 희고 아랫목처럼 따뜻하다. 촉각은 또 어떠한가. 유순하고 담담한 백자를 만지고 있노라면 까칠한 세상살이가 둥글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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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내용은 월간도예 본지를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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